[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삼성그룹이 바이오 사업 구조를 전면 재편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종속돼 있던 바이오시밀러 사업 부문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분리해 수평적인 지배 구조를 갖춘 신설법인으로 독립시키고, 신약 개발 중심의 사업 확대에 주력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분할은 사업 리스크 최소화, 경영 효율성 제고, 고객사와의 신뢰 확보 등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재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지속 성장⋯CDMO 고객사들과 이해관계 상충"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https://image.inews24.com/v1/8fe2db2f4d31e8.jpg)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2일 기존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은 유지하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부문을 분할해 별도의 신설법인으로 독립시킨다고 공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주사 '삼성에피스홀딩스(가칭)'를 신설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그 산하에 두고 완전 자회사로 인적분할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관리 및 신규 투자 부문을 분할해 설립되며,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가 해당 지주회사 대표직을 겸임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설립한 합작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7년까지 9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율을 94.6%까지 끌어올렸고, 2018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면서 공동경영 체제가 구축됐다. 이후 2022년 4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지분을 인수하며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완전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 같은 결정은 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 개발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객사 간 이해 충돌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CDMO는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위탁받는 사업으로, 고객사의 신뢰 확보가 핵심이다. 그러나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경쟁 구도 속에서 고객사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상위 제약사 20곳 중 17곳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으나, 이들 중 일부는 기술 유출 가능성 등 우려로 계약에 소극적이었다는 전언이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최근 신약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나서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고객사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오시밀러 사업 초기에는 이런 우려가 크지 않았지만, 현재는 CDMO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https://image.inews24.com/v1/c4d786a9729162.jpg)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현재까지 블록버스터 의약품 11종의 바이오시밀러를 글로벌 시장에서 허가받아, 이 중 9종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창립 12년 만인 2023년에는 매출 1조원을 넘어셨으며, 지난해에는 매출 1조5000억원, 영업이익 4300억원을 돌파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경영지원센터장(부사장)은 "CDMO 고객사 중 일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한 바 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객사 제품과 경쟁하는 구도로 오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업 리스크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인적분할 통해 각자 사업에 '매진'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분할을 통해 사업 부문별 특성과 전략에 맞게 신속한 사업추진을 할 수 있게 됐다. 순수 CDMO 기업으로서 생산능력 확대와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신규 사업 강화, 글로벌 고객사 추가 확보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2032년까지 제2 바이오캠퍼스를 완공해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글로벌 거점 확장을 위해 브라운필드·그린필드 투자 방식을 모두 염두에 두고 다양한 방향에서 검토하고 있다.
브라운필드 투자는 기존 설비나 회사를 인수해 진출하는 방식으로 인력이나 생산라인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린필드는 새로운 지역에 공장을 직접 신설하는 형태로 진입장벽이 높은 대신 설계의 자유도가 크다.
삼성바이오에피스 내부에서는 사업 확장 추진력을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와 글로벌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을 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체결, 공동 개발 추진도 한층 수월해질 것이란 기대감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삼성에피스홀딩스 설립은 삼성바이오에피스만의 독립적인 경영 체계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라며 "독립 경영에 따른 신속한 의사결정은 물론, 투자 지주회사 운영을 통해 안정적인 바이오시밀러 수익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 인프라 구축,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인수합병(M&A) 추진 등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전경. [사진=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https://image.inews24.com/v1/209fd89a34e6f8.jpg)
기업가치 평가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김혜민 KB증권 연구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분리하면 각 기업가치를 명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며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이후 글로벌 기업과의 기업가치 평가 괴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신설법인에 종속…"상장 계획 없어"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오는 10월 1일 공식 출범한다. 존속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같은 달 29일 변경 상장되고,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재상장된다. 이에 따라 주식 거래는 9월 29일부터 10월 28일까지 일시 정지된다. 기존 주주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과 신설 삼성에피스홀딩스 주식을 0.6503913 대 0.3496087의 비율로 교부받게 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상장을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중복 상장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향후 5년간은 일체 검토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에 당분간만 상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형준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은 "상장은 여러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관심사였지만, 당분간은 홀딩스의 주력 자회사로서 사업 안정화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상장을 이야기하는 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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