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한국 현대 사진의 거장' 구본창 작가가 최근 열린 제35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예술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사진작가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1980년대부터 40년간 한국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 세계에 알려온 공로를 인정받은 순간이다.
호암재단은 1991년부터 학술·예술 및 사회발전과 인류 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한국계 인사를 수상자로 선정해왔다. 올해까지 182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98edde2af0da1.jpg)
삼성호암상 예술 부문은 미술과 문학을 오가며 수상자가 나왔다. 미술계에선 백남준(1995), 이우환(2001), 서도호(2017)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문학계에선 지난해 소설가 한강이 수상했다. 구본창 작가는 지난달 30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창작은 곧 타인과 교감"이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지난 17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자리한 구본창 작가의 '스튜디오9'에서 출국을 하루 앞둔 그를 만났다. 삼성호암상 수상 후에도 해외 전시, 책 출간을 위한 사진 작업으로 바쁜 일정을 이어왔다고 했다.
거장의 작업실엔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다. 벽면엔 사진과 그림이, 책장과 선반 위엔 크고 작은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누군가의 흔적이 남은 오래된 물건들이 작가 영감의 원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 흠집과 얼룩에 대해 "흔적이 역사가 된다"며 "세월을 품은 사물이 때론 감동을 준다"고 했다.
구본창 작가는 18일 호주로 출국해 시드니에 있는 아트갤러리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를 찾았다. 이곳에선 2년 전부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달항아리 연작이 전시 중이다.
삼성호암상 수상한 최초의 사진작가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1a2900a54aa4f.jpg)
-삼성호암상의 수상 소감으로 '창작은 타인과 교감'이라고 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내 일이 울림을 주기 위해, 공감을 일으키는 좋은 작품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일이지 않나. 작품의 이미지 혹은 메시지를 통해 제3자에게 공명의 시간을 주고 타인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삼성호암상도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서로 교감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
-삼성호암상의 첫 번째 사진분야 예술상 수상자라는 점도 의미가 깊은데.
"우리나라에서 의미가 많은 상을 타게 돼 영광으로 생각한다. 가족들도 깜짝 놀랐고, 나도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땐 '이게 진짜일까' 생각했다. 현대 예술계에서 사진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38e3d49797624a.jpg)
구본창의 '항해'를 찾아온 2030세대
-'구본창의 항해' 전시가 젊은 층으로부터 사랑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참 신기했다. 실제로 항해 전시 후 개인 SNS 계정에 팔로워 수가 확 늘었다. 아날로그에 대한 어떤 향수, 젊은 층들은 몰랐던 사진 기법에 재미를 느낀 건 아니었을지. 내가 모은 자료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구본창 작가의 국내 첫 공립미술관 개인전이었던 '구본창의 항해'(2023년 12월14일~2024년 3월10일)에는 11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서울시립미술관 개관 이후 생존 작가의 전시회로는 최다 기록이다.
'천만영화'에 'N차 관람'이 유행하듯, 전시관을 여러 번 찾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30일까지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구본창: 사물의 초상' 개인전이 열렸다. ACC에서는 백자 사진은 천장에, 신라 금관 사진은 전시장 바닥에 눕혀 설치하는 파격을 더했다. 노벨문학상을 탄 소설가 한강의 20년 전 사진도 전시돼 큰 주목을 받았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575d4b3e1f1b88.jpg)
-최근에 관심 있게 바라보거나, 좋은 느낌(영감)을 준 대상이 있다면.
"'빈 상자 시리즈'가 끝나지 않은 느낌이라, 어디서든 빈 상자를 떠올릴 수 있는 오브제가 있다면 하나 둘 씩 모으고 있다. 그리고 철사로 된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저 쪽에도 철사 소쿠리가 있지 않나.(웃음) 요즘은 아주 초기에 찍은 흑백 사진들을 모아 책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과거에 지나온 것들을 다시 꼼꼼하게 정리하고, 내가 그냥 넘어간 게 없나 살펴보고 있다."
-일종의 '임플란트' 작업일까.(웃음)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중이다. 사진만 찍어 놓고 프린트를 안 한 것도 있고, 필름을 정리 안 한 게 너무 많다. 급한 것만 작업해 전시를 하고, 또 잊어버리고.(웃음) 지나온 작업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974e7bd23ee7c.jpg)
세월 간직한 달항아리와 신라의 금관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백자' 시리즈도 있지만, 박물관 속 금관을 조명한 사진들도 주목을 받았다. 도자기나 금관 같은 유물들은 촬영 성사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항상 편지, 이메일을 통해 작가로서의 내 의도를 알리는 게 첫 걸음이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우리나라의 유물을 새롭게 조명해 더 좋은 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수년을 기다려 황금 유물을 찍을 수 있었다."
-황금 유물을 사진에 담게 된 계기는.
"황금 유물은 페루를 방문했을 때 처음 찍게 됐다. 리마에 있는 황금 박물관에서 잉카 시대의 황금 유물들을 사진에 담게 됐는데, 신라의 황금 유물들도 찍고 싶어졌다. 신라의 금관들이 얼마나 멋진가. 리움미술관에 있는 황금 유물들도 찍어보고 싶다."
-구본창의 '백자 연작'은 조선의 달항아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06년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당시 신문과 매거진에서 달항아리가 크게 조명됐다. 그 관심이 해외로 이어졌고, 큰 전시도 많이 하게 됐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da177b184a7034.jpg)
-하얗고 반짝이는 달항아리가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점도 인상 깊었다. 도자기 목 부분의 흠집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의도가 있을까.
"과거의 흔적이 있어야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누군가 쓴 흔적, 세월의 맛을 간직한 사물이 때론 큰 감동을 준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백자 사진이 주는 부드러움, 정적인 느낌을 좋아하더라. 바쁜 현대 사회에서 한숨을 내쉴 수 있는 그런 순간을 느끼는 것 같다. 프랑스에선 특히 '탈' 사진이 큰 관심을 받았고, 일본 사람들은 비누 사진을 참 좋아했다.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사진을 특히 좋아하는 게 아닐까."
구본창 작가의 백자 연작에 담긴 달항아리들은 한국·미국·영국·일본·프랑스, 16개 박물관에 흩어져 있다. 1800년대 중반부터 조선을 찾았던 외교관·선교사 등의 손을 거쳐 바다를 건넜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물과 사람 중에 더 선호하는 피사체가 있다면 어느 쪽일까.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매력적인 사람을 찍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사람을 잘 찍으면 훨씬 더 감동스러운 사진이 된다. 사람의 얼굴이 주는 느낌만큼 강렬한 게 있을까. 물론 잘 찍은 사물에도 히스토리가 담겨 있으면, 마음에 오래 남는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33986e848df57.jpg)
독일에서 사냥과 같은 사진에 빠지다
-회사 생활을 짧게 하고 독일로 떠난 유학 길에서 사진을 만난걸까.
"나는 직장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일로 떠났다. 처음엔 사진작가가 돼야 겠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단지 미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유학을 가기 전 까지 카메라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미술을 공부하다보니 사진과 잘 맞았나보다.
"사진 과목이 참 잘 맞았다. 교수님께 칭찬도 많이 들었고. 카메라를 들고 나가 내가 만난 사물과 풍경을 찍고, 돌아와 현상을 하면 결과가 되는 게 재밌었다. 결과물이 빨리 나오니 더욱 채집을 하듯, 사냥을 하듯 사진을 찍었다."
-마치 사냥을 하듯이?
"사진 작가는 사냥꾼이나 마찬가지다. (순간과 찰나를) 포착해야 하니까.(웃음)"
-그렇다면 스마트폰 카메라도 종종 찍나.
"즐겨 찍는다. 여행을 할 때, 준비된 카메라가 없을 때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물론 제일 큰 파일로 설정해두고. 그걸로 발표를 한 적도 있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b7f071ddec59b.jpg)
-스마트폰으로 찍더라도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창가에서 구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광고에 쓰겠다고 문의가 온 적이 있다. 그 사진이 신문 전면 광고에 쓰였다.(웃음) 순간을 대신할 수 없으니 스마트폰은 삼성 제품 중에 카메라 성능이 가장 좋은 걸 쓴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사진을 찍듯 AI가 여러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AI 시대에 프로 사진작가, 전문 사진의 영역은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AI가 한계 없이 (이미지, 사진을) 만들어내더라. AI 작업물이 작품으로 팔리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테지만, 마지막 결정은 작가가 계속 하지 않을까 싶다."
!['2025년도 제35회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구본창 사진작가가 지난 17일 성남시 분당구 스튜디오9에서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860f4d1658ffa.jpg)
구본창 작가는
1953년생 뱀띠.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대우실업에 입사했다. 6개월간의 짧은 회사 생활을 마치고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으로 유학 길에 올랐다.
사진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했다. '열두 번의 한숨' '긴 오후의 미행'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유명 미술관의 전시 기획 업무를 도맡았다.
'백자' '숨' '연작' '비누' 등의 시리즈는 사진 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미술관 등에도 이들 작품이 소장돼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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