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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5년 뒤, 한국 반도체는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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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삼성전자가 세계 D램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한 것은 1992년이었다. 이후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 산업이 되었다. 삼성전자는 30년 이상 이 시장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이 지위가 위태로워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22년 말 챗GPT가 출시되고부터다. 챗GPT를 구동하는 인공지능 반도체로 엔비디아 제품이 사용되고 HBM이 그와 짝을 이룰 메모리 반도체가 된 탓이다.

삼성은 이 시장 대비에 부족했고,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듯 보였던 아성(牙城)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30년 넘게 이어지던 삼성의 신화(神話)가 신기루처럼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2년 남짓에 불과했을 정도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 1분기에 삼성전자는 세계 D램 시장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빼앗겼다. 33년 만이다. SK 점유율은 36.9%, 삼성은 34.4%였다.

마이크론 고대역폭메모리(HBM)4 [사진=마이크론]
마이크론 고대역폭메모리(HBM)4 [사진=마이크론]

삼성 반도체 사업의 위기와 한국 반도체 산업 위기를 등치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는 편이었다. “한국 제조 산업이 전반적으로 위기인데 반도체는 그나마 나은 것 같아요. 삼성이 안 되면 SK가 커버하면 되니까요.” 업계 한 전문가가 했던 말이다. 맞는 말처럼 느껴졌다.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삼성의 점유율을 SK가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삼성의 위기를 한국의 위기로 보는 건 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업계 전문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거렸던 또 다른 이유는 삼성의 위기를 한국의 위기와 등치시킬 경우 삼성 반도체가 갖고 있는 내부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에서 삼성이 소외되는 이유는 내부 책임자들의 경영적 오판이 결정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이 생각은 최근 많이 바뀌었다. 삼성의 위기를 불러온 내부 문제의 경우 삼성 스스로 잘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것 같지 않다. 판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 판은 삼성과 SK만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삼성이 신화를 써가던 시절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둘의 합산 점유율 70%가 무조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삼성 신화 시기에 메모리는 B2B 제품이었지만 사실상 공급자 우위 시장이었다. 경기에는 영향을 받아도 특정 수요자에게 종속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삼성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경쟁 업체보다 차기 제품을 먼저 내고 대량으로 생산하기만 하면 됐다. 삼성 메모리를 살 고객은 많았고, 고객들은 삼성 메모리에 맞춰 자신의 제품을 만들었다. 삼성 메모리 신화는 그렇게 압도적인 이야기였다.

이 구도는 그러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의 헤게모니가 바뀌었다. 지금 시장의 주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는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자사의 AI반도체와 메모리를 결합해 TSMC에서 생산한 뒤 최종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 새로운 생태계에 SK하이닉스가 가장 잘 적응했고 그것 하나만으로 33년 만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D램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 새로운 구도에서 2위마저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HBM에서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보다 앞서 HBM4 시제품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미국 내에서 우리 돈 27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정책에 적극 호응한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엔비디아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생태계에 삼성보다 더 밀착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이크론의 약진이 가시화하면 삼성과 SK의 합산 점유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분간 SK가 버틴다 해도 한국 메모리의 위상은 급격히 약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새로운 생태계는 단순히 개별 기업 사이 기술경쟁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챗GPT 이후 AI와 이를 가능케 할 AI반도체는 사실상 ‘국가 전략 무기’가 되었고, 국가 전략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은 장기전이 될 거고 그 핵심 전장(戰場)은 AI와 반도체다. 특히 그 싸움의 결과로 시장이 美中 중심의 두 개의 공급망 체계로 재편될 수 있다. 또 이 공급망의 주도권은 지금처럼 메모리가 아니라 AI 반도체 같은 비메모리와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가 가져갈 공산이 크다. 세계를 호령하던 한국의 메모리는 하청업체로 전락해 양쪽 공급망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런 불안 때문일까. 곽노성 연세대 객원교수는 책 ‘침몰하는 한국, 생존을 위한 선택’에서 파운드리를 한국 경제 새 돌파구로 보고, “정부가 나서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리하고 독립 법인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과격한 주장이고 꼭 정답이랄 수도 없다. 다만 한국 반도체 앞날이 그만큼 흐릿하다는 걸 강조하는 뜻이라면 업계와 정부를 긴장시킬 만한 발언이겠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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