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가 상법 개정안의 이사 충실의무와 전자주총 등 일부 항목에 대해 수용 의사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소속 대기업 사장단 16명이 긴급 성명을 내고 "이사 충실의무 확대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행 주식회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걸음 물러난 셈이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이 윤석열 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등에 따라 폐기되자,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을 추가하고 시행 유예 기간을 삭제한 법안을 재발의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상법 개정안 통과를 약속했고, 김병기 원내대표도 취임 일성으로 같은 내용을 공언한 만큼 6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유력한 상황이다.
"이복현도 이사 충실의무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말해"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민생부대표는 이날 경제 6단체 상근부회장단과 상법 개정 관련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대기업들은 이사 충실의무와 전자주총을 먼저 도입하고 (감사) 분리선출 규정은 나중에 하자고 했고, 중소·중견 기업들은 이사 충실의무를 비상장이나 규모가 작은 기업에 유예기간을 달라는 보완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이사 충실 의무란, 이사가 충실해야 할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는 것이다.
이사회의 일원인 이사들이 중대한 경영적 판단을 할 때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사회에서 회사 분할 등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경제단체들은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이나 시설투자 결정으로 주가가 하락했을 경우, 주주들이 이사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강하게 반대해왔다.
이날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두고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오기형 '코스피 5000' 특별위원장은 "이사 충실의무 조항이 글로벌 스탠다드인지 논쟁이 있었는데,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말하지 않았나"라며 "이걸 안 하겠다고 하거나 더 시간을 두고 하자는 건 안된다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상법 개정의 핵심인 이사 충실의무 확대 조항을 여당에서도 물러설 뜻이 전혀 없음을 명시한 셈이다. 오 위원장은 또 "(그동안) 1년간 논의했다. 지금은 결단해야 할 때"라고도 덧붙였다.
경제단체들 "소송 남발 우려, 배임죄 폐지해달라"
경제단체들은 '주식시장 활성화'와 '자본시장 여건 조성'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상법 개정 시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 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상법 상의 주주 충실의무 조항 반영도 (공정한 자본시장 여건 조성을 위한) 해결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경제계가 걱정하는 것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박 상근부회장은 "지나친 소송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남용의 우려가 큰 일부 배임죄의 폐지, 사법적 판결을 통해 정착돼 온 경영판단의 원칙을 주주 충실의무 조항과 함께 상법에 반영하는 문제, 경영권 보장 장치에 대한 고민이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시행될 경우, 특별한 경영적 판단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이사회가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영진에 대한 배임죄 소송이 급증하면, 과감한 투자나 신사업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가운데)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상법개정안 경제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d670c05e283a47.jpg)
여당에서도 기업들의 우려를 충분히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상법개정안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우려하시는 문제가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제도를 보완하고 수정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남근 부대표는 재계의 소송 남발 우려에 대해 "대체로 우리 법원이 경영적 판단 원칙에 의해서 이사들의 책임이 무한대로 확대되지 않도록 통제해왔고, 실제적으로 법원이 통제해줄 거라고 보지만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며 "상법에 경영적 판단 원칙을 명문화해달라는 의견을 주셨다"고 전했다.
오기형 위원장도 '특별 배임죄 폐지 로드맵을 구상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개별법 조항에서 지금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기업 쪽에서 형사 처벌이 과하다는 의견을 주셔서 하반기에 논의해보려 한다"고 답했다.
與 "마지막 간담회"…경제단체들 "더 논의해야"
경제 6단체는 상법개정안을 일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펴면서도 좀 더 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은 당장 오는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진 의장은 이날 모두발언을 마무리하며 "이제는 우리 주식 시장,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상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걸 이해해주시라"며 "어쩌면 오늘이 상법개정에 앞서 열리는 마지막 정책 간담회 자리가 될 수 있겠다"고 했다.
그러자 박 상근부회장은 "어제 상법의 소관 부처 장관들이 내정 발표됐다"며 "관련 부처 장관 내정자들과도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마지막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공정 성장이라는 국민주권정부의 경제성장정책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진 위원장이 마지막 정책 간담회가 될 수 있다고 하자, 박 상근부회장이 마지막까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완곡하게 의견을 낸 셈이다.
박 상근부회장은 또 "추가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된다면 경제계도 더 폭넓은 의견을 종합하고, 보다 발전적인 제안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상법개정안은 다음달 4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국무회의를 거쳐 즉시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최근 일부 기업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주주침해 문제 등 시장 상황 변화를 고려해 상법 개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법안 통과에 힘을 실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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