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일요일 7시 출발, 사막길 650㎞를 달려와서 우즈베키스탄 국경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우즈베키스탄 출국, 카자흐스탄 입국' 절차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아내는 키질쿰 사막 비포장 자갈밭 길을 달려오는 과정에서 차량의 심한 반동과 흔들림으로 목 디스크 증세가 심해졌다. 손과 팔뚝이 시리고 저리다고 하소연이다. 두 시간 기다린 다음에 내 부부, K 교수, K 회장 네 사람은 우즈베키스탄 출국수속을 마쳤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d5457ebb2265ed.jpg)
자동차는 사람과는 별도로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수속을 마쳐야 하는데 이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와 아내는 개인 가방을 가지고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지나서 걸어서 100여 미터 길이의 비포장 길을 걸어가면 카자흐스탄 세관이다.
카자흐스탄 국경의 작은 대기실은 입국하려는 사람들로 무질서 자체이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로 영토가 넓은 나라인데, 입국장 대기실 면적은 왜 이렇게 좁은지, 5평도 아니 되는 것 같다. 매우 협소한 입국장 대기실은 줄서기도 없고, 새치기하는 사람 등 무질서 자체이다. K 교수는 새치기하는 사람에 대해 큰 목소리로 항의했다.
카자흐스탄 세관 직원이 항의하는 우리 일행을 보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앞쪽 줄로 이동시켜 주고, 편의를 봐주어서 그나마 빨리 통과하였다. K 교수의 용감한 항의가 없었다면 한 시간 이상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오후 6시 우즈베키스탄 국경 도착 후 세 시간 만에 밤 9시에 카자흐스탄 세관을 통과하였다. 진짜 문제는 자동차가 언제 통과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막의 길가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저녁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이 국경 근처 사막에 찾아보기 힘들다. 편하게 앉아서 기다릴 장소도 없다. 사막의 도로 옆에 앉아서 자동차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8월 11일 한여름임에도 밤 10시가 넘으면서 키질쿰 사막의 대륙성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피부로 느껴진다. 국경 도착 6시간이 경과한 밤 12시가 넘어도 자동차는 안 나온다.
이곳은 인터넷이 안 되는 오지라 세관에 잡혀있는 우리 차 일행과 전화도 아니 된다. 자동차 운전자와 어떤 상태인지 서로가 연락할 수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얇은 여름옷을 입고 쌀쌀한 키질쿰 사막 도로 옆에 앉아 무진장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갈데없는 길거리 '홈리스' 모습이다. 완전 노숙자 신세이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a64b29b03c0f84.jpg)
국경 도착 8시간이 지난 새벽 2시가 되어서 우리들 차가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하였다. 모두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오늘 밤 숙소로 예약한 키질쿰 사막의 작은 도시 '베이네우' 숙소로 가야 한다. 새벽 2시 30분쯤 '베이네우'로 가는 중에 카자흐스탄 경찰이 우리 차를 세우고 막무가내로 돈을 요구한다. 교통법규 위반과 관계없이 차를 세우고 못 가게 한다. 한번 돈을 주면 호구로 소문나서 카자흐스탄 영토 내내 경찰 검문에 고생한다고 들었다.
20분 이상을 도로에서 경찰차와 붙잡혀 고생했다. 경찰에 통사정한 끝에 보내줘서 새벽 3시에 '베이네우' 여관에 간신히 도착했다. 어제 아침 7시 히바를 출발, 카자흐스탄 변방의 작은 시골 도시 '베이네우' 여관까지 650㎞ 오는 데 20시간 걸렸다. 아침,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고, 저녁은 굶었다. 구글맵 덕분에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여관 건물을 쉽게 찾았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여관 문을 안 열어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여관 종업원 두 명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새벽 3시 넘어서 체크인했다. 종업원이 차량 도난 방지를 위해 여관 뒷마당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도록 안내한다. 방에 짐을 풀고 샤워를 간단히 하고, 새벽 4시에 취침을 하였다. '베이네우' 시골 여관은 좁은 방에 침대 쿠션도 엉망이지만 눕자마자 천당행 꿀잠에 빠진다.
이번 자동차 여행 중 가장 힘든 하루였다. 최악의 공공서비스를 경험하면서 후진국 국경은 '공무원이 왕이고, 백성은 졸이다.' 생각이 든다. 카자흐스탄은 세계에서 9번째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이다. 넓은 영토에 석유, 희토류 등 많은 지하자원을 보유한 자원 부국이다. 카자흐 초원은 유목민의 본거지로서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족, 기원전 3세기 흉노족, 서기 4~7세기 투루크족, 13세기 이후 몽골족이 지배하다가 근세에는 18세기 이후 러시아가 지배한 복잡한 역사의 땅이다.
카자흐스탄은 1760년 강대국 러시아에 자발적으로 식민 통치를 요청한 나라이다. 주변 국가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고생하느니 강대국 러시아의 보호를 받고 안전하게 살려는 실리적 외교정책이다. 역설적으로 러시아 식민 지배가 카자흐의 광대한 영토가 분할되지 아니하고 1991년 독립 후 영토를 그대로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러시아 식민 지배를 250여 년 받다가 소련연방이 해체하던 1991년 독립한 신생 국가이다. 광대한 영토에 살고 있는 민족의 수도 130개가 넘는다고 한다. 대(大)분류되는 종족의 숫자도 20여 개다.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사회는 '통합과 충성심' 고취가 어렵다. 유목민 종족은 자기의 “종족과 출신 지역”에 대한 충성이 우선이고, 국가에 대한 충성은 후(後) 순위이다. 지배자는 수시로 변하지만, 혈연으로 연결된 종족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다민족, 다언어, 광대한 영토국가의 문제점은 우리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카자흐스탄 종족은 이란계 피가 많이 섞인 우즈벡인보다 상대적으로 동양인과 많이 닮았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 두 개 언어가 공식 언어이다.
'카자흐'는 현지어로 '자유인, 독립인, 방랑자'의 의미인데, 공무원의 기강과 책임감은 유목민의 유전자가 남아서인지 매우 부족한 것 같다. 카자흐스탄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인해 경제 사정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좋다. 우즈베키스탄 등의 고려인이 경제가 좋은 카자흐스탄으로 이사 와서 살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 거주 고려인은 약 20만 명으로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이 산다.
이 나라는 호적에 출신 종족을 기재하는 나라여서 고려인 후손의 통계가 정확하다. '베이네우' 여관에서 새벽 4시 취침, 아침 8시 기상, 4시간의 짧은 잠을 자고 아침 식사를 한다. 시골 여관에 숙박객은 우리 일행뿐이다. 시골 여관의 아침 식사는 달걀 후라이 한 개, 식빵 몇 조각, 커피 한잔이다. 여관의 여주인이 종업원도 없이 혼자서 직접 서빙한다.
그나마 따뜻한 커피 한잔에 만족한다. 오늘은 8월 12일, 서울 출발(7월2일) 40일째이다. 여행의 후반부이다. 인구 1만 명의 작은 도시, '베이네우'를 아침 10시 출발하여 카스피해 근처 도시 '아티라우'까지 450㎞를 가야 한다. 먼저 주유소에서 차에 디젤 기름을 가득 채운다.
'베이네우'까지 이동한 누적 거리를 확인해 보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만 6천5백 ㎞를 달려왔다. 아침에 여관을 나오니 골목 입구에 카자흐스탄 경찰차가 어슬렁거린다. 경찰차를 안 만나도록 골목길을 돌아서 운전하였다. 경찰이 돈을 뜯으려는 것으로 걱정이 되어 미리 피해서 운전한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682ba4d7de4993.jpg)
카스피해의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황무지와 메마른 초원을 통과하고 있다. 가끔 쌍봉낙타, 단봉낙타와 함께 풀을 뜯는 풍경이 나타난다.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지역과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등 더위에 강한 지역에 사는 품종이고, '쌍봉낙타'는 고비사막 등 추위에 강한 지역에 사는 품종이다. 이곳 카자흐스탄 서쪽 변방은 두 종류 낙타가 함께 공존하는 지역임을 확인한다.
가끔 마주 오는 트럭 기사들이 앞에서 카자흐스탄 교통경찰이 단속하고 있다고 서치라이트를 반짝이고 지나간다.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지역 화물차 기사의 공통된 매너이다.
카자흐 초원길을 통과할 때 갑자기 모래 광풍이 휘몰아친다.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서행한다. 폭풍이 지나고 얼마 후 사막의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이 나타난다. 멀리 사막의 하얀 뭉게구름을 무심히 바라보면서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느림과 빠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빠름과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치열한 문명사회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대륙성 기후, 사막성 기후가 혼재된 카스피해 북부 지역은 날씨가 변덕스럽다. 이 지역은 해저 20미터, 30미터 저지대이다. 도로는 얕은 호수 위를 흙으로 돋아서 만든 것이다. 우리는 호수 사이의 길로 신나게 달리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자원이 많아 부유한 나라라서 우즈베키스탄보다 도로 상태가 매우 좋다. 어제 사막의 험한 자갈밭 길을 달리다가 포장 상태가 좋은 카자흐스탄 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상쾌하다. 8월 중순 접어드는데 주변 초원의 풀은 말라붙어 가을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누렇게 물든 초원을 지나가면서 고위도 지역인 이곳은 가을의 시작이 빨리 오는 것을 본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5970edd1d6424e.jpg)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2332da20801234.jpg)
점심은 휴게소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고추장, 장아찌, 김을 반찬으로 식사하였다. 한국인에게 고추장이야말로 영혼의 음식, '소울 푸드'(soul food)임을 실감한다. 가끔 카자흐스탄 쪽 마을을 지나쳐 간다. 장례 풍속은 민족마다 다르지만, 카자흐스탄 쪽의 공동묘지는 석조로 만든 화려한 건물 양식이다. 화려한 묘지 치장은 사후세계의 저택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묘지마다 영혼의 쉼터를 울타리로 감싸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산업도시 '아티라우'에 오후 5시경 도착했다. 아티라우는 인구 16만의 도시로 카스피해의 석유채굴 때문에 생긴 도시이다.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우랄강 하류 지역이다. '아티라우'는 위도는 북위 47도(서울 37도), 경도는 51도(서울 127도)로 유럽에 가깝다.
8월 중순 기온은 우리 가을처럼 20여 도이다. 선선한 날씨이다. 아티라우에서 우리가 숙박한 호텔 이름은 '벨루가'이다. 카스피해에 서식하는 철갑상어의 이름이다. 철갑상어는 '캐비어('알)를 얻기 위한 남획으로 멸종위기 어종이다. 20여 년 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출장 갔을 때 철갑상어 고기와 캐비어를 먹어본 것이 기억난다.
저녁 식사를 위해 구글맵을 검색해 보니 아티라우에 한국식당이 있다. 고려인 3세가 운영하는 매우 작은 한국식당을 찾았다. 숙소에서 15분 이상 걸어서 주택가 골목 속에 있는 협소한 한국식당이다. 주인은 60세 전후 나이의 뚱뚱한 아주머니이고 종업원은 없다. 한국어는 못하는데, 한국 사람 8명이 동시에 들어오니 놀라는 기색이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a65083646c0228.jpg)
카자흐스탄 최변방 지역에 한국에서 자동차로 여행 온 사람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맛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후손이다. 중앙아시아 최서쪽 카스피해 근처 변방에 한국의 된장, 고추장, 김치가 보존되고 있는 것에 놀랍다.
식사 중 옆 테이블의 잘생긴 러시아 청년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자기의 어머니는 고려인이고, 아버지는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작년에 6개월간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방문해서 여행도 하고, 취업도 했다고 말한다. 한국이 좋아서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에 따른 러시아계 고려인 후손도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좋게 생각한다. "민족이란 무엇인가?" 평소에 생각하지 아니하는 질문을 해본다.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출국하려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9214052e0a4af4.jpg)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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