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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전에 소비자부터 되는 디지털 시대⋯기업 설계, 정부 방치 [지금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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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해악 감시하는 전담 국제기구 신설해야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시민이 되기 전에 소비자가 돼 버리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 디지털 건강 문제는 개인의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란 지적이 나왔다.

기업이 수익을 겨냥해 설계하고 정부가 방치한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 조약, 인공지능(AI)의 청소년 해악을 감시하는 전담 국제기구 신설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담았다.

25세 미만을 대상으로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정신 건강과 수면, 신체 활동 등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진단한 리뷰 연구 결과가 5일 의학과 보건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됐다.

디지털 미디어의 적당한 사용은 건강상 이점이 있는데 해로운 영향을 미칠 위험도 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디지털 건강 문제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기업이 수익을 겨냥해 설계하고 정부가 방치한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한 시인은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문장을 마른 나뭇가지에 띄웠다. 4일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이 물들었다. 손 편지를 쓴 지가 언젠지,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느끼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본 지는 또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사진=정종오 기자]
한 시인은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라는 문장을 마른 나뭇가지에 띄웠다. 4일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이 물들었다. 손 편지를 쓴 지가 언젠지,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느끼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본 지는 또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사진=정종오 기자]

연구팀은 121개 리뷰 연구를 토대로 900만명의 25세 미만 데이터를 훑은 범용문헌검토(umbrella review)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중독적 패턴’의 문제적 사용은 흔한 정신 건강 문제·수면 문제·체력 활동 감소와 연관됐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원인 규명과 기술 기업의 데이터 공개, WHO 차원의 글로벌 거버넌스 조약, AI의 청소년 해악 감시하는 전담 국제기구 신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 부족을 이유로 즉각적이고 예방적 공중 보건 조치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예방적 공중 보건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디지털 유해성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일 조치보다는 기술 기업들이 규제에 저항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에 맞서는 것을 포함한 광범위하고 체계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영욱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번 논문에 대해 “청소년과 젊은 세대의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스크린을 오래 보거나 디지털 미디어에 중독되는 데 있지 않다”며 “더 근본적 문제는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갖춰야 할 주의력과 욕망, 기억과 정체성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거대한 디지털 산업 시스템에 의해 포획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빅테크 기업이 설계한 플랫폼 안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빼앗기고 욕망을 자극받는다면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민이 되기 전에 소비자가 된다”며 “세상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중요한 시기에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욕망할 것인지를 대신 선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덜 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아이들의 주의를 붙잡고 욕망을 자극하는 게 수익이 되는 산업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그 책임을 아이들과 부모의 절제와 자기통제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했다.

황순찬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는 “디지털 사용의 사회적 윤리, 사회적 책임,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상황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 시시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황 교수는 특정 연령을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모든 이용자에게 유해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인하고 어느 경로에서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디지털 환경을 설계하고 활성화하는 기업과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공익적 차원의 디지털 환경영향 평가 등 다각적으로 확인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황 교수는 “단순히 디지털 사용 시간을 줄이고 사용 연령을 규제하는 방식을 넘어 디지털 사용이 이용자의 사회적 참여 증가와 관계성의 보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노력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도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이번 랜싯의 세 논문은 청소년 디지털 미디어 문제를 이용 시간의 일괄 규제에서 플랫폼 설계와 사업 모형의 규제로 옮기자고 제안하고 있다”며 “세 논문은 차례로 개념 틀, 기존 리뷰 121편의 종합, 정책 권고를 다루는데 논문의 방향은 타당한데 아직 제안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 교수는 “앞으로 플랫폼 기업이 예방 조치를 시행하면 각 조치가 위해를 실제로 줄이는지와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독립 연구자가 평가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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