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엉뚱한 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에서 ‘암살자(들)’ 주연배우 유해진의 자택앞에서 영화상영 중단과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어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는가 하면,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8일 자신의 SNS에 출연배우들이 기본 출연료 외에 흥행실적에 따른 별도의 인센티브 계약을 맺은 사실을 폭로하며 배우들의 계약상세 내역을 공개했다.

주 의원은 SNS의 추가 게시글을 통해 “배우들이 사과를 안 하고 버틴 이유가 결국 이 (인센티브) 때문이었느냐”고 썼는데, 이건 한참 잘못 짚었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기본 출연료 외에 흥행결과에 따라 추가로 보수를 받는 인센티브 계약, 즉 러닝 개런티 계약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감독도 그런 계약을 하는 경우가 있다. 요즘처럼 영화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을 때에는 제작사는 초기 비용부담을 줄이고, 출연진도 영화에 더욱 기여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선호되기도 한다. 그런 걸 트집 잡을 필요는 없다.
‘암살자(들)이 공개된후 역사왜곡 논란이 일어났고, 영화내에서 논의가 이뤄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무리하게 진영 논리의 대결을 벌이면서 평가를 넘어 정쟁의 도구로 확대됐을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의 압력 요소로도 작용하게 됐다. 심지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까지 가세해 ‘영화를 둘러싼 역사 해석과 창작의 자유를 놓고 해야할’ 논쟁이 점점 사라져갔다.
작품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 영역이다. 역사를 담은 극영화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와 해석은 좋은 토론감이다.
‘암살자(들)’에서 가장 민감했던 부분은 '중정 윗선'이라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서는 허진호 감독이 지난 2일 JTBC ‘뉴스룸’ 단도직입 코너에 나와 답변을 했다. 영화로 말하는 감독이 방송 뉴스에 나와 말로 해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날 오대영 앵커가 “영화 속에서 중정 윗선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분리해서 그렸습니까, 아니면 일각의 해석대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고 판단해야 됩니까?”라고 묻자, 허진호 감독은 “이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을 지시한 영화라는 어떤 재단을 해 놓고 이 영화를 보신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저는 분리돼서 생각을 했고”라면서 “만약에 이것을 지시였다면 자기 목숨을 걸고 그런 지시를 내릴 리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당연히 자기 아내를 죽이게 한다라는 건 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분리해서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가 있었던 거죠. 중정 내부에 있어서의 어떤 암투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 DJ 납치 사건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중정이 자체적으로 어떤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고. 이것이 어떤 아주 잘 짜여진 계획으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소동극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감독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이 사건의 어떤 암살자들을 찾는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다라는 것을 제가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일이었고요”라면서 “그래서 가지고 갔던 건 이 시대를 살았던. 정말 어떻게 보면은 그 사건으로 인해 억울하게 해고 당했던 28명의 경찰관, 유해진 배우가 그 역을 맡았죠. 철구라는 인물과. 또 그런 엄혹한 시대에 그런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재환(박해일). 이 두 사람. 어떻게 보면 그 시대에도 진실을 찾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다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어요”라고 답했다.
허진호 감독은 ‘형사’ 유해진과 ‘기자’ 박해일을 통해 하고싶은 말을 던졌다. 감독이 설계한 두 개의 큰 축이다. 국립극장을 경비하던 중부경찰서 경감 철구가 사건을 목격한 후 의문을 가지고 사건을 추적한다. 박해일이 분한 동성일보 사회부장 김재환은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과 함께 사건 뒤에 감춰진 진실을 추적한다. 취재에 바탕한 기사화가 막히자, 동성일보 기자들과 함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는 주역이 된다.
영화를 관통하는 기자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은 필자도 관심을 가지고 봤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과 범인 문세광에 대한 보도를 못하게 해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온 건 아니다. 그해 10월 23일 동아일보가 서울대 농대생들의 시위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송건호 편집국장 등 신문사 간부 3명이 정보기관에 연행됐다. 엄청난 탄압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다음날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이전의 언론자유‘수호’에서 이제 자유언론‘실천’ 단계로 나아갔다.
‘암살자(들)’에서는 문세광 사건의 보도 탄압으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나온 것처럼 돼있다. 극영화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974년은 이미 4월 3일 박 정권이 민청학련사건을 조작해 언론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막으려 했다.
영화 ‘암살자(들)’에서는 신문사 내에서 “곡필천주, 직필인주(曲筆天誅, 直筆人誅)”라는 말이 나온다. “거짓된 기사를 쓰면 하늘의 벌을 받고, 바르게 쓰면 권력이나 사람에게 벌을 받는다”는 뜻인데, 영화에서는 곡필을 해 하늘에 베이느니, 차라리 직필로 권력에 베이겠다는 의미로 쓰였다. 중국 고서인 ‘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기레기’의 시대, 영화속 이 말은 참으로 돋보인 '명대사'였다.
영화인들은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부산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8일 부산 해운대 이벤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화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고, 관객의 판단을 정치가 대신하지 말라”는 공동입장을 발표했다.
영화인들은 공동입장문을 통해 영화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논쟁의 범위가 감독과 배우, 제작사와 투자기관, 공공기관, 극장과 학교, 해외영화제의 상영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 6일 경북 구미의 극장에서 ‘암살자(들)’의 상영이 중단됐다고 한다. 안타까운 소식이다. 이미 '암살자(들)'에 대한 선넘는 논란으로 영화 관련 활동과 행사도 취소되고 있다. 그럼에도 ‘암살자(들)’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고, 국제 관객상인 '러너 업'을 수상했다. 오는 21일에는 제 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SGIFF) 개막작으로도 상영된다.
싱가포르국제영화제측은 7일 “‘암살자(들)’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들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제작진은 본 작품을 역사적 사건에 허구의 인물과 상황을 결합한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해 왔다. 또한 역사적 결론을 내리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고 변함없이 상영될 예정임을 전했다.
배우 유해진은 지난 7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제3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논란의 여파로 유해진은 불참한 채 대리수상했다. 애꿎은 배우에게 피해를 줄 게 아니라, 논의할 게 있으면 영화내에서 작품에 대해 평가· 비판하고, 고증· 해석할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이미 그런 기회를 잃은 것 같아 씁쓸하지만.
/서병기 기자(w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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