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우리나라 연구개발(R&D)계의 고질병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R&D계를 포함한 대학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내정자를 정해놓고 ‘들러리 후보자’들을 상대로 엉터리 채용시스템, 떨어트리기 위한 공격적 면접을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정자 이외 ‘들러리 후보’들에게 면접에서 인신공격성 질문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적의 A 씨는 “신임 교수를 채용할 때 정량적 평가(논문 편수 등 연구 결과물)와 정성적 평가(면접 등)가 있기 마련”이라며 “특정 대학의 경우 공인받는 저널에 실리는 논문이 3편 이상이면 모두 같은 점수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개발계를 포함해 신임 교수 채용시스템에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픽사베이]](https://image.inews24.com/v1/3b9662d83a877f.jpg)
채용시스템에서 지원 자격은 ‘최근 3년 혹은 5년 이내에 공인받은 국내, 국제저널에 실린 논문이 1편 혹은 2편’이 대부분이다. 이후 심사 대상 논문을 3편까지만 선택해 제출한다. 3편 이외에 전체 연구 실적도 제출하는데 다만 심사 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와 국내 저널에 관련 연구논문을 3편을 게재했든, 10편이 실렸든 정량적으로 같은 점수를 받는다는 거다. A 씨는 “공인된 저널에 실리는 연구논문은 3편과 10편이 같을 수 없다”며 “정량적 평가를 할 때는 논문 게재 건수가 몇 건 이상이 아니라 한편 한편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객관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축구선수가 3골을 기록하는 것과 10골을 기록하는 것은 천지차이인데 하물며 교수를 채용하는 데 있어 ‘3편 이상’이라는 문구로 ‘3편=10편’이라는 식의 채용시스템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량적 평가는 그만큼 객관적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A 씨는 “‘최근 3년 혹은 5년 실적만 인정한다’는 채용 지원 조건은 마지막 5경기에서 기록한 골만 인정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며 “여기에다 5경기에서 최대 3골까지만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상식적 정량 평가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정성적 평가도 내정자 이외의 ‘들러리’들에게는 가혹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국내 유명 대학에서 직접 경험한 정성적 평가(면접)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랬다.
면접관이 “학과에서 어떠한 업무 요구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다. A 씨가 “수용하겠다”고 답한다. A 씨의 이런 답변에 다시 면접관은 “지금은 면접이니까 다 수용하겠다고 해놓고 들어와서는 안 할 거 다 안다”라고 공격하는 식이다.
A 씨는 “(일어나지도 않은)미래의 상황을 단정적으로 언급하며 인격 모독적이고 비합리적 면접을 진행 후 인격 점수 최하점을 부여한 대학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의 경우 면접관이 “학부 졸업 후 전공을 바꾸는 사람은 인내심이 없는 인성인데 우리 학과에서는 선발하지 못한다”라고 발언한 후 전공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면접관이 그 이유에 대해 답변하려고 하면 면접관은 “나는 A 씨에게서 답변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다. 대답하지 말고 거기 서서 들으라!”고 윽박지르면서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대학까지 있었다.
A 씨는 이 같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로 “애초에 경쟁적 선발이 아니라 내정자만 뽑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내정자’의 정량적 평가가 객관적으로 부족할 경우 임용과정 전체를 취소해 버리는 사례도 있었다. A 씨는 “정성적 평가를 가혹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정자의 정량적 실적이 지원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 학과 내 평가 결과를 교무부에 보고하는 게 부담이 돼 채용 자체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채용 과정을 경험해 본 결과 A 씨는 “여러 대학에서 애초에 경쟁적 선발이 아니라 내정자만 뽑겠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진단했다. A 씨가 이런 경험을 한 곳은 국내 유명 대학이었다.
A 씨는 “이들이 학연으로 뭉치는 이유는 결국 본인(기존 교수들) 은퇴 이후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본인이 은퇴하면서 본인 자리에 제자를, 혹은 후배를 후임으로 임용함으로써 은퇴 후 해당 학과에서 세미나 초청 등을 통한 비용 등을 챙기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외국의 경우는 다르다고 A 씨는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를 마찬가지로 적용하는데 정량적 평가를 할 때는 연구논문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따진다고 했다.
여기에 정성적 평가는 대학 구성원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참여할 수 있고 지역 주민까지도 원한다면 참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미국의 서류 평가는 정량적 평가로 하고 정성적 평가인 면접에서는 해당 대학의 학부생, 석사생, 대학의 행정 직원, 주변 동네에 사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이 30분 정도 주어진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원 학과 학생(학부, 대학원)들과 약 1시간 정도 따로 이야기하는 세션도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정성적 평가를 가능한 입체적으로, 전반적으로 받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A 씨는 “이런 ‘오픈 면접’을 통해 여러 사람의 평가 의견을 듣는다”며 “해당 평가가 신임 교수를 채용하는데 얼마큼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A 씨는 “‘오픈 면접’이 교수 채용에 있어 절대적 영향력을 끼친다고 할 수는 없는데 우리나라는 아예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라며 “내정자를 정해놓고 ‘들러리’를 세우는 지금의 교수 채용시스템, 학연을 이용해 자신의 ‘아바타’를 심겠다고 하는 이상 우리나라 연구개발 분야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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