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시내에는 14세기 우즈베키스탄의 국민 영웅 티무로 박물관, 티무르 동상 등 '티무르' 관련 시설이 많다. 시청 앞에 있는 커다란 '티무르' 동상은 과거 레닌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우즈베크의 영웅 티무르도 소련연방 때는 인민의 착취자로 비판 대상이었으나, 1991년 우즈베크 독립 후 국민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다인종, 다언어 국가인 우즈베크는 통합의 상징으로 600년 전 14세기 중앙아시아의 영웅 '티무르'를 열심히 활용하고 있다. 타슈켄트에서 점심 식사 후 우즈베크의 유명한 관광도시이며, 옛날 실크로드 상인인 소그드인의 고향인 '사마르칸트'로 출발한다. 오늘은 8월 6일이다. 낮 기온은 40도 이상이고, 습한 날씨이다. 지나왔던 건조한 파미르고원, 타클라마칸 사막 날씨와 매우 다르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도로변에는 호박 크기의 멜론, 수박, 복숭아 등 과일 노점상이 즐비하다. 우즈베크 정부는 '아랄해 사막화 방지 대책' 일환으로 목화재배 농가에 재배면적을 1/2로 줄이도록 권장하고, 대신 과일 등 다른 작물로 대체하도록 함에 따라 목화 대신 멜론 농사를 많이 짓고 있다. 타슈켄트 인근은 멜론의 주산지로 값이 싸고 맛이 있다고 가이드 '솔레존'이 말한다.
![노점상에서 산 우즈베크 멜론.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bac3ae82caa1b1.jpg)
아내는 커다란 호박만큼 큰 멜론 두 개를 도로변에서 샀다. 멜론 두 개 가격이 우즈베크 돈으로 2만3천솜(원화 2300원)으로 거의 공짜 수준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하미과'보다 크고 맛은 달다.
아내가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값싸고 맛있는 우즈베크 멜론을 수입해 팔면 돈을 잘 벌겠다고 얘기를 한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가이드 솔레존이 한국 기업인이 이미 수입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농약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위생 검역에 문제가 있어서 수입 통관이 아니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어떤 한국 기업인이 비닐하우스에서 농약을 적게 쓰는 멜론을 재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날 밤 텔레비전 뉴스에 멜론의 과잉생산에 따른 가격 폭락과 멜론 재배 농민의 불만이 뉴스로 나온다. 풍작에 의한 농산물 가격 폭락은 어느 나라나 동일하다. 사마르칸트로 가는 도로 옆 농수로에서 우즈베크 농촌 소년들이 헤엄치는 모습은 과거 50년 전 우리 농촌의 모습이다. 들녘에는 목화, 밀, 옥수수 등 많은 곡물이 풍요롭다.
농지 주변의 초원에는 소, 말,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가이드 솔레존이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를 거쳐 '부하라'까지 1200킬로 거리의 고속철도를 한국 KTX가 설치했다고 얘기한다. 현재 '히바'까지 고속철 연결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고속철도 인기가 좋아서 한 달 전 예약해야 좌석이 있다고 말한다. 기아 자동차가 자동차 공장을 우즈베크에 짓고 있다고 말하며 도중에 도로변 멀리 있는 공장부지를 가리킨다.
오후 늦게 사마르칸트 호텔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부 공원 옆에 있는 아담한 호텔이다. 우즈베크 식당에서 멋진 요리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전에 나오는 커다란 우즈베크 빵이 맛있어서 많이 먹게 된다. 빵이 많이 남아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농업국가라 그런지 빵 인심이 후하다. 토마토와 신선한 야채를 곁들여 먹는 양고기 샤슬릭 요리도 훌륭하다. 생맥주와 보드카도 값도 저렴하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오는 야간에 '레기스탄 광장'에 들렸다. 여름철 저녁 더위를 피해 산책 나온 시민이 매우 많다. 8월 초순 한낮은 40도 이상이지만 밤 기온은 시원한 대륙성 날씨이다. 식사 후 숙소로 귀가 도중에 가이드 솔레존의 안내로 화려한 고층빌딩, 호텔이 즐비한 중국 자본이 투자하는 사마르칸트 외곽에 있는 신도시 건설 현장에 들렸다. 중국 정부의 실크로드 '일대일로' 사업의 일환으로 중국 자본을 들여와 호텔, 상업용 빌딩 등을 대규모로 짓는 건설 현장이다. 미래의 사업 수익성이 어떨지 걱정된다.
![노점상에서 산 우즈베크 멜론.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68783f69ec3ab6.jpg)
사마르칸트에서 2박을 하면서 티무르 유적지를 관광하며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서기 4세기부터 10세기까지 실크로드 무역의 대표적 상인인 '소그드인' 거주지를 '소그디아나' 지역이라고 부른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타슈켄트' 등 시르다리아강과 아무다리아강 사이의 지역을 말한다. 소그드 상인은 페르시아(이란)계 종족으로 실크로드 전성기였던 당나라 시대에 사마르칸트에서 중국의 돈황, 장안을 오가며 국제무역에 종사한 사람들이다.
신라 경주에도 소그드인 흔적이 남아있다. 신라 '원성왕' 왕릉의 석상에 코가 크고 눈이 움푹 들어간 석상은 소그드인으로 추정한다. 신라 향가 '처용가'에 나오는 사람도 실크로드를 따라서 장사하러 계림(경주)에 온 소그드인 가능성이 크다. 신라의 경주(계림)은 당나라 시대 실크로드 지선(支線) 중 하나이다.
사마르칸트가 역사에 처음 나오는 것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4세기 침략했을 때 '마라칸타' (현재 사마르칸트) 주민들이 초기에 맹렬한 저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사마르칸트는 페르시아(이란). 서돌궐, 당나라, 몽골 등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각축장이다. 역사적 이유로 페르시아(이란)에 가까운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는 이란계인 '타지크족'이 70% 이상이고, 튀르크 종족인 우즈벡종족은 소수이다. 언어도 이란어 계통인 '타지크어'와 튀르크 계통인 '우즈벡어', 러시아어 등 3개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한다.
우랄 알타이어 계통인 '튀르크에'는 우리 말처럼 '주어 목적어 동사' 순서로 말한다. 가이드 '솔레존'은 우즈베크 종족인데 타지크어, 우즈벡어, 러시아어, 한국어 4개국 언어를 구사한다. 5명 자녀가 있는데 큰아들은 미국 유학, 다른 자녀는 러시아어 학교, 타지크어 학교 등 다르게 보내고 있다. 최근은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 학교가 인기라고 한다.
![노점상에서 산 우즈베크 멜론.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6fac1f5d347319.jpg)
사마르칸트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지배를 돌아가며 받았다. 생존을 위해 주변 강대국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하고, 새로운 지배 국가의 빠른 언어 습득은 중요한 생존술의 하나이다. 이러한 역사적 연유로 우즈베크 사람들이 외국어를 쉽게 배우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몽골족 지배하에서 3개국 이상 언어를 구사하면 몽골족의 관리가 되기 쉬웠다고 한다. 몽골족을 대신해서 세금 징수, 서기 등 행정업무는 문해율이 높은 소그드인, 위구르족 사람들이 많이 했다. 어쨌든 '다민족, 다언어' 국가의 국민은 여러 언어를 함께 배워야 하므로 불편할 것이다.
1400년 당나라 현장 스님은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서 천축(인도)으로 갔다. 현장은 실크로드 상인 소그드인의 특성에 대해 '대당서역기'에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거짓말을 자주 하고 남을 잘 속인다. 돈을 심하게 밝히며 이익을 구하는 데에는 아비와 아들이 닮았다."
또한 당나라의 역사책인 '당서(唐書)'는 소그드인이 어떻게 아이를 상인으로 기르는지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입과 손에 꿀을 바른다. 아이가 성장해서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고, 손에 들어온 돈은 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무역에 능하며 이익을 좋아한다. 나이 스물이 되면 외국으로 떠난다."
당나라 멸망 이후 소그드인들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슬람교가 지배 종교가 되면서 아랍 상인, 페르시아 상인으로 대체되고, 바닷길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면서 해로를 통한 실크로드가 육로를 대체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산산맥 넘어 유럽 쪽에 치우친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는 현재도 가기 어려운 멀리 떨어진 곳이다. 한반도에서 멀고 먼 사마르칸트에 '고구려 사신도' 벽화가 있어서 각별하다. 지정학적으로 요충 지역인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더 대왕 이래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당하고, 침략 시마다 도시가 파괴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도시이다. '불사조의 도시'라고 부른다.
특히, 13세기 칭기스칸 군대의 침략에 저항한 것 때문에 도시 전체가 철저히 파괴되었다.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약 3만 명의 주민이 학살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사마르칸트는 14세기 중앙아시아 맹주인 '티무르'가 재건한 것이다. 고구려 사신의 벽화가 발견된 '아프로시압' 유적은 13세기 몽골군이 파괴한 사마르칸트
구(舊)도심에서 발견되었다. 소련연방 시절인 1974년 중장비로 도로 개설 공사를 하다가 수백 년 동안 지하에 묻혀있던 발견된 건물이 '아프로시압 역사박물관'이다.
건물 상단 부분의 벽화는 중장비 공사로 무너져 없어지고, 하단 부문의 벽화가 네 면의 벽면에 그려져 있다. 당시는 소련연방 시대인데, 소련인 학자가 벽화 하단 오른쪽 끝에 있는 두 사람을 고구려 사신으로 확인하고 발표했다. 중앙아시아 유서 깊은 도시에 고구려 사신의 벽화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고구려 사신 복장은 '조어관'(새 깃털로 장식한 모자)을 쓰고, 허리에 환도를 차고 있다.
양손은 소매 안쪽에 넣은 정중한 자세인데 궁중 사극(史劇)에 나오는 모습이다. 벽화에 적혀 있는 소그드문자를 해독한 결과 벽화의 제작 연도는 서기 660년, 661년이다. 당시 이 집은 대귀족의 집 거실이고, 포크레인 공사로 잘려 나간 벽화 상단에 당시 소그드 왕인 '바르후만'이 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노점상에서 산 우즈베크 멜론.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b1780ceea783ff.jpg)
벽화에는 중국 사신, 인근 국가 사신 등 40여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사신이 먼 이국땅 사마르칸트 벽화에 나오는 것에 대해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첫 번째 학설은 고구려는 서기 668년 멸망 전에 수나라, 당나라와 수십 년 동안 장기간 전쟁 중이다. 동맹을 체결하기 위해 서쪽의 중앙아시아 소그드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방문했던 사신의 그림이다. 직접 고구려 사신이 왔다면 만주 지방, 몽골고원, 고비사막, 알타이산맥의 초원길 8천 킬로 이상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먼 길이다.
다른 학설은 고구려 사신이 나오는 중국의 벽화 그림을 모방해서 그렸다는 설이다. 7세기 수나라, 당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고구려 명성을 이곳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동방의 강대국 고구려 명성을 듣고 벽화에 고구려 사신의 그림을 그렸다는 학설이다. 어느 말이 맞든 고구려는 당시 유럽 가까운 중앙아시아에 알려질 정도로 강대한 국가였다.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영상 기념물을 제작해서 박물관 로비에서 방영하고 있고, 박물관 정원에도 고구려 사신에 대한 안내 팻말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중심 도시 사마르칸트에 1400년 전 고구려 사신의 벽화를 보면서 고구려인의 웅장한 기상과 기개에 한민족으로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고대 역사에서 고구려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대한 국가일 것으로 생각이 든다. 고대의 실크로드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군사, 외교,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했던 흔적이 아시아 대륙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불행히도 조선 시대 선조들의 발자취나 교류 흔적은 대륙에 없음을 보면서, 고대 우리 조상들의 진취적인 역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노점상에서 산 우즈베크 멜론. [사진=윤영선]](https://image.inews24.com/v1/9214052e0a4af4.jpg)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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