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가 미국 반도체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최첨단 공정을 자국에 두는 'N-1 나노(㎚) 원칙'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N-1 나노 원칙이란 최첨단 공정을 본사와 연구개발(R&D) 시설이 모여있는 대만에서 가장 먼저 양산하고, 이 공정이 구형이 됐을 때 해외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TSMC가 현재 가장 앞선 3㎚ 공정을 대만 팹에 두고, 미국에서는 4㎚ 공정으로 웨이퍼를 생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신 애리조나 공장서 4나노 가동 돌입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자리한 '21팹' 1공장(P1)에서 지난 연말부터 4㎚ 공정을 가동 중이다.
자유시보 등 대만언론은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TSMC가 올 연말까지 21팹 1공장에서 월 2만장 규모의 4㎚ 웨이퍼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연말 문을 연 최신 공장에서 선단 공정인 3㎚가 아닌 4㎚ 웨이퍼를 생산하는 것은 대만 당국이 "최첨단 공정은 반드시 대만에서 양산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대만 정부의 장관급 기술 관료인 우청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주임위원은 지난달 웨이저자 TSMC 회장이 백악관에서 1000억 달러(약 146조원) 투자 계획을 밝히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첨단 공정의 연구 개발 및 양산 제조를 대만에 뿌리내린다는 원칙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위원은 특히 "TSMC의 최선단 공정의 첫 양산 공장은 반드시 대만에 있을 것이고, 해외로 생산 기지를 확장해 나가는 건 그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엔비디아·AMD "미국서 TSMC 2나노 공정 활용"
반도체 업계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현지 공급망 구축 압박으로 대만 당국과 TSMC가 30년 넘게 고수해 온 'N-1 원칙'이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날 미국에서 최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인프라를 설립하겠다고 밝힌 엔비디아와 AMD 모두 TSMC의 2㎚ 공정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향후 4년간 미국에서 최대 5000억 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해 AI 칩 제조, 슈퍼컴퓨터 개발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인데 TSMC의 첨단 공정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AMD는 더욱 구체적으로 차세대 에픽 프로세서인 코드명 '베니스'를 TSMC 애리조나 공장 내 2㎚ 공정으로 생산한다고 밝혔다.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하는 베니스는 AMD의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대표 모델이다.
TSMC는 올해 하반기부터 대만 가오슝 공장에서 2㎚ 공정으로 애플의 아이폰용 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인데, 약 1년 만인 내년부터 미국 공장에서 2㎚ 공정이 가동된다는 의미다.
3㎚ 공정의 경우 대만에서 2022년 첫 양산 후 약 3년 후 해외 공장에서 생산했지만, 이 기간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반도체 기업들 자국에 선단 공정 두는 이유는
TSMC가 내년부터 미국에서 2㎚ 공정을 운영한다는 점을 우려하는 대만 내부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만 경제일보 등 외신들은 TSMC의 대미(對美) 투자 계획 발표 후 "반도체 산업 자체가 미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낸 바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선단 공정을 자국에 두는 이유는 본사와 R&D 센터, 공장의 긴밀한 공조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해외에서 일찌감치 생산하면 일자리 감소나 첨단기술 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최신 공정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양산하고, 안정화 작업을 거친 후 해외 생산을 검토해왔다.
강성철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최근의 통상 환경이 기업들이 오랜시간 지켜온 원칙을 뒤흔드는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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