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와인·위스키 등 고가의 주류를 부정한 방법으로 들여오거나, 불법 재판매하는 행위가 성행하는 이유를 단순히 개인과 집단의 일탈로 치부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가 큰 낡은 현행법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에 가깝단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바앤스피릿쇼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b5169c62e030fd.jpg)
특히 주세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1967년부터 '종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종가세는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가격이 비쌀수록 높은 세금을 메기는 구조다. 정부 입장에선 주류 가격이 오를 때마다 주세 역시 상승하므로 세수 확보에 유리하다. 반면 소비자 입장에선 고가의 술을 구매할 때 떠앉게 되는 부담이 커진다.
문제는 이러한 종가세가 전 세계 주류 시장 흐름과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4개국을 제외하면 모두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종량세는 술의 도수나 용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원가가 1만원인 위스키와 100만원짜리 위스키의 도수와 용량이 같다면, 똑같은 세금을 부과한다.
한국에 정식 수입된 와인·위스키가 해외 시세 대비 많으면 두 배 이상 비싼 이유다. 이렇듯 국내에서만 유별나게 비싼 주류 가격은 필연적으로 시세차익을 노린 불법 행위의 동기가 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현행 과세 체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부터 맥주와 탁주에 한해 과세 체계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다만 여전히 반대 의견도 상당하다. 종량세로 전환할 경우 와인과 위스키 등 고가의 술 가격은 하락하지만, 희석식 소주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주류의 가격은 인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 가격이 올라가는 건 물가 관리를 해야하는 정부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서울바앤스피릿쇼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4153a348a0893a.jpg)
온라인 주류 판매가 금지된 부분도 작지 않은 문제로 지적된다. 현행 주세법은 전통주를 제외한 주류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를 허용할 경우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술을 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주류 판매량이 늘며 국민 건강이 전반적으로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해관계자들의 사정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현재 주류를 판매하는 도·소매업체, 유일하게 온라인 판매가 허용된 전통주 업계 등은 온라인 판매가 전면 허용될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OECD 국가 중 주류의 온라인 판매가 불가한 나라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해외 직구가 활성화되면서 규제 자체가 유명무실해 지기도 했다.
알리·테무 등 중국 플랫폼과 해외 직구 사이트를 이용하면 주류를 집까지 택배로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온라인 판매를 막는 건 국내 주류업체에 역차별이란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주류 해외 직구 규모는 2018년 26억원에서 지난 2023년 394억원으로 5년 새 15배 이상 늘었다. 가격 차이도 큰 데다, 편의성까지 떨어지는 국내 시장에서 술을 구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구로 싸게 들여온 술은 불법 재판매에 악용되는 등 시장 질서를 흔들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결국 종가세, 온라인 판매 금지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벗어나 우리만 고수하고 있는 현행법부터 손봐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원한다"며 "이제 소비의 주도권은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다. 이들의 취향은 다양해졌고, 고품질의 술을 다양하게 먹고 싶어한다. 온라인 판매를 막으면, 그 수요는 고스란히 직구로 넘어간다. 단번에 바꾸기 어렵더라도 단계적으로 낡은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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