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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세월호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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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슬고 긁힌 건 세월호만이 아니다

[편집인레터] 지금도 2014년 4월 16일 오후의 기억은 공포스럽다. 구조자의 숫자가 갑자기 푹 줄어들면서 배안에 304명이 남아있다지 않는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바람은 차가운데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바닷 속에 있다고?

아마도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그날 저녁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촉수는 바닷 속으로 잠겼을 거다. 아이들 호흡에 한숨이라도 보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쉬이 잠도 들지 못했던 며칠이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도 무색하게 결과는 비극이었다. 봄은 깊어지고 꽃은 폈건만 꽃같은 아이들은 살아오지 못했다. 476명 중 295명은 죽어서 왔고 9명은 오지도 못했다.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 중 75명만이 구조됐을 뿐이다. 믿을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오열했고 국민도 울었다. 마음이 아파서, 상황이 기가 막혀서, 대한민국이 한심해서 울고 또 울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세월호 사고 이후 마음 편히 봄을 즐겼던 기억이 없다. 그 해 봄, 그 다음 해 봄, 또 그 다음 해 봄을 보내며 꽃을 보아도 슬펐고 산엘 가도 마음이 아팠다. 많은 이들이 같은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왠지 미안해서, 어쩐지 죄스러워서 마음 편히 웃고 즐기지도 못했으리라.

물론 먹고 살 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산 사람은 살자'는 마음으로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황을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이겨내기가 힘들어서, 많은 순간 잊고자 했고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그 죄스러움조차 외면하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경일 게다.

그렇게 1073일이 흐른 2017년 3월 23일, 세월호가 녹슬고 긁힌 모습으로 떠올랐다. 다음날인 24일엔 목표치인 13미터까지 수면 위로 인양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된 지 2주만에 진행된 일이다. 세월호를 보며 가족들은 통곡한다. 이리도 쉽게 올라오는데, 이제야 올라오다니, 왜 그동안 못 올라왔는지.

3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녹슬고 긁힌 건 세월호만이 아니다.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 못한 채 국민들은 상처입었고 가슴엔 피멍이 들었다. 초등학생 딸을 둔 한 가장은 세월호 사고 이후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거리에 섰다. 자신의 안일함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한 워킹맘은 초등학생 딸과 함께 노란 리본을 접는다. 힘들게 얻은 아이를 국가의 무능함으로 잃어서는 안된다는 절박감에서다.

이들에겐 지금도 한 어머니의 절규가 너무도 생생하다. 1994년 성수대교 사고로 딸을 잃은 어머니는 20년 후 세월호 사고로 다른 아이마저 잃었다고 했다.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정부에 항의하지 못한 탓에, 정부를 그냥 내버려둔 탓에 다른 아이마저 잃었다며 자신을 탓했다.

긁히고 패이며 국민들이 상처입는 동안 정부는 무얼 했을까. 그들은 죄책감도, 미안함도 못 느끼는 듯했다.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왜곡하고 숨기기 바빴다. 비극적 현실 앞에서 정부는 무능함과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줬다. 단언컨대 파면된 박근혜 전대통령과 그녀의 정부는 야만스러웠다.

국회도 분열됐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초당적 이슈 앞에서도 그들은 갈라졌다. '그녀'의 눈치만 살피며 비겁하게 계산하던 이들 탓이다. 심지어 막말까지 쏟아냈다. 2015년 4월, 김진태 의원은 '최소 1천억 원 이상의 국민 혈세'를 주장하며 세월호 인양을 반대했고 주호영 의원은 교통사고로, 홍문종 의원은 해상교통사고로 세월호 사태를 묘사했다. 그들이 국회의원이라는 게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저도 1년 전에는, 아이를 잃기 전에는 여러분처럼 그 자리에 있었어요. 저는 운동권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예요. 그냥 평범한 아줌마이고 엄마였어요."

2015년 봄, 광화문 앞에서 삭발을 하던 한 어머니는 자신을 지켜보는 군중들을 향해 외쳤다. "당신들도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 나처럼 될지 모른다"며 그는 울부짖었다. 세월호 사고는 재수가 없어서 발생한 것도 아니고 흔한 교통사고도 아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다면 우리도 그처럼 통곡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노란 프리지아 꽃, 개나리꽃과 함께 2017년 봄도 성큼 우리 곁으로 왔다. 노랑은 누구의 말처럼 '보기도 싫은' 색이 아니라 봄을 알리는 전령의 색이다. 세월호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소망의 색이기도 하다. 정부와 국회는 떠오른 세월호와 함께 제대로 된, 정확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명령이다. 세월호의 아픔을 하루 속히 치유하고 바르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도 이젠 봄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윤경 아이뉴스24 편집인 겸 부사장 y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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