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지난해 '인권 사각지대'라는 지탄을 받았던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근로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휴게시간 없이 장시간 근무를 강제하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정규직 근로자에게 허락을 맡게 하는 등 여전히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다수의 근로자들에 따르면 물류센터 측은 최근 10분 남짓의 야간 휴게시간을 없앴다. 이에 따라 야간 근로자들은 오후 7시부터 오전 3시까지 식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별도의 휴게시간 없이 근무한다. 배송물량이 많은 날에는 새벽 5시까지 꼬박 9시간 30분을 쉼없이 일하는 상황이다.
현행 기준상 근로기준법 위반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 5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 8시간 미만인 경우 식사시간 포함 30분의 휴게시간만 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 5시까지 잔업할 경우 별도의 휴게시간(30분)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8시간 이상 근무 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근로자들은 9만9000㎡ 규모의 물류센터를 바쁘게 오가는 직무 특성상 30분의 휴게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야간근로자는 익일배송(로켓배송)을 위해 새벽 1시 50분까지 물류작업을 마감해야 하기 때문에 주간 근로자보다 업무 부담이 크다는 설명이다.
덕평물류센터에서 집품 업무를 담당했던 야간 시간제 근로자 A씨는 "물류센터가 워낙 크다보니 집품 업무를 하다보면 7시간 동안 3만보 이상을 걷는데, 잠시도 쉴 수가 없어 일을 마치고 나면 다리가 퉁퉁 부었다"며 "야간조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잔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총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한다"고 토로했다.
덕평물류센터에서 3개월간 근무했던 야간근로자 B씨도 "공식적인 휴게시간이 없어 눈치껏 담배 피러 나가서 잠깐 엉덩이 붙이는 게 쉬는 시간의 전부"라며 "근로자의 복지가 아니라 업무 능력 차원에서 생각하더라도 중간에 10분씩 휴식을 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근로기준법 이상의 휴게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C사는 야간 근무 9시간에 식사시간 1시간, 휴게시간 30분(15분씩 2회)을, D사는 9시간 근무에 식사시간 1시간, 휴게시간 40분(20분씩 2회)을 보장한다. 야간근로자에게 휴게시간을 주지 않는 곳은 쿠팡이 유일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센터는 근무 강도가 고돼 2시간 일하고 15~20분 쉬어도 힘들다"고 덧붙였다.
근로자들은 쿠팡의 자회사인 '컴서브'가 물류센터 운영 업무를 담당하면서 근로 환경이 악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협력업체가 물류센터를 관리했을 때는 30분의 휴게시간을 보장했으나, 지난 5월부터 컴서브가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쉬는 시간을 없앴다는 얘기다. 이후 항의가 빗발치자 10분의 휴게시간을 잠깐 부활시켰으나 현재 그마저도 사라진 상태다.
위 사실과 관련해 업체 측은 잘못을 인정했다. 물류센터 운영 주체인 컴서브는 "물류센터 운영 주체가 바뀐지 한 달 정도밖에 안돼 과도기 단계에서 발생한 일"이라며 "발견된 일은 앞으로 즉시 시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화장실 갈 때마다 허락 맡아야…1년 전 문제 반복
휴게시간이 없으니 근로자들이 화장실을 가거나 잠깐의 휴식을 취할 때도 정직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쿠팡은 지난해 5월에도 소지품 검사 및 화장실 허락 등을 문제로 '인권침해'라는 지적을 받았다. 1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앞서 A씨는 "정규직 직원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면 이름을 적어놓고 5분 안에 돌아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며 "화장실을 가는 것마저 '게으름을 핀다'며 못마땅하게 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벌러 이 곳에 온 것이 아니라, 쿠팡에 죄를 지어서 노역을 하러 온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야간근로자 E씨는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 물류센터에서 일했을 때는 휴게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 가기도 편했다"며 "쿠팡은 별도의 휴게시간이 없으니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해 굴욕적인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출근 전이나 저녁시간에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노무업계 관계자는 "쉼 없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업종 성격을 감안하면 관리자 입장에서는 근로자 1명이 쉬면 다른 근로자가 해당 업무를 대체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것을 보고하라고는 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화장실에 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하거나, 못 가게 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식사시간 30분 동안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될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물류센터 환경상 30분 안에 밥을 먹기도 빠듯하다는 게 근로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담배를 피울 만큼의 여유는 당연히 없다는 얘기다.
물류센터에서 출고업무를 담당하는 야간근로자 F씨는 "100~200명 규모의 사람들이 한 번에 식사를 하는데, 각자 근무하는 층에서 4층 식당까지 계단으로 이동해 배식을 마치면 실제 밥을 먹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된다"며 "더욱이 식사시간이 끝나기 5분 전까지 작업장으로 돌아오라고 해 배가 아파도 참고 복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본사·쿠팡맨 이어 물류센터 근로자 일급도 지연
또 쿠팡이 본사 직원들의 임금 상승 소급분을 체불하고, 쿠팡맨의 시간외수당 13억원(쿠팡측 기준)을 미지급한 가운데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임금도 종종 체불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특히 일급을 받는 단기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약속한 시간보다 2~3일 늦게 급여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임금은 지급일에서 단 하루만 늦어져도 체불에 해당한다.
A씨는 "오전 3시에 야간 근로를 마치면 당일 오후 3~4시까지는 일급이 들어와야 하지만 이틀씩 지급이 늦어지는 날이 지난 2주간 3회나 됐다"며 "한 번은 담당자에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문자를 보내니 한 시간 안에 밀렸던 급여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E씨 역시 "일급이 하루 이틀 밀려 한꺼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막노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돈이 빨리 들어오기 때문인데, 그마저도 밀리니 사람 취급도 못 받으면서 이 일을 왜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야간 근로자 대부분이 불만이 높지만 비정규직이라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물류센터 특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해명했다.
컴서브 관계자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보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에서 벗어나게 되면 알려달라는 취지"라며 "물류센터는 협업하는 업무가 많아 한 명이 이탈하면 다른 작업자의 업무가 마비될 수 있는 데다,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작업자들이 움직이면 공유하라는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라고 해명했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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