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지난 30일 새벽 2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 첫 휴게시간이 생겼다. 인권침해 실태에 관한 보도가 나간 지 3일 만이다. 9만9천㎡ 규모의 물류센터를 바쁘게 오가던 야간 근로자들은 잠시나마 앉아 퉁퉁 부은 다리와 발을 주무를 수 있게 됐다. 이 시간만큼은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를 피러가는 것도 자유롭게 허용됐다.
오후 7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식사시간 30분을 제외한 9.5시간을 꼬박 서서 일했던 야간 근로자들은 앞으로 잔업 시 30분간의 휴게시간을 갖게 됐다.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이날 야간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15분씩 두 차례에 나눠 쉬면 더 좋았겠지만 잠시나마 한숨 돌리니 좋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울러 쿠팡은 물류센터 일용직 근로자에게도 4대 보험을 적용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최근 사라진 10분간의 휴게시간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기사가 보도된 27일 밤 덕평물류센터장은 야간 근로자들을 모아놓고 일반 근무(오후 7시~새벽 3시)시 추가의 휴게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현행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닌 만큼 별도의 휴게시간을 마련할 의무는 없다는 설명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도 아직 갈 길이 남아 보인다. 한 야간 근로자는 "보도 당일 '편하게 담배 피고 싶으면 정직원으로 들어오지 그랬냐'는 센터장의 비아냥거림에 냉가슴을 앓았다"며 "사실 휴게시간보다 인격적인 대우를 더 바랬는데, 마치 최소한의 법만 지키면 비정규직에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처럼 느껴져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럼에도 쿠팡이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변화를 보인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단순 '근로기준법 준수'가 아니라 '물류센터 혁신'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앞서 쿠팡은 물류센터업계의 고질적인 악습을 끊기 위해 내부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물류센터 운영 주체를 자회사로 바꿨다. 그 초심이 그대로 지켜지길 바란다.
사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야간 근로자들이 목소리 내기를 꺼려했다. 정규직 전환이 보장됐던 쿠팡맨이나, 이미 정규직인 본사직원과 달리 물류센터 근로자는 대부분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일급제에서 주급제로, 단기 일용직 중 장기 근로자를 고정 근무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이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두렵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용기를 낸 일부 근로자들 덕에 쿠팡 물류센터가 조금이나마 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센터장이 야간 근로자들을 향해 "신고자 때문에 일찍 퇴근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라고 말한 부분은 우려스럽다. 자칫 야간 근로자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전날 새벽 일각에서는 "휴게시간으로 시급도 줄고, 퇴근 시간도 늦어진 듯해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곳곳에서 나왔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만,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과도기를 넘어 완전히 정착하기까지 내부 근로자들의 용기는 계속돼야 한다. 쿠팡 역시 물류센터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내부 고발자가 말한 그 '노역'의 현장이 '살 맛나는 일터', '일 하고 싶은 회사'로 바뀌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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