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혜경기자] 미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요구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개정협상이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12일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한미 FTA 협정문에 의하면 한 쪽에서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하면 상대방은 30일 이내에 응해야 한다.
14일 한국투자증권의 박소연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 통상본부장이 아직 공석이고 FTA 재협상 개시 90일 전에 행정부가 의회에 이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에 재협상은 빨라야 11월부터 개시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서한에서 '재협상(renegotiation)'이 아니라 '개정(amendment)' '수정(modific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돼 일각에서 우려하는 강경한 주장이 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와 북핵 문제 등 외교 현안들을 감안하면, 당장은 미국이 한국과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더불어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FTA 재협상 이슈를 일부러 전면에 내세운다는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 애널리스트는 아직 협상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고, 미국의 구체적인 입장도 확인된 것은 없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이번 개정협상과 관련된 시장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한미 FTA 발효 후 양국 간 관세는 이미 대부분 철폐됐다고 지적했다. 제조업(2016년 기준 양국간 교역의 93.4% 차지) 가중평균 관세율은 0.1% 수준에 불과한 상황으로, 민감 품목으로 분류된 제품의 관세 자유화가 지연/촉진된다 해도 전체 영향은 매우 미미할 것이란 의견이다.
또한 최악의 경우 협정이 아예 종료된다 하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 관세율로 보면 미국의 부담이 더 높아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박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FTA가 종료되고 양국이 WTO 가입국에 부과하는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을 상호 적용하면 제조업 기준으로 미국의 대(對) 한국 관세율은 1.6%, 한국의 대(對) 미국 관세율은 4.0%로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이는 협정 종료시 미국의 대 한국 수출기업이 한국의 대 미국 수출기업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부담한다는 것이란 설명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자동차를 제외하면 양국 교역구조는 대체로 상호보완적"이라는 점도 거론했다. 대체로 한국과 미국은 자국의 경쟁력이 낮고, 상대국의 경쟁력이 높은 품목을 수입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무역특화지수(TSI) 분포를 보면 대체로 1사분면(대 세계 수출특화, 대 한국 수출특화)과 3사분면(대 세계 수입특화, 대 한국 수입특화)에 몰려 있는데, 4사분면에 점들이 몰려 있다면 내가 수출 경쟁력을 보유한 품목에서 상대국의 수입이 늘고 있다는 뜻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결국 미국의 대 한국 무역적자 이슈는 자동차와 반도체 등 특정 품목의 문제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IT 업종, 무관세여서 영향 미미
IT 업종도 무관세라는 점에서 영향이 미미하다는 판단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반도체의 경우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이미 전 세계에서 무역 장벽이 철폐돼 영향이 없고, 가전제품도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 상당수가 현지공장에서 생산 중이라 직접적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개정협상의 집중타깃으로 보이는 자동차도 센티멘트에 우려를 미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게 박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그는 "자동차는 무역수지 적자폭이 가장 크게 증가해 이번 개정협상에서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자동차 대 한국 관세 인하폭(2.4%) 자체가 크지 않았고, 한국은 대 미국 관세 인하폭(8.0%)이 훨씬 컸는데도 수입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애널리스트는 "이는 관세 자체보다는 기업 경쟁력의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현 주가에는 미국 시장의 성장세 둔화나 사드 관련 중국에서의 관련 판매 부진 등 다른 이슈가 훨씬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박 애널리스트는 "한미 FTA는 기존 제조업 관세 자체의 변경이 최종 목적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정부가) 탄핵 등 정치적 이슈를 피해 관심을 분산하고, 법률 시장이나 지식재산권 등 서비스 시장 추가 개방을 위한 압력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수지 적자 폭이 큰 자동차와 철강은 FTA 개정보다는 비관세 장벽을 통해 제재할 가능성이 높아 FTA 자체보다는 수입물량 제한이나 반덤핑 관세 등의 이슈를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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