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상도 기자]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중국의 심경은 초조함이다. 방관자 역할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의 지도자들은 냉전 시절 맹방이었던 북한이 중국의 궤도에서 이탈할 가능성에 대해 점점 더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국무위원장이 오랫동안 적이었던 미국을 포용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을 감소시켜 미중 간 세력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의 북경지사장 제인 펄레스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조바심하는 중국’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을 동원해 소개했다.
제인 펄레스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거나, 경우에 따라 제거하는 일을 미국이 돕는 대가로 비핵화를 약속하는 거래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북한은 항상 중국을 믿지 못했고, 일종의 복수심을 품고 있다”고 저명한 중국의 북한 역사가인 선지화는 강조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남한·북한이 한데 뭉쳐서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맹방인 남한과 북한을 한데 묶어 한반도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계기로 싱가포르 회담을 이용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중국이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전통적 완충지역인 북한이 사라지면서 미군이 유령처럼 국경 지역에서 대치하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1972년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이 중국에 대한 그동안의 충성을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하던 해에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그때까지 우방이던 소련을 멀리한 경험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이탈시켜 자기편으로 만들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은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너무나도 똑같은 상황을 트럼프와 북한의 회담에서 보고 있다”고 워싱턴에 있는 스팀슨 센터의 중국 전문가 윤 순은 지적했다. “중국이 할 수 있었다면, 북한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중국으로서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협정을 체결,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2만8천5백명의 미군이 철수하는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전역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오고,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우방 국가들에게 약속을 저버림으로써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어떤 시나리오이든 중국으로부터의 독립하려는 북한, 그리고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중국으로 인해 동북아시아는 전략적 재편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저항하는 사례가 이미 있었다.
2011년 집권한 후 김 위원장은 중국의 하수인으로 알려진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처단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중국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진 자신의 형 김정남의 살해도 명령했던 것으로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파악하고 있다.
집권 처음 6년 동안 김정은은 이웃에 있음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회담을 앞두고 지난 3월에 베이징으로, 그리고 지난 달 다롄으로 심판을 봐달라는 심정으로 만나러 간 것이 전부다.
두 번의 만남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장막에 가려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재정적 지원이나 안정 보장을 약속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중국의 동생 역할을 해 온 북한의 억울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억울함은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 40만 명이나 희생자를 낸 중국을 위해 기념비 하나 제대로 세워주지 않은 현실로 표현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방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에 투항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현재 우방인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매우 불안한 파트너로 인식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은 특히 그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다.”라고 호주국방전문가 휴 화이트는 설명했다. “미국이 중국 국경에서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다고 북한의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으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같은 움직임은 최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만남에서 포착됐으며, 앞으로 평양에 오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방문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어떤 중소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도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미 그러한 목표를 위해 올바른 길로 접어들었다”라고 화이트는 분석했다. “그것은 핵무기 덕분이다.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것은 가능한한 많은 독립성을 갖는 것이고, 따라서 가능한한 많은 핵능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미국을 포용하는 것도 역시 한계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의 모르는 채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미국에는 여전히 공산독재에 대한 광범위한 적대감이 남아있다.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 상하의원들과 트럼프 행정부 내에도 북한의 정권 교체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으로부터의 경제 원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백악관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방문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울 마음이 없고, 그것은 한국, 중국, 일본의 일이라고 명확히 했다. “그들이 이웃이기 때문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백악관 방문 이후 북중간 국경 무역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중국 국영 항공사인 에어 차이나는 6개월간 중단했던 평양 노선을 재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한 유엔 제재 이행 촉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중국은 경제적 도움을 제공하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애쓰고 있다고 중국 인민대학교의 북한 전문가 청샤오허는 설명했다.
청샤오허는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에 보여줬던 대북 제재에 대한 소극적 협력도 하지 않고 있다”며 “중국은 미국을 믿지 않고, 미국은 중국을 믿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한 중국의 과거의 노력들은 투자를 꺼리는 중국 기업들로 인해 종종 실패로 끝났다.
북한의 탄광과 다른 천연 자원에 투자한 중국의 기업들은 북한의 속임수에 당한 후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중국 국경마을 단둥과 북한을 있는 압록강 다리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009년 평양을 방문한 후 중국 측이 건설하고 있는데, 아직 완공이 안 된 상태다. 북한이 자국 영토로의 연결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기간 동안 중국의 고위 관리는 한 명도 참가하지 않는다. 중국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회담 후 한국, 일본을 거쳐 베이징으로 올 때까지 소식을 듣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중국의 외교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시진핑 국가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수락했다. 이 달 말경 방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연세대학교의 중국연구소 존 드루리 교수는 “시진핑이 국가주석으로 처음 평양을 방문하는 일이 곧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의 방북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과 중국 누구의 사람도 아닌 자신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으로 기울기 보다는 힘의 균형추 역할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드루리 교수는 전망했다.
김상도기자 kimsangd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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