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11번가가 오는 9월 SK플래닛에서 분사한다. 11번가가 SK플래닛 품에 안긴 지 2년 반 만이다. 업계에서는 SK그룹이 11번가에서 'SK' 타이틀을 떼며 매각절차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고 분석한다. 이에 대해 SK플래닛 측은 추가 투자를 유치하되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19일 SK플래닛은 경기 성남시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11번가 인적분할 신설법인 설립 ▲데이터 마케팅 플랫폼 부문과 SK테크엑스 합병 두 가지 안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커머스 신설법인인 '11번가'(가칭)와 마케팅 플랫폼과 SK테크엑스가 합병한 'SK플래닛'이 오는 9월 1일 출범할 예정이다.
이날 SK플래닛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은 11번가를 인적분할 한 후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H&Q코리아와 국민연금(3천500억원)·새마을금고(500억원) 등에 5천억원 규모의 신규 전환우선주(RCPS·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상환받거나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우선주)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들 투자자의 신설법인 지분율은 18%가량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11번가의 기업가치는 약 2조5천억원 상당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투자는 3년 만에 이뤄진 결실이다. 2016년 11번가는 중국 최대 민영투자회사인 '중국민성투자유한공사'와 1조3천억원 규모의 투자 협상을 벌였으나 사드 악재로 최종 무산됐다. 지난해엔 SK플래닛에서 11번가 사업부를 분사한 후, 롯데·신세계 등에 지분 50% 안팎을 넘기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경영권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좌초됐다.
SK텔레콤은 이번 투자자금을 바탕으로 11번가를 한국형 아마존으로 성장시킨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ICT 기술과 결합한 획기적인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오는 2019년 흑자 전환하겠다는 기존 목표도 그대로 유지된다. SK플래닛 측에선 법인 규모가 작아지는 만큼 흑자 전환도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적 성장을 바탕으로 추가 투자도 유치할 계획이다. 애초 11번가는 현재 투자금의 2배인 1조원 조달을 목표로 했었다. 신세계가 1조원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데다, 롯데도 이커머스 사업에 3조원을 쏟아부을 예정인 만큼, 11번가의 '실탄' 마련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에서 상장 카드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업계 "SK플래닛 2년 반 만에 이커머스사업 포기" 지적
업계에서는 SK그룹이 11번가 매각절차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SK플래닛이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며 흡수합병한 11번가를 2년 반 만에 다시 분사시키는 것은 사실상 이커머스사업에 손을 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SK플래닛은 지난 2016년 2월 커머스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11번가 운영 자회사인 커머스플래닛을 흡수 합병했다. 당시 SK플래닛은 기존 플랫폼 사업을 떨어내고 커머스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 11번가를 2020년까지 거래액 12조원, 국내 3위의 종합유통사로 성장시키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지난 2년간 11번가는 SK플래닛 품에서 폭풍 성장했다. 지난해 11번가 거래액은 9조원 수준으로 SK플래닛에 인수되기 전인 2015년 대비 50% 증가했다. 11번가 전매특허인 '십일절'에는 국내 이커머스 사상 최대 일거래액인 640억원을 달성했으며 이달 거래액만 1조원에 육박했다. 일각에선 11번가가 G마켓을 넘어 단일플랫폼 기준 업계 1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11번가의 막대한 적자는 SK플래닛·텔레콤의 발목을 잡아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 SK플래닛은 2015년 59억원 수준이었던 영업손실이 이듬해 3천300억원대로 폭증했다. 지난해 11번가의 마케팅비가 줄어들며 SK플래닛 영업손실(-2천500억원)이 1천억 가까이 감소한 데다, 올 1분기에도 이러한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흑자 전환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SK그룹에서 11번가를 한국의 아마존으로 키우겠다고는 하지만, 본질은 SK플래닛의 적자부담을 덜어내려는 조치로 보인다"며 "모회사가 ICT 기업인만큼 AI 분야 등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술혁신이 단기간에 이뤄지는 건 아닌 데다 구체적인 시너지 방안이 두루뭉술하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SK플래닛이 11번가를 인적분할하며 SK 타이틀을 떼려고 해 내부 직원들의 동요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마디로 대기업 계열사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분사하면서 인력구조조정이 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SK플래닛 "커머스는 4차산업혁명 초석…매각 고려 안 해"
이에 대해 SK플래닛은 매각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정호 SK텔레콤 대표가 "11번가의 매각은 없다"고 못 박은 만큼, SK그룹의 11번가 육성 의지는 확고하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지난해 마윈 알리바바 회장과 만나 "알리바바가 이커머스기업인 줄 알았는데 데이터 기업이었다"며 SK그룹 ICT 사업에서 11번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SK플래닛이 11번가 육성에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 "SK플래닛의 흡수합병으로 SK텔레콤의 손자회사였던 11번가가 자회사까지 오르게 됐다"며 "SK플래닛 안에서 수많은 성과를 거뒀고 이번 투자자들도 그 점을 인정해 투자를 결정했다. 신설법인으로 나가서도 경쟁력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11번가 신설법인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SK' 브랜드명이 붙을지 말지 등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며 "매각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 가능성도 없다. 기존 사업이 독립법인이 되는 거라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분할합병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11번가 신설법인 대표직을 누가 맡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통과되면 그 후에 법인명과 대표직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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