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를 담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을 들어 문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5당 대표의 정치적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급기야 선거제 논란에 청와대까지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야 3당은 국회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당정청, 나아가 국회 차원의 확고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평화당의 경우 엄동설한에 천막농성에 돌입하기까지 했다. 도대체 국민들 입장에선 생소하기만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무엇이길래, 정부의 내년 예산까지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내몬 것일까.
◆연동형 비례제 20대 총선 대입하면?
우선 현재 국회의원 선거제도부터 살펴보자. 현행 선거제도에서 유권자는 1인 2표를 행사한다. 개별 유권자의 소속 지역구 후보를 찍는 한 표, 비례대표 배분을 위해 정당을 찍는 한 표다. 2004년 총선부터 도입된 이른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 253명은 지역구마다 당선자 1인을 뽑는 소선구제로, 47명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가령 정당 득표율이 30%인 A정당은 득표율만으론 300석 중 90석을 배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당 득표율과 비례해서 받을 수 있는 의석은 비례대표 47석 중 14석(30%)이다. 최소한 지역구에서 76명의 당선자를 배출해야 정당 득표율에 걸맞은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기 위한 당 조직, 선거자금에서 열세인 소수정당 입장에선 불리한 제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선거 결과, 각 정당의 실제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과 가깝게 나타나도록 한 제도다. 선진국 중에선 독일이 대표적 채택 사례다. 법정 의원 수 598명 중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비율이 1:1로, 정당 득표율에 비해 지역구 당선자가 부족하면 비례대표로 대신 채울 수 있도록 했다. 다수당 대표가 내각을 총괄하는 내각책임제 특성상 선거결과가 최대한 민의에 가깝게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내에 적용하면 어떨까. 정당 득표율 30% A정당의 경우 전체 300석 중 90석을 우선 할당받는다. 지역구 당선자가 30명이면 비례대표로 60명, 지역구 당선자가 60명이면 비례대표로 30명을 더 배정받을 수 있다. 대신 지역구 당선자가 90명이면 비례대표는 0명이다. 그래서 당선이 유력한 지역구 후보를 많이 거느린 다수당 입장에선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는 제도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예로 들면 비례대표 배분을 위한 정당 지지율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한국당)이 33.5%,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25.5%, 국민의당 26.7%, 정의당 7.2% 순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를 치렀다고 가정하면 새누리당은 100석, 새정치민주연합은 76석, 국민의당 80석, 정의당 21석이다. 기독자유당, 민주당, 코리아당 등 원외정당 지지율까지 반영한 결과다.
물론 실제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 122석, 새정치민주연합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가 치러졌다면 지역구 당선 25명 대부분이 호남인 국민의당은 사실상 전국 정당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정의당은 진보정당 사상 처음으로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를 단독 구성할 수 있었다.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지금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제 도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2월 중앙선관위가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양당 중심의 지역주의 해소 차원에서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대표적이다. 전국을 서울과 인천·경기·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북·제주, 대전·세종·충남북 등 인구 비례 기준 6개 권역으로 나누고 이 권역 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석수를 배분하자는 구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비례대표의 대폭적 확대다. 당시 선관위는 의석수 확대가 국민여론상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해 지역구는 200명, 비례대표는 100명으로 의석비율을 조정, 각 권역 내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도록 했다. 그러나 이는 지역구 53개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인 만큼, 여야 지역구 출신 의원들의 반발로 결국 도입 논의는 무산됐다.
◆'칼자루 쥔' 거대 양당 vs '속타는' 야 3당
지난 10월말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 방안을 중심으로 여야간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 3당이 당 지도부까지 나서 연일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을 위한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는 배경은, 무엇보다 2020년 총선에 대한 강한 위기감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일 발표한 조사(조사의뢰: YTN, 전국 성인남녀 2천513명 대상, 조사기간 11월 26~30일, 응답률 7.7%, 표집오차 95% 신뢰수준 ±2%) 결과 각 당 지지율은 민주당 38%, 한국당 26.4%, 정의당 7.8%, 바른미래당 6.6%, 민주평화당 2.6%다. 민주당의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 수준 지지율을 회복하는 추세다.
소수정당 입장에선 적어도 정당 지지율상으론 거대 양당 구조로의 회귀가 이뤄지는 셈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본질적으로 거대 양당에 불리한 제도"라며 "다음 총선에서 당 지지율만큼의 의석수가 보장된다면 현재 다수당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개특위의 경우 위원장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맡고 있지만, 전체 18명 중 민주당이 8명, 한국당이 6명으로 양당이 정치개혁 논의를 주도하는 상황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 선거구제를 집중 논의하는 정치개혁 1소위의 경우도 민주당과 한국당이 나란히 8명이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각 1명씩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현행 선거제도에서 지역구 당선 가능성이 소수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내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잃을 것이 많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지역구 의석 축소를 전제로 비례대표 확대를 논의할 경우 당내 갈등이 불가피하다. 한국당 관계자는 "지역구 감소는 의원들의 밥그릇이 걸린 문제로 매우 민감하다"며 "굳이 도입되지 않아도 당 차원에서 손해볼 게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 야 3당의 불만에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이 대표는 지난 16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의 모임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해 비례대표 의석을 얻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선거제 개편을 위한 법정시한까지 촉박한 실정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 개편을 반영한 지역구 조정은 공직선거법상 총선 1년 전까지 이뤄져야 한다. 내년 4월 초까지다. 이같은 취지가 반영된 선거법 개정안은 법안의 공포 및 효력 발생 시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2월까지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 더구나 정개특위의 활동시한도 이달 말까지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기국회가 종료되면 국회가 사실상 휴지기로 들어가 방학이나 다름 없게 된다"며 "예산안 처리 전까지 국회가 가동돼야 하는 상황에서 야 3당 입장에선 민주당, 한국당에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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