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금융을 담당하다 보면 돈의 액수에 둔감해진다. 회사마다의 순익과 정부의 예산 등을 두드리고 있자면 조 단위를 적으면서도 놀랍지 않다. 그러다가 또 다시 액수에 민감해지는 순간은 내 호주머니에서 구르는 돈을 셀 때다. 월급은 얼마, 적금과 주택청약은, 또 보험금은? 하고 떠올리면 '전년 순익 3조 클럽' 같은 수식어를 쓸 때보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손에 쥐는 돈이 적을수록 한 푼에 울고 웃게 된다는 이야기다. 용돈을 받던 학생 때에는 1천원으로도 하루 천하를 누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 천원짜리 한 장으로도 하굣길 컵떡볶이며 신호등 사탕을 손에 뿌듯하게 쥐었다.
'대리입금'으로 불리는 어린이·청소년 사채는 그래서 눈에 띄었다. 온라인에서 '믿음론' 'SNS론'으로 암암리에 퍼지던 불법 사금융이 아이들에게까지 내려갔다는 이야기에 추억 속의 포켓몬 딱지 따기나 판치기 따위를 떠올린 내가 순진했을까.
학생 사채는 생각보다 정교했다. 해시태그로 '대리입금' '댈입' 이라는 이름을 걸고 카카오톡 오픈채팅, SNS를 통해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액수도 적지 않다. 꼬마 대부업자들은 채무자 1인당 1만원에서 수십 만원까지 융통해 준다. 1인당 대출 금액의 하한선도 최소 1만원 이상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자는 허무맹랑하다. 이들은 이자 대신 '수고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돈을 꾸는 채무자가 원금의 20~30% 이상부터 먼저 제안을 한다. 수고비가 채권자의 마음에 들면 대리입금이 진행되는데 만약 더 높은 수고비를 내걸거나 더 빠른 상환을 약속한 채무자가 나타나면 거래가 무산되기도 한다. 경매 식으로 돈을 꾸게 되는 셈이다.
최소 이자는 당연히 법정최고금리인 연 24%를 넘는다. SNS에 올라온 거래 후기들을 살펴보면 10만원을 빌리고 보름 뒤에 30만원으로 갚거나, 20만원을 빌려주고 이틀 뒤에 27만원을 갚으라고 종용하는 등 얼토당토않은 이자율이 적혀 있다. 원금이 높으면 그만큼 위험성도 올라간다는 명목으로 수고비가 그 이상으로 치솟는다. 반납이 늦어진다면? 하루 이자가 아니라 시간당 몇 천원의 이자가 붙는다.
채무자와 채권자가 서로를 인증하는 방식도 점입가경이다. 어린이·청소년 채무자는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학생증과 여권으로 신원을 밝힌다. 얼굴이 드러나게 사진을 찍어 전송하고 부모님과 학교 연락처까지 보내야 비로소 거래가 가능하다. 반면 채권자는 본인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스타의 콘서트 표 대금을 마감일 전에 입금하기 위해, 스타를 모델로 한 상품인 굿즈나 스타의 앨범을 구매하려 개인대출을 이용한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높은 온라인 게임 머니를 부모님 몰래 충전하기 위해서도 쉽게 대리입금자를 찾는다.
고등학생들의 사채는 더욱 심각하다. 금액이 커져 불법 대출에 손을 댄다. 아예 범죄나 유흥을 목적으로 빚을 불린다. 사설 스포츠 토토(그래프)나 홀짝 사다리, 달팽이 등 온라인 도박에 빠지거나 인터넷 방송 BJ에게 선물할 사이버 머니를 구매하고, 게임 아이템을 사는 등 사행성 자금을 대출로 대체한다.
청소년 도박과 그에 따른 금융 피해는 통계적으로도 명확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조사한 2018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에 따르면 재학 중인 청소년의 6.4%가 도박 문제 위험집단으로 집계됐다. 사다리, 달팽이, 그래프 등 온라인 내기 게임(3.6%)과 온라인 카지노, 블랙잭 등 불법 인터넷 도박(1.6%)을 하는 청소년도 전보다 느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도박과 불법 사채, 금융사기 연루와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불법 도박 문제로 센터를 찾는 청소년의 13.6%가 1천만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 어른들이 운영하는 불법 도박에 빠진 아이들은 다시 어른들에게 돈을 빌린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의 돈놀이는 어른들의 고리대금업과 쏙 빼 닮았다. 보증을 받는 방식도 사회초년생을 노린 작업대출과 동일하다. 금액이나 수법 면에서 청소년 사채의 공급책은 청소년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제주도 청소년들에게 불법 고리대금업을 알선하고 돈을 빌려준 이들은 모두 성인이었다. 어린이 대출의 금액을 감안하면 이들의 차주 역시 꼬마 졸부일 리 만무하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불법 사채와 불법 추심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허인혜 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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