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수도권 금고는 시중은행이, 지방자치단체 금고는 지방은행이 맡아왔던 관례가 깨지면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사이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지방은행들은 시중은행들이 지방은행을 압도하는 출연금을 제시하며 지방은행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원성을 담아 호소문을 발표했다. 시중은행들은 재정난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를 돕는 한편 시장 경쟁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반박을 내놨다.
◆광주·경주·경북 침투한 시중은행…서울시 1금고도 지각변동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방은행과 시중은행 사이 지자체 금고 '룰'이 깨지며 다툼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광주 지역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농협과 광주은행이 KB국민은행의 출연금 비중에 밀려 자리를 내준 일이 대표적이다. 길게는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농협과 광주은행이 평가에 승복하지 않으면서 갈등은 법정싸움으로 치달았다. 대구도 안동시 금고를 신한은행에 내줬다.
수도권에서도 경쟁에 불이 붙었다. 우리은행이 1915년부터 명맥을 이어오던 서울시1금고가 신한은행으로 넘어가면서다.
지자체 금고란 지자체의 지방세나 각종 기금 등을 예치 받아 지자체가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협업하는 은행을 말한다. 전국 243개 지자체가 2~4년을 주기로 금고은행을 정한다.
지자체 금고 유치 평가점수는 금융기관의 대내외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30∼31점), 자치단체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18점), 주민 이용 편리성(20∼24점), 금고 업무 관리능력(19∼22점),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9점) 등으로 결정된다.
지방은행이라 하더라도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만큼 안정성이나 금리, 편리성 등 기본적인 은행업무에서 시중은행과 점수로 밀리지 않는다. 결국 당락은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의 협력사업 9점에 포함된 4점 가량의 출연금 규모로 결정된다는 전언이다.
금고지기 변화 흐름은 앞으로도 뜨거워질 전망이다. 50여 개 지자체 금고가 올해 말 계약 만료를 기다리는 중인 데다 여태까지 시중은행의 진출이 없었던 지방에서도 시중은행의 물밑 접촉이 감지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이 대구시, 경북도, 구미·안동·영주·칠곡 등 6개 지자체 금고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 부산시는 부산은행과 국민은행의 격전지다. 경남도 농협과 경남은행이 양분화했던 지자체 금고 시장에 시중은행이 뛰어들 조짐이 보인다.
◆지방은행 호소문 발표에…시중銀 "높은 출연금, 지자체-은행 '윈윈'"
시중은행이 지자체 금고지기 역할에 손을 뻗으며 지방은행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실제 먹거리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단순한 불안감 호소를 넘어 공식적인 입장문을 발표한 상황이다.
11일 부산은행과 대구은행, 광주은행, 제주은행, 전북은행, 경남은행 등 6개 지방은행 노사 대표는 공동 호소문을 발표하고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 개선 때 지방은행 입장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시중은행의 출연금 경쟁이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지방은행들은 "최근 일부 시중은행이 출연금을 무기로 지방 기초자치단체 금고 유치에 나서고 있다"며 "출연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하는 현 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중은행들이 출연금을 무기로 지방자치단체 금고를 공략한다면 지방은행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며 "시중은행이 지방자치단체 금고로 선정되면 공공자금이 역외로 유출돼 지방에는 자금 혈맥이 막히고 지역 경제는 더욱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자율경쟁과 지자체의 입장 등을 들어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지방은행들의 지자체 금고 독점이 오래돼 개선점을 놓쳐왔다는 비판도 더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자체 금고를 운영한다고 해서 은행이 특별히 많은 수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영업력 확대 측면에서 지자체 금고 운영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인데, 출연금을 높게 매길수록 지방의 시민들에게는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인혜 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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