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송오미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방문한 경북 포항시 북구 두호동 영일대 해수욕장 끝자락에는 정체 모를 큰 건물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근에는 아파트가 가득 들어차 있는 데다 해변가를 따라 맛집과 호텔이 늘어서 있어 굉장히 번화한 곳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큰 도로변에 위치한 이 건물은 간판도 없고, 몇 년째 운영되지 않아 방치된 탓인지 시설이 노후화돼 흉물로 전락한 신세였다.
이날 만난 주부 허정순(57) 씨는 "롯데마트가 점포를 오픈한다는 말을 옛날에 들은 적이 있다"며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고 이렇게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롯데마트가 4년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포항두호점'이 포항지역의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다. 북부시장, 두호시장 등 인근 시장 상인들의 반발로 오픈 일정을 계속 미루다 결국 올해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건물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방치돼 있는 상태다.
이날 방문한 롯데마트 포항두호점 건물은 곳곳의 시설이 녹슬고 낡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출입구는 먼지로 가득했고, 굳게 잠긴 문 넘어 내부에는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건축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주차장은 사용되지 않으면서 출구에 주차하지 말라는 안내판만 부착돼 있었다. 건물 내 일부 공터에는 인근 방문객들의 차가 주차돼 있었다. 건물이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해선지 이에 대한 경고 현수막도 부착돼 있었다.
롯데마트가 4년 전 건물을 지어놓고도 점포를 오픈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정치 논리' 때문이다. 주변 시민들은 점포 오픈을 원하고 있지만, 일부 시장 상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정치인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오픈 시기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특히 점포 오픈에 반대 입장을 펼쳐왔던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개점 계획은 더 불투명해졌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인근 시장 상인들은 반대하지만 주변 시민들은 점포 오픈을 원하고 있다"며 "포항시에서 상생 협의를 일단 진행하자는 입장이지만 관련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은 포항 북구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2013년부터 포항시에 롯데마트 포항두호점 개설 등록을 신청했지만, 경북도와 포항시는 '전통시장 공익'이라는 명분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롯데쇼핑은 지난 2014년 행정소송도 진행했지만, 재판부는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에도 롯데는 점포 오픈과 관련해 개설등록안을 포항시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건물은 당초 시행사인 STS개발 등이 롯데마트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으로, 이후 국민은행으로 소유주가 변경됐다. 이후 코람코펀드가 건물을 인수했으며, 롯데쇼핑은 점포를 오픈하지도 못하고 지난해 1월부터 임대차 계약에 따라 건물에 대한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다. 현재까지 지급된 점포 임대료만 53억 원에 달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점포를 오픈하지 못하면 매몰비용이 더 쌓일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선 오픈 계획을 유지한다는 것이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롯데마트 포항두호점이 오픈하면 500명에 이르는 고용창출과 연간 250억 원의 지역 농산물 판로가 확보돼, 지역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그러나 지역 상인들과 포항시가 롯데 측에 120억 원에 이르는 지원안을 요구하며 무리한 상생을 강요한 탓에 협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포항시 측이 선거를 위한 표 계산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듯 하다"며 "이런 일이 계속되면 포항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가 아닌, 민자 사업자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포항시청 관계자는 "그 지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면 전통시장과 주변 상권 피해가 크다는 판단 아래 개설 등록 허가를 안내준 것"이라며 "롯데 측에 대형마트가 아닌 다른 용도로 운영해주길 요청하고 있고, 롯데도 그 방안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롯데마트 관계자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현재 답변하기는 곤란하다"며 "향후 포항시와 조율을 통해 진전, 변경 사항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또 2010년 초반부터 롯데마트 포항두호점 개설 등록을 신청했으나 포항시가 한결같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4년 행정소송에서도 패소했지만 오픈 계획을 철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자세한 사항을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만 번복했다.
◆"전통시장·소상공인 생계 침해" 주장 검증에 한계
포항시는 롯데마트 포항두호점이 문을 열면 지역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생계를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록 검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2017년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발표한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한 출점규제 및 의무휴업 규제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 도입 전인 2010년과 이후의 소비 규모를 비교하면 대형마트는 -6.4%, 전통시장 -3.3%로 동반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마트가 휴업한다고 해서 전통시장 매출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포항 지역 관계자는 "지역주민의 편의권과 시장 상인들의 생존권이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문제로, 표심을 생각하는 정치권은 상인들의 생존권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며 "롯데 측도 개점이 계속 늦어지면서 오픈 의지도 점차 작아지고 있고, 마트 오픈을 기대하는 소비자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쪽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포항시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지역 상인들이 포항두호점 개점에 반대하는 명분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과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기반한다. 이 법에 따라 유통기업들은 지역협력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해 승낙을 받아야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성격이 유사한 이들 법에 따라 지역민과 상생협력 방안을 합의해도 지역 이익단체 등이 사업조정제도 등을 악용하면 꼼짝없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이중 규제'로 볼 수 있지만 정부가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규제 강화로 출점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규제도 좋지만 균형을 맞춘 국정운영으로 기업들의 활동을 좀 더 원활하게 함으로써 내수를 진작시키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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