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동원F&B '양반죽'이 국내 상품죽 시장의 선두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가정간편식(HMR) 강자 CJ제일제당을 주축으로 오뚜기·풀무원 등 경쟁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제품군 강화에 나서면서 '양반죽' 점유율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죽 시장은 '양반죽' 등 상품죽과 '본죽' 등 외식죽까지 합쳐 연간 5천억 원 규모로 형성돼 있다. 이 중 상품죽 시장 규모는 2015년 327억 원에서 지난해 745억 원으로 2배 이상 커졌다. 지난해에는 8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 가량 늘었다. 또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상온죽 시장은 약 1천50억 원, 냉장죽 시장은 135억 원으로 급속도로 커졌다. 올해 전체 상품죽 시장은 1천400억 원 이상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 상온죽 시장에선 동원F&B의 입지가 막강하다. 동원F&B는 지난 1992년 국내 최초로 즉석죽 브랜드인 '양반죽'을 내놨다. 이후 2001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고, 상품죽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50%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며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죽은 그동안 동그란 용기죽 일색에 편의점에서 간단히 요기하거나 병문안 갈 때 사가는 정도의 제품이었다"며 "지난해 11월 CJ제일제당이 상온 파우치죽을 앞세워 '비비고죽'을 출시한 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시장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품죽 시장 강자인 동원F&B는 올 들어 주춤한 모양새다. 지난해 60.2%였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1월 CJ제일제당이 '비비고죽'을 출시한 후 올해 1~2월 51.2%로 떨어졌고, 올해 8월에는 46.9%로 추락했다. 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십여년 만에 처음이다.
반면 CJ제일제당은 '비비고죽' 덕분에 시장 점유율이 수직 상승했다. '비비고죽'은 지난해 11월 제품을 출시한 후 한 달만에 상품죽 시장에서 22.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시장 2위인 '오뚜기죽(15.1%)'을 금세 제쳤다. 또 지난 8월 기준 점유율은 '양반죽'이 46.9%, '비비고죽'이 41.6%, '오뚜기죽'이 10.6%로, 1~2위 격차는 올해 1~2월 27.7%p에서 8월에 5.3%p로 급격히 줄었다. 상품 출시 1년도 안돼 시장 1위의 턱 끝까지 추격한 것은 식품업계에선 이례적이다.
상온 HMR 기술력 기반의 차별화된 레토르트 살균 방식을 적용해 죽 완성품의 식감, 맛, 외관 등에 차별점을 둔 것이 주효했다. 특히 각 메뉴별로 특색있는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쌀, 육수, 고형물 연구에 집중, 원물감을 제대로 살린 것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 '비비고죽'은 용기죽 중심의 기존 상품죽 시장에 상온 파우치형이라는 신규 카테고리를 개척해 상품죽 시장의 판도도 바꿨다. 이에 용기죽으로만 운영했던 업체들도 최근 잇따라 파우치죽을 출시하면서 닐슨 데이터 7월 기준 파우치죽은 45억 원 규모로, 상품죽 전체 시장의 40% 비중까지 높아졌다. '비비고 파우치죽'은 파우치죽 시장에서는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10월에 파우치죽 시장 규모가 월 4억 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며 10배 이상 커진 수치"라며 "파우치죽은 1~2인분 넉넉한 용량에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데다 외식전문점 제품과 견주어도 손색 없는 맛과 품질, 합리적 가격이 소비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파우치죽의 창출과 성장은 죽 전체 시장 패러다임까지 바꿨다. 기존에는 상품죽이 1인분 용기형 위주로 편의점과 일반 슈퍼 경로에서 판매되는 비중이 높았다면, 올해 들어서는 1~2인분 파우치형 제품으로 대형마트와 체인수퍼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CJ제일제당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대형마트와 체인슈퍼 경로에서의 상품죽 판매 비중은 전체 시장의 약 30%였던 것에서 올해 1~2분기에는 45% 가량으로 높아졌다. '비비고죽'은 현재 유통 경로 중에서도 편의점과 슈퍼 등을 제외한 대형마트와 GS수퍼마켓 등 체인수퍼에서는 올해 2분기에는 50% 이상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CJ제일제당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와 매출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미국, 호주, 싱가폴 등 20개국에 진출해 교포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 중이며, 특히 죽 문화가 발달한 중국, 동남아를 중심으로 메인 스트림 진출 가능성도 다각도로 적극 검토 중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비비고죽'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철저한 소비 트렌드 분석 하에 상온 HMR R&D 기술력 기반으로 차별화된 맛 품질을 구현한 탄탄한 제품력에 있다"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전문점 메뉴의 파우치죽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가며 '죽의 일상식화' 트렌드를 주도하는 대표 제품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자극 받은 경쟁업체들도 파우치죽 상품을 속속 내놓거나, 재료를 차별화 해 프리미엄죽 형태로 신제품을 출시해 경쟁에 나서고 있다. 가장 다급해진 동원F&B는 지난 7월 '양반 파우치죽'을 출시하며 맞불을 놨다. 앞서 지난해 8월에는 시장 성장성을 고려해 광주공장에 양반죽 생산라인을 증설해 연간 3천만 개 생산 규모를 5천만 개까지 늘렸다. 다음달에는 전복, 백합 등 고급 원재료를 일반죽에 비해 2배 이상 넣고, 용량도 큰 형태의 프리미엄 용기죽 '명품 죽'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16년 3가지 용기죽을 선보였지만 시장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풀무원도 최근 신제품 '슈퍼곡물죽'으로 반격에 나섰다. 이 제품은 20~30대 젊은 직장인과 워킹맘을 타깃으로 한 제품으로, 백미 함량을 줄인 대신 현미·귀리 등 슈퍼곡물을 활용하고 전복 등의 원물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슈퍼곡물죽'도 파우치형과 용기형 2가지 형태로 출시됐으며, 내년 봄에는 젊은 층 입맛을 공략하기 위해 '스프' 형태도 새롭게 선보여질 예정이다. 풀무원은 '슈퍼곡물죽'으로 점유율 10%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분말죽만 판매하다 2016년 하반기에 용기죽으로 상온죽 시장에 뛰어든 오뚜기도 죽 제품 라인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복죽·새송이쇠고기죽·영양닭죽 등 차별화된 재료로 용기죽 신제품을 선보였던 오뚜기는 이르면 이달 말쯤 기존 '오뚜기죽' 외에 프리미엄 재료로 차별화 한 '오즈키친 죽'을 파우치 형태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오뚜기죽'과 달리 원물감을 제대로 살린 냉동·냉장 파우치죽 제품을 프리미엄 HMR(가정간편식) 브랜드 '오즈키친'으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라며 "용량을 늘리고, 재료를 차별화함으로써 시장 점유율 회복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상품죽 시장의 성장으로 죽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적잖은 매출 타격을 받고 있다. 죽전문점 1위 본죽을 운영하는 본아이에프의 경우 2016년 2천639억 원 대비 지난해 매출은 2천640억 원으로 1억 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본죽 역시 지난 2012년 '아침엔본죽'으로 용기죽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식품업체들과 달리 판매처 확보가 쉽지 않아 매출 확대가 쉽진 않다. 현재 용기죽과 파우치죽은 공식 온라인몰 '본몰'과 편의점, 일부 대형마트·홈쇼핑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프리미엄 제품인 '완도 전복죽'은 마켓컬리에서만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원F&B가 선점하고 있던 상품죽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면서 시장 경쟁이 활발해지고, 소비자 입맛에 맞는 품질 높은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특히 파우치형 인기로 국내 상온죽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곧 죽전문점 시장을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레이죽, 파우치죽 경쟁에서 앞으로는 원물감을 제대로 살린 프리미엄 제품 출시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며 "죽 전문점보다 품질이 좋고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곳들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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