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경영전략도 불투명한 상황으로,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지 않다. 공정위의 칼날이 또다시 재계를 정조준하는 모양새로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A그룹 관계자)
"해당 규정이 상위법에 명시되지 않는 규제 대상을 확대한 강력 규제임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개선 요구 목소리를 무시한 채 밀어붙였다."(B그룹 관계자)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아가니 참 답답하다.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기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위법령보다 더 강력한 규제로 보인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C그룹 관계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을 이달 25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힌 후 나온 재계의 반응이다.
공정위가 앞으로는 일감 몰아주기 등 직접 거래뿐 아니라 간접 거래를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도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잡겠다고 칼날을 뽑았다.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제3자를 통해 총수 일가 개인회사에 부당 지원을 하면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로 제재를 받는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 이익 제공 행위 심사지침'을 제정해 시행한다. 이는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편법·불법 지원을 막기 위해 2016년 제정된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정 가이드라인'을 대체하는 지침으로, 더 구체적인 사익 편취 기준과 예시를 담았다.
새 지침은 '특수관계인(총수 동일인 및 친족)이 일정 지분 이상을 보유한 회사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사업 기회 제공, 합리적 고려·비교 없는 상당 규모 거래 등을 통해 특수관계인에 부당 이익을 귀속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공정거래법(제23조 2) 규정에 따른 것이다.
재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한 심사지침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행보는 이미 예견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10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재계와 공식 첫 상견례에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조 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와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엄중 제재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조 위원장은 "대기업 집단이 편법적 경영승계를 위해 특정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곳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일반 소액 주주의 손해가 발생하고 혁신적 중소기업의 경쟁기회가 박탈 당한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자산 2~5조원의 중견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를 콕 찍어 지목하며 강력한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5조원 미만의 기업집단에서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부당한 지원이 더 많이 일어난다"며 "이들 기업집단에 대해 과거보다 많은 자료로 모니터링해 부당한 내부지원이 있으면 법 집행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조 위원장의 행보를 두고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견 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도 공정위가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는데 공정위가 규제 보폭을 늘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2016년 '총수 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사익편취 행위 판단 기준이 모호해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제정안의 행정예고가 이뤄진 지난해 11월 공정위에 새 심사지침이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폭 개정을 요구하는 정책건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한경연은 제3자를 매개로 간접거래와 관련해 상위법(공정거래법)이 규제대상(대기업 소속회사·총수 일가·총수 일가 회사)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하위법령인 심사지침에서 위임 없이 규제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국내 산업계가 코로나19 직격탄에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각 그룹의 내부거래 비중만을 근거로 일감 몰아주기라고 재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 전체 관점에서의 효율성은 무시당하고 있어 억울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 환경 악화로 신음하던 산업계가 코로나19의 기폭제로 메머드급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저상장 흐름에 불황까지 엄습하자 산업계 곳곳에선 "최악의 경제 악순환이 시작됐다"는 곡소리가 터져나온다. 코로나19가 불러올 변화의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기업을 옥죄는 규제에 비상경영 전략을 짜야 하는 재계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무겁다는 얘기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없는 기업들도 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위해 새로운 법인을 그룹 내 설립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 경우는 괜찮고 총수가 있는 기업은 일감 몰아주기라고 한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논리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 체감경기가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한경연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 결과 2월 실적치가 78.9로 조사됐다. 이는 2009년 2월(62.4) 이후 13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BSI 실적치가 기준선(100)을 넘으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부문별로 내수(79.6), 수출(85.4), 투자(89.5), 자금(92.0), 재고(102.3), 고용(95.4), 채산성(88.1) 등 전 부문에서 기준선(100) 이하를 기록했다. 3월 BSI 전망치도 84.4에 그쳤다. 작년 12월(90.0) 이후 상승세를 보이다가 3개월 만에 꺾였다. 전달(92.0)과 비교하면 7.6포인트 감소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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