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현석 기자] "메르스 사태 때보다 훨씬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아요. 주변 가게들이 하나, 둘 문 닫는 걸 보며 앞날이 두렵긴 하지만, 생계가 막막하니 가게를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떻게든 버텨봐야죠."
1일 오후 만난 서울 명동거리의 한 화장품 로드샵 점장 A 씨(44·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손님이 80% 이상 줄어들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또 그는 "외국은 이제 본격적으로 환자가 늘고 있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미래가 안 보인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연이은 실적 개선에 힘입어 제2의 도약을 꿈꾸던 뷰티 로드샵 업계가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손님은 줄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 가능성도 쉽사리 점칠 수 없는 모습이다.
◆"오전 내내 손님 3명"…외국인 이탈 속 마비된 명동거리
이날 명동거리는 약 한 달 전 찾아왔을 때보다도 훨씬 한산한 모습이었다. 평일임을 고려해도 행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이곳에 들를 때마다 간간히 들렸던 세계 각국의 언어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거리 한복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노점상들도 자취를 감쳤고, 명동거리 외진 곳에서 영업하던 일부 로드샵은 코로나19로 당분간 휴업한다며 문을 닫았다. 심지어 명동거리 초입에 설치됐던 코로나19 선별진료소마저 유동인구가 줄어 업무를 종로구 보건소로 이관한다는 안내문만을 남기고 사라진 상태였다.
한 로드샵에서 호객활동을 하고 있던 B(26·여) 씨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종종 외국인 관광객이 있긴 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된 이후로는 하루에 열 명 정도 오는 수준"이라며 "오늘 온종일 온 고객이 고작 3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가게만의 문제가 아니라 명동거리 전체가 마비된 것 같다"며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을 정도로 불안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직격탄 입은 뷰티업계…"앞이 안 보여"
뷰티업계는 지난해 온라인 및 해외 시장의 호조 속에 오랜만에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초대형 악재를 맞게 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상반기는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로드샵 업계는 지난해 오랜만의 실적 개선을 이뤘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영업이익 18억 원을 내며 흑자 전환했고, 토니모리도 지난해 4분기 기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에뛰드하우스 또한 영업이익 적자 폭을 줄여 눈길을 끌었다.
이는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이 일궈낸 성과다. 로드샵 시장은 지난해 1조7천억 원 규모에 머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2조290억 원 대비 20% 가까이 줄어든 수준이다. 매장 수도 2016년 5천634개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해 5천 개 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이에 업계는 멀티브랜드숍에 상품을 입점시키는 식으로 경쟁 업태와의 '동반성장'을 꾀하거나 해외·온라인 사업을 적극 강화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또 매출이 부진한 직영점 및 가맹점을 정리하고, 신규 로드샵을 론칭해 새로운 시장을 열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업계는 올해도 이 같은 전략을 이어가 지속적인 실적 개선을 도모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에 주력해 매출 방어에 집중하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 매출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며 "지난해 오랜만에 업계가 실적 개선에 성공했는데, 생각도 못 한 대형 악재를 만나게 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기존 전략 큰 틀 유지하되 신규 상권 집중해 실적 방어 도모"
업계는 지난해 실적 개선의 원동력이 된 온라인과 해외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은 효과가 입증된 만큼, 큰 틀에서 이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른 가운데 출점경쟁 등 과거의 경쟁 전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홈쇼핑 등의 신규 채널을 통해 신제품을 론칭하고, 이종 산업과의 협업도 지속적으로 이어가 주목도를 높여나가갈 계획이다. 실제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TR'을 론칭하고 롯데홈쇼핑에서 첫 판매를 진행해 '완판사례'를 기록한 바 있으며, 팔도와 협업해 '팔도 BB크림면 기획세트'를 출시해 시선을 끈 바 있다.
이와 함께 한 번 선택한 브랜드를 꾸준히 이용하는 중장년층 소비자들의 '소비 관성'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체험형 시장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시장 공략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기존 로드샵 업계가 '중심거점'으로 삼던 명동, 홍대 거리 등의 쇼핑 거리를 넘어 거주지 인근의 근린상권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로드샵에서의 쇼핑이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에서 '지나치다가 들르는' 식으로 이뤄졌다면, 요즘은 집 근처에 있는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며 "신규 출점이 이뤄진다면 대규모 거주지 인근에 매장을 여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드샵의 뿌리가 오프라인이고,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충성고객도 다수 있는 만큼 오프라인 시장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며 "온·오프라인 사업 사이의 비중을 전략적으로 운영하고, 체험형 콘텐츠 등 오프라인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석 기자 try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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