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검찰이 고민에 빠졌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 결정 후 1년8개월 간 진행해 온 수사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넘어 외신도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데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이 이 부회장의 기소를 강행한다면, 이는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라 아집을 부리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이 부회장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지난달 27일 수사심의위의 권고 사항을 통보받은 직후부터 사건을 어떻게 처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앞서 삼성 '고졸 여성 신화'를 쓴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했다.
양 의원은 "4년간 재판을 받아오고 있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이냐"고 운을 뗀 뒤 "첨단 글로벌 기술로 세계 무대에서 뛰어야 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 구조가 이제는 오너의 상황 때문에 예전과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은 "밖에서 나와서 봐도 4년 전과 정말 다르다"며 "바로 결정해줘야 하는 일들이 워낙 많은데, 가깝게 일했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사결정이 바로바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 대해 수사중단을 권고한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읽힌다.
당내에서 수사심의위 결정에 '봐주기 논란'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그는 "정치인이라고 검찰에게 기소를 해라, 기소를 촉구한다, 어떤 이야기도 하는 것이 사실상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검찰은 검찰 본연의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검찰이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나오면서 정치권 내에서도 논쟁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무소속 권성동 의원은 같은달 30일 이 부회장 사건과 채널A 기자 사건을 거론하며 "정권 입맛대로 할 거면 도대체 (수사심의위) 제도는 왜 만들었나"라고 반문했다. 권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수사심의위원회 제도는 원래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문무일 검찰총장 때 처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사의 수사를 일반 국민이 통제하는, 현 집권 여당과 그 지지자들이 그토록 주장해왔던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제도 그 자체라고 권 의원은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이제 와서 수사심의위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고 이를 적폐라 한다"며 "권 의원은 "결론을 정해두고 그것과 다르면 비난하고 전방위로 압박하는 행태가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출범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하지 않고, 결론을 내려놓고 증거를 짜 맞춰 수사하는, 양심을 저버리고 출세욕에 불타는 검사들이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영세 미래통합당 의원 역시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결정에 대해 검찰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재벌을 부당하게 비호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재벌이면 무조건 공격하는 행태도 문제"라며 "특정한 제도(수사심의위)의 결정과 관련해 제도 자체 및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이다"고 말했다.
또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일부 여권 정치인 등 진보좌파진영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그 결정을 공격하고 있다"며 "이들은 본인들 정체성에 부합했던 수사심의위 결정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의 민주적 통제 문제는 검찰의 현 상황과 상관없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온 것이고,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그 통제수단 중 하나로 도입된 제도"라며 "이제 막 시작한 제도를 자신들의 입맛 또는 이해에 따라 공격하고 무시한다면, 그래서 결정권자가 매 건마다 여론 또는 상황논리 등을 고려해 선택적으로만 수용한다면, 그 제도는 곧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단체에서도 나왔다. 이를 무시한 채 기소가 강행될 경우 국민 여론에 반하는 것은 물론 검찰 스스로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긴급 정책토론회에서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은 국민 여론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며 "압도적 다수가 불기소 판단을 했는데도 검찰이 이 제도를 걷어찬다면 자존심이 아니라 아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환 자유언론국민연합 정책위원장도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의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중단 및 불기소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숫자만 보면 삼성물산이 불리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었다”며 “정말 불리하다면 주총에서 다수의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지고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6일 수사심의위 결과와 관련해 “이제 검찰의 결정만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한국)검찰이 수사심의위 결과를 무시하고 이 부회장을 기소하면 대중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블룸버그는 심의에 참여한 한 위원과 익명 인터뷰를 통해 "대립된 여론을 봤을 때 투표 결과가 팽팽할 줄 알았다"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로 “토론 결과 10명은 불기소 권고, 3명은 기소 의견을 냈는데 이는 심의위원들도 놀라게 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만약 이를 무시하고 이 부회장을 기소한다면 코로나19 확산 후 한국경제를 회복하는 데 세계 최대 스마트폰, 메모리, 가전 생산업체인 삼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중들을 분노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에 대해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린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법적인 강제력 없이 권고적 효력만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결정이 나왔다면, 검찰로서도 단순 권고로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따른다. 특히 검찰이 이번 권고를 무시할 경우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는 첫 사례로 남게 된다.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인 2018년 처음 제도가 도입된 이래 2년 여 동안 총 8차례의 수사심의위가 열렸고, 검찰은 모든 권고를 존중했다. 수사심의위는 주로 국민의 관심이 높거나 갈등 소지가 있는 사건을 처리하면서 검찰의 부담을 완화하고 정당성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삼성은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지난 4일부터 입장문 또는 호소문을 내면서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의혹을 방어하는 한편 위기 돌파를 위해 매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해왔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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