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잇따라 대규모 기업어음(CP) 발행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의 일반적 자금조달 방식인 회사채 발행이 아니라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조달이 크게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투자심리가 위축된 회사채 시장 대신 CP 시장을 대체 자금 조달처로 선택한 것인데, 대기업의 장기 CP 발행이 자본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전날 3천억원 규모의 공모 장기 CP를 발행했다. 만기 2년물 2천억원, 3년물 1천억원으로 할인율은 각각 1.98%, 2.20%다. 지난달 3천억원의 CP를 발행한 데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단기금융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호텔롯데는 이번 장기 CP 발행으로 발행비용과 이자 등을 제외하고 약 2천848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자금은 오는 18일 만기를 앞둔 단기사채와 11월 만기 예정인 회사채 등의 상환에 쓸 예정이다.
롯데그룹 물류 계열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도 이날 1천500억원의 장기 CP를 발행했다. 글로벌로지스가 공모 CP를 발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P 만기는 2년(연 2.297%), 2년 6개월(연 2.400%), 3년(연 2.639%)으로 각각 500억원씩이다. 조달한 자금은 오는 10월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상환에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 계열사, 올해 장기 CP 발행 1조2천700억원…시장왜곡 우려도
이 외에도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장기 CP 발행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지난 7월 롯데쇼핑이 2천억원의 3년 만기 CP를 발행했다. 롯데하이마트(1천억원), 부산롯데호텔(1천500억원), 롯데알미늄(500억원), 롯데지알에스(200억원) 등도 장기 CP 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올 들어 장기CP를 발행한 롯데그룹 계열사만 7곳, 금액으로는 1조2천700억원에 달한다. 롯데그룹이 투자심리가 위축된 회사채 시장 대신 CP 시장을 대체 자금 조달처로 활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는 호텔롯데의 신용등급을 ‘AA0(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코로나19 사태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호텔·면세점 관련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고 정상화 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영업실적이 크게 저하되고 재무부담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 호텔롯데를 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실제로 호텔롯데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실적이 곤두박질 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호텔롯데의 연결매출액은 1조7천96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조4천724억원)보다 48.2%나 줄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서며 3천420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국내 회사채 시장도 경직돼 우량등급 회사채로의 쏠림이 가속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신용등급 A등급 이하 일반 회사채 발행규모는 5조4천4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8.1%(2조4천92억원) 줄었다.
전체 회사채 발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같은 기간 24.6%에서 16.6%로 낮아졌다. 반면 AA 등급 이상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69.4%에서 80.4%로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AA 등급 이상은 우량 회사채로 분류되지만, 호텔롯데의 경우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가 자칫 기업에 대한 평가가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우량 회사채의 경우 현금흐름 악화, 재무안정성 결여 등으로 미매각이 발생하거나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의 금리가 높을 경우 기존 회사채의 신용평가나 금리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 CP는 실질적으로 회사채와 다를 바 없어 장·단기 자금조달 시장을 교란하고 회사채 시장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윤원식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현재 회사채 시장이 대기업의 저위험, 우량 채권 위주로 발행되면서 BBB 등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 중견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위축되고 있다”며 “회사채 시장을 잠식하며 시장왜곡을 유발하는 장기 CP 제도를 폐지해 저신용등급의 회사채 발행도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성 기자 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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