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했다.”
감사원이 지난 20일 월성1호기 조기폐쇄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경제성에만 주목한 감사 결과라는 전제를 깔았다. 경제성에 주목했고 나머지 조기폐쇄에 대한 다른 원인은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보도자료를 받는 순간 ‘엄청 시끄러워지겠구나’는 생각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가뜩이나 탈원전과 친원전 논쟁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감사 결과는 ‘기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22일 산업통상자원부 종합 국감에서 여야 위원들 사이에 고성, 삿대질, 책임 공방이 이어졌다.
“그거 봐라, 월성1호기 조기폐쇄는 잘못됐다는 거 아니냐. 감사원이 거짓말하겠냐. 감사원 감사 결과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거냐? (야당)”
“아니, 경제성만을 판단해 원전 폐쇄를 어떻게 결정하나. 원전 폐쇄 결정에 있어 경제성은 물론 안정성, 주민 수용성, 미래 가치성까지 총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여당)”
이미 예상했던 장면이었으니 꼴사나운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장면을 연출하는데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일조했다는 데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름으로 곧바로 ‘한수원 입장’이란 보도자료가 나왔다. 길지도 않았다. 딱 두 문장이었다.
정재훈 사장의 첫 번째 입장.
“월성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며 감사원에서 지적한 ‘원전 계속 운전 등과 관련한 경제성 평가 관련 지침 마련’에 대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 검토를 통해 성실히 후속 조치를 이행하겠다.”
두 번째 입장.
“한수원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밑거름 삼아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감사하며, 지적된 한수원 부분에 대해서 (조직의 장으로서) 후속 조치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되도록 하겠다’게 요점이다.
정재훈 사장의 너무나 짧은 이 ‘입장문’을 읽으면서 ‘해변의 여인’이란 영화가 떠올랐다.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이다. 전체 내용을 떠나 남녀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한 사람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라는 화두가 등장한다. 그때 남자가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 그 위에 커다랗게 원을 그린다. 이어 남자 주인공이 말을 잇는다.
“원은 수많은 점으로 이뤄진 선이다. 한 사람은 이처럼 수많은 점으로 이어져 있다. 우리는 한평생 한 사람의 몇 가지 점만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원전 폐쇄는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전체 원을 봐야 하는데 바라보는 점에 따라 한쪽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자원이 없다. 석유와 가스는 대부분 수입한다. 유가가 춤을 출 때마다 우리나라 경제도 출렁거린다.
값싼 에너지원이 필요해 원전을 도입했을 터이다. 문제는 원전이 갖는 여러 점이 있다는 데 있다. 그 여러 점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경제성은 좋은데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적은데 사용후핵폐기물 처리란 난제가 존재한다.
한수원은 원전을 지을 때 불량 부품을 썼다. 위조부품이 뇌물과 원전 마피아 등으로 연결되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됐다.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다. 지금도 원전 곳곳에서 장비 불량 등으로 고장이 잦다.
여기에 특정 지역 희생도 논란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동해와 서해에 집중돼 있다. 울진, 경주, 부산, 영광 등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다른 지역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고스란히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원전으로 발생하는 환경 악영향도 받을 수밖에 없다.
정재훈 사장이 감사원 감사 결과를 접한 뒤 한수원 견해를 밝힌다면 ‘해변의 여인’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정도는 됐어야 했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경제성에만 주목했다. 그 부분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면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 다만 원전 폐쇄 등을 포함한 원전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수용하고 논의해야 할 점들은 무척 많다.
안전성은 물론 주민 수용성, 여기에 지역 편중성, 미래 가치성, 세계적 흐름 등 평생 우리가 논의하더라도 그 많은 점을 다 살펴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이런 측면에서 경제성에만 주목한 것은 안타깝다.”
이 정도가 한수원 수장으로서 내놓아야 할 입장이지 않았을까. 한수원 사장으로서 곤란한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한수원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에너지 공기업으로서 원자력 진흥이 일차적 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탈원전 정책 등으로 원전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한다고 하니 한수원 사장으로서는 곤혹스러울 게 분명하다. 원전 진흥과 폐쇄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22일 산업부 종합 국감에서 여야 위원들 사이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간 것은 새로울 게 없다. 정치적 집단인 국회란 곳이 원래 그런 곳이니까. 다만 이런 상황을 연출하게 만든 곳이 감사원과 한수원이라는 점에서는 안타깝다.
감사원이 아무리 ‘이번 감사 결과는 경제성에만 국한해 감사를 진행했다’고 전제하고 또 당부하더라도 ‘월성1호기 조기폐쇄는 잘못됐다’는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수원 수장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했으니 관련 상임위에서 불이 붙고 고성이 오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원전 정책을 두고 앞으로 논란은 더 거세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한 점만을 두고 서로 싸운다면 우리나라 원전 정책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원전 기술 경쟁력은 물론 원전 해체 시장에서도 뒤처지는 ‘쌍끌이 악재’에 부닥칠 것은 분명하다. 탈원전도, 친원전도 다 망한다는 것이다. ‘쌍끌이 악재’로 갈 것인지, 서로 다른 점을 알아가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만의 원전 정책을 마련할 것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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