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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구글·넷플릭스 잡으려다 韓 인터넷 생태계 태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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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터넷실명제' 막으려면 해외 기업 법 집행력부터 갖춰야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실명 인증을 하지 않은 이용자는 댓글 등을 작성할 수 없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제한적 본인확인제'로 실명 인증을 하지 않은 이용자는 댓글 등을 작성할 수 없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규제는 한국 인터넷 산업을 제약하는 가장 큰 방해요소입니다. 국제 기준에서 보면 수용하기 힘든 무역장벽으로, 국내 포털 사업자를 내수 시장에 안착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습니다."

인터넷 기업에 대한 규제가 쏟아지는 요즘 어떤 세미나에서 나온 말인가 싶지만, 놀랍게도 2009년 한 국회 토론회에서 황용석 건국대 교수가 한 말이다.

다른 패널은 "외국의 인터넷 규제 관련 동향을 보면 정부보단 민간 자율에 맡기는 추세"라며 "규제 내용도 아동보호, 인종차별 등에 국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인터넷 규제가 과다하다는 얘기다.

주목할 점은 구글코리아가 '인터넷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한 직후 이 토론회가 열렸다는 점이다.

인터넷실명제란 이용자가 실명·주민등록번호 확인을 받아야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로, 네이버와 다음은 2년 전인 2007년부터 도입했다. 반면, 구글은 이를 끝내 거부하며 유튜브 한국 사이트에선 콘텐츠를 올릴 수 없게 했다.

이때부터 국내 인터넷 규제의 적절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국내 인터넷 산업의 경쟁력만 저하된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실제 인터넷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구글은 이 판결 후 보름 만에 한국 이용자의 유튜브 콘텐츠 업로드를 허가했다.

지금도 인터넷 업계 관계자들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5년'이라고 말한다. 국내 인터넷 산업이 규제에 발목 잡혀 주춤하는 사이, 이를 피한 해외 서비스는 폭풍성장했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국내 동영상 시장 점유율이 2%(PV 기준)에 불과했던 유튜브는 2013년 74%까지 성장했다. 업계 1,2위였던 판도라TV는 42%에서 4%로, 다음TV팟은 34%에서 8%로 급락했다. 인터넷실명제, 저작권 삼진아웃제 등으로 국내 서비스 이용이 불편해지자 유튜브 쏠림이 가속화된 것이다. 오늘날 유튜브 공화국은 이 때 초석을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제는 국내 산업만 옥죄는 규제가 11년이 지난 현재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해외 사업자를 규제하려다 도리어 국내 사업자만 잡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벌어진다. 부가통신사업자의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방지 책임을 강화한 'n번방 방지법', 망 품질 유지 의무를 부여한 '넷플릭스 갑질 방지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법안은 텔레그램·넷플릭스 등 해외 서비스를 규제하기 위해 마련됐으나, 결과적으론 국내 기업의 책임만 강화하는 꼴이 됐다.

최근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이용자 피해보상법(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마찬가지다.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장애 사실 및 손해 배상 고지 기준을 기존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상향하는 게 골자다. 부가통신사업자에게도 기간통신사업자와 동일한 규제를 부과하겠단 것이다.

이 법은 국내 기업과 달리 유튜브·넷플릭스가 4시간 미만으로 발생한 서비스 장애에 대해 어떤 이용자 책임도 지지 않는 걸 규제하기 위해 발의됐다. 그러나 업계에선 인터넷 서비스와 이동통신 장애를 동일 선상에 두고 규제하는 게 마땅한지 차치하더라도, 결과적으론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만 강화될 뿐이라고 우려한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해 국내 대리인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대리인을 통해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해외 사업자에 대한 법 집행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 시행 1년 6개월간 정부가 국내 대리인에게 관련 조처를 한 사례는 전무하다. 여전히 해외 사업자를 규제할 방안이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법안이 잇따라 만들어지면 국내 사업자만 멍이 드는 건 자명하다. 디지털 경제 성장이 화두인 이 때, 해외 기업 잡으려다 자칫 국내 인터넷 생태계까지 태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윤지혜 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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