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대형 유통업체는 '갑'으로, 전통시장‧소상공인은 '을'로 규정짓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지난 1997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은 중소유통업 진흥 정책과 진입규제, 영업 제한 등 규제 등을 담았다.
20년이 지난 현재 중소유통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의 영업 제한 등을 지나친 규제 일변도로 변질했다. 규제의 초점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에도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소유통업계가 대형마트 진출을 막기 위한 영업 제한 등이 골목상권을 지켜내기는커녕 오히려 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소비가 확산하는 상황에 중소유통기업은 설 자리를 잃고 도태되는 등 경쟁력마저 낙후되고 있어서다.
문제는 중소유통업계를 넘어 대형유통업계까지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면세점 등도 똑같이 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하는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어 발전 없는 유통법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몰들이 주도권을 빼앗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위협한다는 발상으로 기존의 유통법 잣대를 여전히 적용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정부의 기대처럼 대형 마트에서 전통시장으로 움직였을까.
의무 휴업이 늘어날수록 집객 효과를 누리던 일대 상권 매출도 줄어들 뿐만 아니라, 마트 폐점으로 인한 고용 감소도 클 수밖에 없어 누구도 유통법에 웃을 수는 없는 처지에 놓였다.
실제 업계는 유통 규제 강화의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한다. 유통법으로 인한 규제가 전통시장·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목표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는 선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상 모두가 불행한 법인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유통법이 시행된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매업 전체 매출은 43% 늘었지만, 전통시장은 28%만 늘어났다. 반면 대형마트의 매출은 14% 줄었다. 전통시장, 골목상권과의 상생 및 동반성장을 이유로 제정된 유통법이 전통시장의 매출 하락을 막지 못했다.
이 때문에 최근 국회에서 논의된 유통규제안도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G5 국가의 유통 규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유통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이 글로벌 트렌드로 나타났다.
미국과 일본은 실질적으로 출점 규제와 영업 규제가 없다. 전통적인 유통규제 강국인 프랑스는 1천㎡ 이상 규모의 소매점포 출점을 지역상업시설위원회의 허가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도심 내 출점 규제가 없다. 독일은 지자체별로 일정 규모 이상 점포를 대상으로 출점 규제를 하고 있다. 다만 출점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 사전에 출점 여부 판단이 충분히 가능하다.
유통규제 강화 방안을 논의하기 이전에 기존의 유통법이 변화하는 유통시장 환경에 적합한지에 대한 정책효과 분석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쇠퇴하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산업을 옥죄면 골목상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 유통규제를 완화하는 글로벌 추세와 온라인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는 유통시장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유통정책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지 않을까 한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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