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오경선 기자] 애널리스트(analyst)란 증권사나 경제연구소 등에서 주식 종목 분석, 경제 전망 등을 하는 전문가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종목, 산업분야 등에 대한 분석과 전망 보고서를 내놓는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경우, 자사 고객들의 투자를 돕기 위해 다양한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전문가인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SK증권에서 나온 팬오션 관련 분석 리포트가 벌크선 운임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의 하락을 예상해 이목을 끌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감 등을 이유로 올해 해운 경기가 호황을 맞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날 다른 증권사에선 BDI 강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란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일각에선 SK증권이 공매도 세력을 위해 다소 억지스런 리포트를 발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증권은 지난 7일 팬오션에 대해 ‘중국 철강 감산 리스크’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발간하며,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 근거는 BDI의 하락 전망이다. 반면 목표주가는 기존 6천원에서 7천400원으로 상향했다.
이 리포트를 작성한 SK증권 유승우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 탄소 감축을 위해 발표한 철강 감산 정책이 BDI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이 철강의 원재료인 철광석과 석탄 수입을 줄여 수요가 감소하면 운임 가격인 BDI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 연구원은 "해운주 랠리로 주가가 급등했고 중국 철강 감산으로 BDI의 점진적인 하락세가 점쳐진다는 점에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분기 BDI 지수를 1분기(1천739포인트) 보다 낮은 1천721포인트로 전망했다.
팬오션은 철광석, 석탄 등 건화물을 운송하는 벌크선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어, BDI가 낮아지면 팬오션의 벌크선 사업부 수익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업계 일각에선 유 연구원의 이 같은 BDI 전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제철소들이 정부 정책에도 불구하고 높은 철강 생산마진으로 생산을 줄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덩달아 철광석 가격도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정책을 이유로 BDI지수가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감산정책에도 불구하고 최근 BDI가 10년래 최고치로 급등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며 "이에 대한 근거나 설명도 없이 (BDI) 하락세가 점쳐진다고 주장하니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무성의하게 보고서를 쓰니 기관 리서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올해 BDI 변화를 살펴보면 지난 4월 1일 기준 2천72포인트였던 BDI는 이달 13일 3천77포인트까지 올랐다. 약 한 달 반만에 50% 이상 상승한 것. 지난 5일에는 3천266포인트로 11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 연구원의 전망대로 2분기 평균 BDI가 1천721포인트까지 내려가려면 남은 한 달 반 동안 BDI가 이전 상승폭보다 더 크게 급락해야만 한다.
SK증권과 같은 날 운송(해운) 업종 리포트를 발간한 하나금융투자는 BDI 강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팬오션을 운송업종 최선호주로 제시했다.
하나금투 박성봉 연구원은 지난 13일 팬오션 종목 리포트를 통해 2분기 BDI 평균을 2천725포인트로 예상했다. BDI 급등을 반영해 올해 실적 추정치를 높이고 목표주가도 기존 8천400원에서 9천원으로 상향했다.
박 연구원은 BDI 상승 요인에 대해 “유럽의 3월 조강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17.5% 증가하는 등 주요국들의 철광석 수입이 확대되고 있고, 중국도 급격한 철강 마진 개선으로 3월 조강생산이 19.1% 증가함과 동시에 철광석 수입도 18.9% 급증했다”며 “중국의 석탄 확보 움직임과 전세계 대두 생산 및 교역량도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도 추세적인 BDI 상승을 감안, 팬오션의 목표주가를 1만원으로 올렸다. NH투자증권(9천500원), KTB투자증권(8천500원), 유진투자증권(8천400원) 등도 줄줄이 목표가를 높여 잡았다.
해운업계에선 최근 BDI지수 상승 요인을 단순히 수급만으로 보기에는 곤란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원자재 슈퍼사이클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유동성 장세인 상황에서, BDI 지수도 원자재의 일종으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 이석주 해운거래지원팀장은 “경기부양책 효과 등으로 작년에 비해 올해 화물 수요가 많이 회복됐고, 선박 공급은 최근 몇 년 동안 낮아져 올해 회복세가 맞다”며 “펀더멘탈 수급에 대해서는 (BDI지수가 오를 것으로) 인정했는데 이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과열이라는 의견은 일치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른 시일 내 BDI지수가 하락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인 시기를 짚기는 어렵지만 중국과 미국의 경기부양책 출구전략으로 유동성이 줄어들면 하반기쯤 BDI지수가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이 팀장은 “2분기에 철광석 물동량이 크게 증가했다. 그 기저에는 중국 제철소의 생산마진이 사상 최대치로 올라가 있다는 데 있다”며 “정점에 있는 마진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시점에 (BDI의) 시장 조정이 이뤄질 텐데 언제 될지는 알 수 없다. 지표들을 계속 확인하면서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SK증권의 다소 무리해 보이는 BDI 하락 전망은 팬오션 공매도 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금지됐던) 공매도가 시작된 5월 3일과 4일, 양일간 대략 150만주의 공매도가 있었는데, 6일 종가로 약 10%의 손실을 보고 있던 상황"이라며 "숏스퀴즈의 위험이 있을때 이 보고서가 나와서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7일) 개장 후 한시간 만에 프로그램 매도가 300만주 이상 쏟아내면서 해당 종목(팬오션)을 급락시켰는데 타이밍이 참 절묘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SK증권의 리포트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3~6일 팬오션에 대한 공매도 수량은 205만6천주(약 148억원)다. 이 기간 팬오션 주가는 9.7% 올랐다.
리포트가 나온 7일 팬오션의 공매도 수량은 124만주, 거래대금은 90억원으로, 이달 들어 공매도가 재개된 이후 7거래일 중 가장 규모가 컸다.
하지만 유 연구원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매도 관련성 의혹에 대해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유 연구원은 “중국 정부에서 개별 업체를 지정해 (철강 생산을) 감산하라고 했고, 이에 대한 데이터는 5월부터 나온다”며 “5월 중국 철강 생산량 데이터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이게(철강 생산량 데이터가) 꺾이게 되면 운임도 같이 조정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BDI지수 상승세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팬오션 공매도가 높아져 주주들이 불안한 것 같다"면서 “리포트에는 팬오션의 주가에 대해 정확히 분석한 내용만 담겼다”고 해명했다.
/오경선 기자(seo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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