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1. 산업용 점착 테이프를 제작하는 A사는 중국으로부터 원자재 수급이 늦어져 제품 생산에 큰 차질을 빚었다. 생산이 지연되며 유럽 수출물량 납기가 3개월 이상 늦어진 것이다. 다행히 유럽 바이어를 설득해 납기일을 미뤘지만 언제든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 불안이 크다.
#2. 와이어링 하네스를 생산하는 B사는 유럽에서 수입하는 자재가격이 최근 30% 이상 급등했다. 제품 생산단가는 그만큼 올랐지만 납품단가에는 그대로 반영하기가 어려웠다. 적자는 겨우 면했지만 연간 수익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원자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이 올 초부터 깊은 시름에 빠졌다. 올해도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구체적인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어서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원자재, 부품 등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공급망 불안에 대한 기업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88.4%가 올해도 '지난해의 공급망 불안이 계속되거나 더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완화될 것으로 내다보는 응답은 11.6%에 그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계속되거나 더 악화될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19 지속(57.0%)'을 꼽았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해외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며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했고 올해 들어서도 기업들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뒤이은 공급망 불안 요인으로는 '미·중 패권 경쟁(23.3%)'이 꼽혔다. 우리 교역의 40% 정도가 양국에 집중돼 있는데 양국의 '공급망 줄 세우기'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여 한치 앞의 상황을 예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확대(12.4%)'도 올해 글로벌 공급망 불안을 증폭시킬 요소로 지목됐다. 코로나19로 억제돼 온 '소비 욕구'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분출되면서 원자재 쟁탈전과 물류난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불안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업들의 대책 마련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대책을 세웠는지를 묻는 질문에 '세웠다'고 답한 기업은 9.4%에 불과했다. 반면 '대책 없다'라는 기업은 전체 조사대상의 절반이 넘는 53.0%였다. '검토 중'이라는 기업은 36.1%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대상 기업 10곳 중 9곳이 현재 시점에서 뚜렷한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대책을 세웠거나 검토 중인 기업은 구체적인 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급 다변화(45.7%)'를 우선 꼽았다. 이어 '재고 확대(23.9%)', '국내 조달 확대(12.0%)' 순으로 답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업이 원자재나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것은 국내에서 조달이 어렵거나 생산비용이 높다는 점 등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만큼 수입처 다변화 등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설문에 응한 기업의 67.0%는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실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없었다'고 답한 기업은 33.0%에 불과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원자재 조달 지연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59.2%로 가장 높았다.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40.8%)'도 뒤를 이었다.
공급망 불안 해소를 위한 정부 정책 과제에 대해서는 '수급처 다변화(23.9%)'와 '국내 조달 지원 강화(21.8%)', 'FTA 등 외교적 노력 확대(17.1%)'를 핵심 사안으로 꼽았다. 이 밖에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16.1%)', '정부비축 확대(10.4%)' 등이 필요하다는 기업도 있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디지털전환과 탄소중립 등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기에 팬데믹, 패권경쟁이 겹쳐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공급망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수급처를 다변화하는 등의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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