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태환 기자]한 시중은행에서 메시지가 왔다. 사용하지 않은 쿠폰이 있으니 쓰라는 안내였다. 앱에 접속했지만 쿠폰은 뜨지 않았다. 새하얀 스마트폰 화면에는 '404 Not Found'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떴다. 쿠폰이 있다는데, 쿠폰을 찾을수 없었다.
404 오류는 서버에 접속했으나 해당 서버 내에서 특정 파일을 찾지 못했을 때 나타난다. 보통 하이퍼링크를 지정할 때 오타가 나거나, 업데이트를 하면서 일부 파일이 삭제되는 등의 문제다. 기자가 직접 겪은 해당 은행의 404 오류도 약 2시간 만에 복구됐다.
다만, 쉽게 해결된다고 문제가 없어지진 않는다. "불량률이 1%에 불과해도 직접 불량을 겪은 고객 입장에서는 불량률이 100%다"라는 어느 일본 장인의 말처럼, 우연히 해당 앱을 처음 이용한 고객이 위와 같은 사례를 겪으면 그저 '은행 앱 별로네'라는 생각만 남게 된다.
올해 초에도 신년사를 통해 금융지주 회장들과 은행장들의 '디지털 경쟁력 강화' 일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초에도 똑같이 디지털 경쟁력 강화 얘기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은행 앱은 여전히 무겁고 느리며, UI 측면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마저도 2017년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가 등장하면서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카뱅의 비대면 가입 편의성과 UI를 따라잡는데도 1~2년 가까이 걸렸다.
IT업계에서는 은행권의 낡은 '꼰대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IT부문 취재를 전담하던 당시 만났던 비즈니스 솔루션 관련 프리랜서 개발자는 은행 관련 프로젝트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는 "금융쟁이들은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쓸데없이 깐깐하고, 말도 안되는 것들로 트집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프로젝트 역시 건설업계처럼 시스템개발(SI) 업체를 선정하고, 해당 SI업체가 또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SI업계에서는 고객사들 중 은행이 제일 보수적이며 '갑질'까지도 서슴치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과거 국책은행 중 한곳은 프리랜서 개발자가 과로사하기도 했으며, 비정규직 개발자에 대한 비상계단 이용 금지조치와 야근 강요, 연차휴가 제한 등의 문제가 불거져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실제 직장인 익명 소통 앱에서 'IT라운지'를 살펴보면, 일부 은행 디지털 담당자들이 자신의 말이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명령하듯 지시한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해당 게시판에는 은행 서버 유지보수 업무 수주를 놓고 경쟁 SI업체 직원들이 서로 상대방이 수주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은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많은 사람들이 보수적인 문화에 질려 퇴사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올라온다. 단순히 업무강도만 높다면 이정도로 기피현상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란 게 IT업계의 중론이다.
물론 실제 돈이 오가는 은행의 업종 특성상 규정이 중요하고, 신중하게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규정의 이행과 별도로 갑질을 일삼는 '꼰대 문화'는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경직된 사고방식과 문화는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더디게 만들 뿐이다.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은행들도 자신들의 문화를 되돌아보고, 개발사나 개발자와의 소통 관련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할 것이다.
/김태환 기자(kimthi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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