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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제2이동통신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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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제2이동통신사 大戰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무려 100여년간 이어온 통신독점이 깨지고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사명을 변경하면서까지 국제전화를 두고 전력투구를 마다하지 않았던 과정 속에서 제2이동통신사 선정 역시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1990년 7월 체신부가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발표한 후 이듬해인 1991년 제2이동통신사 선정을 위한 가시적인 행보가 본격화됐다.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6개 그룹의 치열한 다툼이 지속됐다 [사진=SKT]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6개 그룹의 치열한 다툼이 지속됐다 [사진=SKT]

◆ 체신부 vs 4대 기업

체신부는 제2이동통신사 선정을 위한 전기통신기본법, 공중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필요했다. 이에 앞서 각 부문의 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보통신발전협의회를 구성했으며, 연구용역을 통해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세부적 내용을 설계하는데 공을 들였다.

당시 내용을 살펴보면 이동통신분야는 이동전화와 무선호출, 무선데이터, 주파수공용통신 등 4개 분야로 구성했다. 이 중 무선호출(삐삐)은 전국 도별로 9개 사업구역으로 분할해 1개 사업자를 두도록 했고, 수도권은 2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방향으로 세웠다. 이에 따라 수도권은 제2무선호출사업자를 신규로 선정해야만 했다.

가장 첨예한 반향을 일으킨 분야는 이동전화다. 한국이동통신이 독점하고 있는 이동전화(휴대폰) 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허가해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것. 즉, 제2이동통신사업자가 출현한다는 의미였다.

다만, 체신부가 통신 서비스를 대기업 수직계열화에 희생되지 않고 수평적으로 육성시켜야 한다는 정책방향을 잡으면서 갈등이 발발했다.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의 지분을 1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에 발목이 잡혔다.

공교롭게도 통신기기 제조업체가 소위 국내 빅4라 불리는 삼성과 현대, 대우, 럭키금성이었다. 언제든지 통신 시장에 발을 들이기 위해 기회를 살피고 있었던 터라 이같은 체신부의 결단에 반박의 깃발을 높이 올렸다.

같은해 5월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관련 공청회에서 양측이 공개적으로 맞붙었다.

정부의 통신시장 육성 방향은 ‘경쟁체제 도입’이다. 척박한 통신시장에서 대기업이 발을 들이게 되면 경쟁이 아닌 독점화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다만, 통신기기 제조업체들은 제조업 강화를 앞세운 현 정부의 방향과도 맞지 않으며 새로운 이동통신 서비스 발굴을 위해서는 그만큼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체신부는 8월 14일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관한 주요 기준을 발표하면서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통신기기 제조업체의 지분제한은 기존 방침대로 10%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단일 기업이 단독 지배할 수 없도록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모에 나서야 하며, 지배주주는 해당 주식의 33% 이상을 소유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 체신부 과기처 vs 상공부·경제기획원

법 제도 개선과 재벌기업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체신부는 기존 계획을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갈등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정부 부처간 힘겨루기 상황이 체신부를 기다렸다.

1992년초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공모를 2개월 앞두고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무역수지 적자폭 확대와 개선을 앞세워 제2이동통신사업자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이 가세하면서 사태가 더 커졌다.

상공부가 제2이동통신사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무역적자폭 확대 때문이다. 당시 상공부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무역수지 개선이 주된 임무였다. 하지만 체신부의 계획대로 1994년 1월부터 제2이동통신사가 사업을 시작한다면 엄청난 수입수요촉발로 국제 수지방어차원에서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는 판단이다.

상공부에 따르면 무선통신 기기분야에서 우리나라 전자 산업은 기술부문이 취약한 실정으로 현재 10%로 낮은 국산화율을 감안했을 때 통신 시스템 기기와 단말기 등을 전량 수입해 막대한 수입유발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단했다.

즉, 간단하게 제2이동통신사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외국에서 대량의 기기들을 사들여야 하고 이는 무역적자로 이어져, 상공부의 임무인 무역수지 개선이 어렵다는게 주된 이유였다.

또한 무작정 연기하기 보다는 1년간 유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통신기기 국산화율이 10% 수준이나 2~3년 이후인 1995께 이동통신 기기 국산화율을 40~50%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휴대용 전화기 국산화율은 15%, 카폰 35%, 무선호출기 30%의 국산화율을 기록하고는 있으나 국내 제조사의 상품은 전량 수입한 부품을 활용하고 있으며, 도시바와 후지쯔, NEC 등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도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1995년을 전후해 이동통신 서비스분야가 예상키 힘들 정도로 급속히 확대될 전망이어서 우선적으로 기술 자립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초기 단계라는 점과 디지털 방식 중 전세계 통용화된 바 있는 시분할방식(TDMA)과 새롭게 떠오르고있는 코드분할방식(CDMA)에 대한 방향성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갈 필요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영향력이 큰 부처에서의 반발이기는 했으나 체신부 역시 지지않고 맞섰다. 체신부는 국내 이동통신기기 수요가 매년 2배 이상 급증하고 있어 기존 설비로는 조만간 포화상태에 놓일 것이라 판단했다. 16만명 수준인 이동통신가입자는 1993년말 20만명을 넘어서면서 현재 주파수 대역만으로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 예견했다.

실제 당시 이동전화로 활용할 수 있는 주파수는 800MHz 대역 내 30MHz폭이었다. 이 중 한국이동통신이 일부를 활용하고 있는 상황. 만약 주파수 포화로 인한 적체현상이 가속화된다면 한국이동통신에게 가용할 수 있는 대역을 모두 줘야만 했다.

즉, 제2이동통신사에게 줄 주파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한국이동통신의 독점을 보다 공고히 해주는 결과이기에 당초 계획했던 경쟁체제 도입을 통한 통신시장 성장은 백지화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또한 상공부가 제시한 예상 무역적자폭도 달랐다. 상공부는 제2이동통신사와 관련해ㅐ 1992~1994년 무역적자 15억달러를 예상했으나 체신부는 우선적으로 사업자 선정 자체가 무역적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렇더라도 대략 6억달러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대표적으로 모토로라가 30% 수준의 기술료 이전을 요구하는 등의 현 상황에서 1년만에 가시적인 국산화율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아울러, 사업자 선정을 연기해야 한다면 그간 쌓인 적체현상으로 인해 고객 불만이 커지는 한편, 이동전화 수요를 강제로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시행연기라는 소극적 방법보다는 경쟁을 통한 이동통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국산화를 앞당기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기 역시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따랐다.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1980년말부터 정부가 고심했던 내용으로 1990년부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3년간 내실을 다졌던 정책 사업이다. 사업자 선정 공고를 1~2개월 앞두고 상공부가 반대에 나섰다는 질타를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도무지 풀릴 기색이 없었다.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과 송언종 체신부 장관, 한봉수 상공부 장관 등이 여러 차례에 거친 당정협의를 열었으나 빈손 회의가 되기 일쑤였다. 관계장관회의 역시도 마찬가지로 시간만 흘렀다.

갈등이 심화될수록 시장도 요동쳤다.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추측이 난무했다.

일각에서는 노태우 대통령 정권 마지막해임을 감안한 대기업의 로비가 심각했다는 주장이 따랐다. 대기업 지분 제한에 따라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삼성, 금성, 현대, 대우 등 4대 재벌기업들이 통신 시장 참여를 위한 견제책이 작동했다는 것. 공교롭게도 당시 5위 기업이라 불린 선경의 통신사업자 선정을 막기 위한 비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특혜 시비가 불거진 셈이다. 또한 이같은 정치적 해석은 일반 국민까지도 관심이 증폭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실제 시장에서는 속을 끓이고 있었다. 사업자 공고에 앞서 컨소시엄 구성과 연구개발 준비를 서둘러왔기 때문. 만약 사업자 선정이 연기된다면 그간 준비해왔던 모든 작업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금성과 삼성 등은 국내 시장을 빨리 열어줘야만 현재 기술 개발을 완료한 국산화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포항제철과 선경 등은 외국과의 손해배상, 인력 시설비 부담 등 토로했다. 공모를 준비 중이었던 기업들은 50~100명 가량의 인원을 충원하고 시험용 장비 구입과 기술 자문료 등으로 각각 500~1천만달러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 가량 이어진 줄다리기는 3월 26일 관계부처장관회의를 통해 봉합됐다. 당초 계획대로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데 합의를 이뤘다. 내용적인 면을 감안하더라도 체신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대신 체신부와 상공부는 휴대용 무선전화 국산화율을 현 20%에서 1996년 70%까지 높이고 디지털 방식의 이동통신은 공동개발지원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교환기 기지국 설비는 전자통신연구원(현 ETRI), 단말기와 핵심부품 기술 개발은 전자부품 연구소가 담당하기로 했다.

체신부는 계획보다 2개월 가량 늦기는 했으나 3월 26일 통신위원회를 구성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 신규 허가와 신청 공고안 등 후속 절차 작업을 진행했다. 이동전화는 6월 26일 허가 신청서를 접수하겠다고 발표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삐삐·카폰…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부. 1세대 통신(1G)…삼통사 라이즈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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