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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없어서 못 판다"…'이것' 만드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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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 기지서 가동률 100% 유지…"하이엔드 전문화"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내가 놓친 불량 유출, 회사 존폐 결정된다."

지난 14일 오후 3시. 화장을 모두 지운 채 흰색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를 한 후 들어선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1층 내부는 처음에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반도체 기판' 공정을 살펴보기 위해 3층까지 올라가는 계단에는 이 같은 문구가 곳곳에 쓰여져 있어 제품 완성도에 대한 삼성전기 임직원들만의 자부심도 느껴졌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장유미 기자]

지난 1990년 인근에 위치한 르노삼성자동차가 생산하는 자동차에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설립됐던 삼성전기는 지난 1997년 패키지용 기판인 IT용 서브기판(BGA)을 양산하기 시작하며 '반도체 기판'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특히 지난 2002년부터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 기판을 양산하기 시작해 이듬해 세계 최초로 두께가 130μm(마이크로미터) 이하인 가장 얇은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개발, 전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와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고, 반도체를 외부의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칩을 두뇌라고 가정하면 '반도체 기판'은 뇌를 보호하는 뼈와 뇌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각 기관에 연결해 전달하는 '신경과 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반도체 칩은 메인 기판과 서로 연결돼야 하는데 메인 기판의 회로는 반도체보다 미세하게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반도체 칩의 단자 사이 간격은 100um(마이크로미터)로 A4 두께 수준인 것에 비해 메인 기판의 단자 사이 간격은 약 350um로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패키지 기판'이다.

삼성전기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사진=삼성전기]
삼성전기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품 [사진=삼성전기]

패키지 기판의 종류는 반도체 칩을 기판에 붙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대표적으로는 ▲FC-BGA ▲BGA ▲FC-CSP(플립칩 스케일 패키지) 등이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부품을 메인보드 위에 연결하기 위해 가장자리를 금속선으로 묶는 '와이어 본딩' 방식을 택했으나, 효율성이 낮다는 평가 때문에 대안으로 '플립칩'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플립칩은 기판 위에 전기를 연결해 줄 금속 볼을 만들어 기판에 칩을 올릴 때 전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패키징 방식이다.

패키지 기판은 크기에 따라 종류가 FC-CSP와 FC-BGA로 나뉜다. 두 기판은 같은 역할을 하지만, FC-CSP는 기판의 크기와 부품의 크기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에 사용된다. 모바일 IT 기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 AP)에 들어가는 것이 FC-CSP다.

최근 공급난 이슈에 시달리는 FC-BGA는 칩보다 기판의 크기가 더 클 경우에 사용되는데, 고집적 반도체 칩과 기판을 플립칩 범프로 연결하며 전기 및 열적 특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주로 PC, 서버, 네트워크, 자동차 등 고성능 및 고밀도 회로 연결을 요구하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 처리장치)에 사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뇌 역할을 하는 코어 수가 많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해야 한다"며 "코어가 증가하면 반도체 기판 크기도 커져 FC-BGA를 필수로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FC-BGA 시장은 생산 능력 기준으로 일본 이비덴과 신코덴키, 대만 유니마이크론과 난야PCB 등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삼성전기는 아직 6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최근 기술력은 세계 3위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삼성전기는 비대칭으로 패키지 기판을 설계하는 기술 등을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현장에서 살펴본 PC, 전장, 서버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들도 상당 수준의 기술력이 접목된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이 제품들은 자체 칩 개발에 성공한 주요 글로벌 업체들에게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제작에 필수인 패키지 기판 역시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기판이 없으면 반도체를 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도체 업체들은 투자를 제안하거나 가격을 올려서라도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이러한 공급 부족 상황은 단기간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기판 특징 [사진=삼성전기 ]
반도체 기판 특징 [사진=삼성전기 ]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국내외 주요 기판 업체들이 최근 수 천억~수 조원의 패키지 기판 투자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대덕전자 등 국내 업체가 최근 투자 경쟁에 적극 나선 분위기다.

지난해 3분기부터 FC-BGA 공급을 시작한 대덕전자는 작년 말 1천100억원 가량의 투자를 단행키로 했고, LG이노텍은 내년까지 1조4천억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 사업장에 FC-BGA 생산 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오는 2024년까지는 FC-BGA 양산 라인 구축에 총 4천13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지난달 부산·세종사업장, 베트남 생산법인에 FC-BGA 설비를 증설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7개월 사이 FC-BGA 관련 투자에만 총 1조9천억원을 투자했다.

이 같은 결정 때문인지 삼성전기는 최근 부산사업장 내 반도체 기판 사업장 인근에 있던 버스 주차장 위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공장 확장 준비에 나섰다. 꽉 찬 생산 캐파를 더 늘리기 위해서다.

이날 방문한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내 반도체 기판 생산 라인도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패키지 기판은 설계→제작→패키징→세트 제작 등의 과정을 거쳐 제작되는데 이번 방문에선 전기 검사, 마이크로 볼 공정, 회로 SAP 등 일부 제작 과정만 살펴볼 수 있었다.

전 공정이 자동화 돼 있어선지 공장 내부에는 직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둘러본 5개의 공정에서 각 부문을 맡고 있는 담당 직원 5명 외에 2~3명만 제품 검수 등의 이유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했다.

또 ▲레이저로 각 층을 연결해주는 구멍(비아, Via)을 뚫는 공정과 ▲기판에 도금 후 남는 부분을 코팅한 다음 화학 작용(에칭) 처리하는 공정 등을 지나칠 땐 기계 소음도 상당했다. 로봇이 알아서 제품을 만들고 있는 듯 했지만, 제작 과정이나 각 과정별 제품 상태를 공장 내부에서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길목 곳곳에는 고객사별로 요구한 주문 사항이 올려진 제품 의뢰서도 눈에 띄었다.

황치원 삼성전기 패키지솔루션사업부 패키지개발팀 상무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모두 고객사의 요청 사항에 따라 다르게 제작된다"며 "핵심 기술은 '미세 가공 기술'과 '미세 회로 구현'으로, 삼성전기는 A4용지 두께의 10분의 1인 10um 수준의 비아를 구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한 가공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는 반도체 입출력 단자 수가 증가하면서 더 미세한 회로 구현이 필요한 상태"라며 "삼성전기는 머리카락 두께의 40분의 1인 3um 수준의 회로선 폭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이 같은 우수한 기술력 덕분에 삼성전기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북미 고객사도 사로잡았다. 과거에는 반도체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제조사가 일부 업체로 제한됐으나, 최근에는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고 외주를 통해 칩 생산에 나서면서 이로 인한 시장 성장에 따라 패키지 기판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기 패키지 기판의 설비 가동률은 거의 10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생산실적은 70만3천㎡(제곱미터)로, 축구 경기장 100개 면적의 규모와 맞먹는다.

업계에선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 성장성이 반도체 시장보다 높다고도 평가했다. 실제 반도체 시장은 올해 6천760억 불 수준으로, 연간 4% 수준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반면 패키지 기판은 올해 113억 불 수준으로, BGA와 FC-BGA를 합쳐 연평균 10% 수준으로 성장해 2026년에는 170억 불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5G 안테나, ARM CPU, 서버·전장·네트워크와 같은 산업·전장 분야를 주축으로 해서 시장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 베트남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삼성전기 베트남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기]

이에 맞춰 삼성전기는 고성능 서버, 네트워크, 자율주행 등 하이엔드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 또 차세대 패키지 기판 기술인 SoS(System On Substrates)에 주력하고 있는 상태다. SoS는 2개 이상의 반도체 칩을 기판 위에 배열해 통합된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초미세화 공정이 적용된 패키지 기판을 말한다.

삼성전기는 올해부터 네트워크용 FC-BGA 양산을 시작했고, 하반기에는 서버용 양산을 통한 제품 라인업을 확대해 하이엔드급 패키지 기판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글로벌 3위권에 안착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음 스텝인 GPU 기판도 양산하기 시작했다.

안정훈 삼성전기 패키지솔루션사업부 패키지지원팀 상무는 "부산사업장은 삼성전기의 핵심 전략 기지"라며 "앞으로도 국내 다른 업체보다 대규모의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특히 부산사업장은 하이엔드 제품 생산 기지로 전문화해 패키지 기판 사업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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