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003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WCDMA가 상용화되기는 했으나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거듭되는 통신 사업권 공모와 기업간 인수합병(M&A), 통신설비투자(CAPEX) 등을 복합적으로 이뤄지면서 각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엇갈렸다. CDMA2000의 순항과 미래 휴대인터넷 선정준비에 따라 자연스럽게 WCDMA에 대한 투자는 후순위로 밀렸다. 정보통신부는 지속적인 WCDMA 투자를 압박하고 단말기 보조금 지급 고시까지 개정했으나 사업자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리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위 네탓공방이 지속됐다. 통신사업자가 단말이 없다고 쏘아 붙이면 제조업자는 네트워크 미비를 꼬집었다. 그 사이 정부는 투자계획을 제대로 밝히라고 중재 아닌 채찍을 들었다. 한 때 SK텔레콤과 KTF 공동망 구축이 거론되기는 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국내 WCDMA는 통신사업자의 보수적 투자로 인해 커버리지 확대가 어려웠다. 즉, 고객입장에서는 WCDMA 휴대폰이라 하더라도 CDMA2000을 연결받을 수 있어야 했다. 이는 단말기 내 CDMA와 WCDMA를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두개의 칩에 내장돼야 한다는 의미다. 더 크고 무거우며 전력효율도 떨어지는 휴대폰을 사야했다. 원칩의 경우 2006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4년 10월 정통부의 바람대로 SK텔레콤과 KTF는 2006년까지 WCDMA에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미 투자한 금액은 1조원. 이후 2조원을 더 쏟겠다는 의도였다. 다만 듀얼밴드듀얼모드(DBDM) 단말 출시가 지연되면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 IMT-2000 활성화…HSDPA 본격 출항
WCDMA의 초기 부진은 CDMA2000 1x EV-DO와 큰 차이가 없어서다. 이미 가용 가능한 수준의 통신망을 갖추고 있으니 WCDMA는 투자만 지속해야 하는 계륵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EV-DO 기술이 진화발전하듯 WCDMA도 다음 계획이 마련돼 있었다. 다운로드 속도를 크게 향상시킨 고속하향패킷전송(HSDPA) 버전이 마련돼 있었다. 기존 WCDMA가 하향 2Mbps라면 HSDPA는 10Mbps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통사 역시 지금의 차별화되지 않은 WCDMA를 끌고 가기 보다는 한단계 점프한 HSDPA로 빠르게 치고 나가겠다는 의도였다.
2005년초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상반기 중 HSDPA 장비를 공급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통사 역시 하반기부터 HSDPA 장비 설치에 나서겠다는 로드맵을 설계했다. 이미 투자를 약속한 비용도 HSDPA를 위해 조정됐다. 단말의 핵심인 칩셋의 경우 퀄컴이 3분기부터 HSDPA를 지원하는 MSM6280에 대한 샘플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퀄컴과 삼성전자, LG전자는 나란히 HSDPA 통화 시연에 성공했다.
2006년 5월 16일 SK텔레콤이 HSDPA 지원 단말기를 출시하며 세계 최초 상용화를 알렸다. HSDPA는 같은 기간 상용화 절차를 밟은 와이브로와 함께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해 3.5G라 부르기도 했다. SK텔레콤 역시 HSDPA 용어의 어려움을 알고 ‘3G+’라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HSDPA가 낼 수 있는 이론상 다운로드 속도는 14.4Mbps, 당시 단말은 초기임을 감안해 1.8Mbps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단계적 진화를 거쳐 2008년이면 본래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CDMA 2000 1x EV-DO를 바탕으로 더 빠른 속도의 HSPDA, 보완재 역할을 해줄 와이브로 사업자로 거듭났다.
SK텔레콤은 우선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과 대구, 대전, 제주 등 25개 주요 도시에 3G+를 제공하고 연내 84개시를 커버할 수 있도록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목표 가입자수는 30만명. 지원단말은 약 6종까지 계획했다.
3G+ 첫 단말은 삼성전자의 SCH-W200, LG전자도 SH-100 출시를 예약했다. WCDMA 단말 지원금 정책으로 인해 70만원의 출고가는 40만원대의 실구매가로 낮아졌다.
이어 KTF는 6월 30일 전국 50개시를 커버할 수 있는 HSDPA 서비스 상용화를 알렸다. SK텔레콤과 마찬가지로 연말이면 84개시를 아우른다는 계획을 밝혔다. 단말은 LG전자 KH-1000(SH-100)이 출시되면서 2종을 먼저 내놨다.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가 2GHz 주파수를 활용함에 따라 본격적인 로밍 활성화에도 보탬이 됐다. 이후부터 WCDMA는 그간 계륵이자 미운 오리에서 황금알로 서서히 변화돼 갔다.
◆ T vs 쇼
단말 부족과 서비스 커버리지 미흡으로 인해 HSDPA 시장은 초기 어려움을 겪기는 했으나 사정은 점차 나아졌다. SK텔레콤과 KTF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투자비도 오름세를 기록했다. SK텔레콤은 당초 5천700억 수준에서 8천100억원으로, KTF는 3천500억원에서 7천억원까지 책정했다. 전국망 시기 역시 누가 먼저 개시할지를 두고 아웅다웅했다.
이동통신 전문용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하자 이통사들은 브랜드 통합을 결정했다. 2006년 8월 1일 SK텔레콤은 새로운 이동통신 브랜드인 ’T’를 론칭했다. HSDPA 서비스는 ’T 3G+’, 요금제는 ’T plan’ 등 ’T’를 앞세워 상품들을 정렬했다. 아울러 오프라인 매장도 고객친화적으로 바꾸고 ‘T월드’로 명명했다. 가입자 대상 ‘T 로그인’도 구축했다.
2007년 새해가 밝자 이통3사는 누구나 1등을 목표로 한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 특히 KTF는 만년 2위 사업자에서 벗어나 WCDMA를 통해 1등 사업자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했다. LG텔레콤 역시 새로운 사업모델을 구축해 1위로 올라서겠다는 당찬 포부를 전했다. 이에 따라 시장은 다시 과열경쟁 양상으로 번졌다.
그 가운데, KTF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대적인 마케팅 홍보에 돌입했다. “쇼(SHOW)를 하라”라는 단순한 광고였는데 과거 SK텔레콤이 TTL 광고를 보낸 것과 마찬가지로 의도를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 궁금증을 자아냈다.
‘쇼’의 정체는 2007년 3월 1일 드러났다. KTF는 3G HSDPA 전국망 서비스를 선언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브랜드로 ‘쇼(SHOW)’를 앞세운 것. 사실상 KTF의 이같은 홍보전략은 과거 CDMA 시절과도 맞닿는다. KT의 CDMA 첫 홍보 카피는 ‘소리가 보인다’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번 ‘쇼’ 역시도 과거를 이으면서도 새롭게 차별화하겠다는 KTF의 의지가 담긴 셈이다.
특히 3G HSDPA는 이동통신을 통한 영상시대 개막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KTF도 이같은 트렌트에 부합하는 신규 브랜드를 신설했다고 볼 수 있다. 쇼 요금제는 무려 19종으로 다양하게 재편했다. 최대 30만원의 보조금을 통해 가입자 유치에 불을 켰다. 그 기세가 대단했기에 실제로 1위 사업자로 도약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조영주 KTF 사장은 직접 발품을 팔아 ‘쇼’를 알리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불과 1주일만에 3G 신규 가입자 1만3천명을 모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실제 업계에서는 KTF가 SK텔레콤을 누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사실 KTF가 재빨린 HSDPA 전국망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는데에는 모회사인 KT의 공이 컸다. KTF의 노하우도 한몫했다. 아이러니하게도 KTF의 1.8GHz 주파수 CDMA 운용 경험이 주효했다.
앞서 800MHz 주파수를 활용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꾸려온 SK텔레콤의 경우 2GHz 주파수 대역의 WCDMA는 또 다른 도전이었던데 비해 KTF는 이미 1.8GHz 주파수에 대한 설비와 노하우가 마련돼 있었다. HSDPA 전국망에 승부를 걸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인프라가 탄탄했기 때문.
SK텔레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많은 없었다. 3월 29일 예상보다 빠르게 인구대비 99% 수준의 전국망을 완료했음을 발표했다. 바야흐로 진정한 의미의 IMT-2000, WCDMA, HSDPA, 즉 3G 시대가 본격화된 때였다.
이통시장은 요금인하와 보조금 경쟁, 저가 휴대폰의 등장으로 더 뜨겁게 타올랐다. 실제 KTF는 그 염원을 이루기도 했다. 만년 2위 꼬리표를 떼자고 외친 결과 50여일만에 3G HSDPA 가입자만큼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을 눌렀다. 전체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1위를 유지하기는 했으나 그만큼 위기의식을 갖기 충분했다.
SK텔레콤과 KTF는 즉각 다운로드 속도뿐만 아니라 업로드 속도를 개선한 고속상향패킷접속(HSUPA) 상용화를 서두르겠다고 발표했다. 최대 5.76Mbps 업로드 속도를 낼 수 있기에 모바일 UCC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였다.
3G가 활성화된 2007년말 가입자는 어느덧 600만명을 넘어섰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㊸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㊹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 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㊺ 휴대인터넷 세상 열겠다…와이브로 출항기/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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