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진 후 첫 인사가 임박한 가운데 이재승 전 사장이 맡았던 생활가전사업부 수장 자리를 누가 차지할 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예년처럼 다음 달 초쯤 정기 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내년 경제 상황이 불투명한 가운데 경영 체제를 빠르게 정비하고자 삼성전자도 이달 말쯤 인사를 당길 것으로 예상했으나, 내부적으로는 기존과 동일한 시기에 진행될 것으로 봤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취임한 뒤 처음 진행하는 정기 인사인 만큼, 본격적인 '뉴삼성' 전략을 펼치기 위해 삼성 측이 그룹 전체를 아우를 컨트롤타워를 함께 부활시킬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 이번 인사를 통해 어느 정도 사전 정지 작업을 진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의 승진으로 별도의 비서 조직이 이번에 꾸려질 경우 컨트롤타워 부활에 앞서 관련 역할을 일부 수행할 수 있다"며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현호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비롯해 박학규 경영지원실장(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등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이 컨트롤타워가 생길 경우 전진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과 경계현 사장(DS부문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 핵심 사업부 수장의 인사 폭은 이번에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부사장 이하 임원급에서 상당한 변화를 줘 혁신 의지를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세대교체에 나설 경우 만 60세 이상의 고위 임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60세 미만의 40, 50대 사장이 승진하는 '60세 룰' 기조를 이번에도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단행하면서도 내부 결속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를 바탕으로 젊은 인재들을 다수 등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번 삼성전자 정기 인사의 가장 큰 변수는 이재승 전 사장의 돌연 사임이다. 이 전 사장은 삼성전자 생활가전 분야에서만 3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로, 생활가전사업부 출신으로는 최초로 사장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전까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으로 주로 TV사업을 담당하는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출신 인사들이 기용됐다. 윤부근 전 부회장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김현석 전 사장이 2017년 말부터 2019년까지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정기 인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달 중순께 돌연 사임했다. 직전까지 '부산 엑스포' 홍보와 글로벌 경영에 적극 나섰다는 점에서 업계에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이 사장이 일신상의 사유로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후임 생활가전사업부장으로 현 대표이사이자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을 겸직 위촉했다. 또 이 전 사장은 대표이사 보좌역으로 위촉돼 가전 비즈니스 관련 자문, 지원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사장은 최근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현업을 챙기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으나, 일각에선 지난 7월부터 이어진 '세탁기 불량 사태'와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까지 채택된 것이 부담을 줬을 것으로 봤다.
이 전 사장은 지난달 4일 진행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증인 명단에 채택됐으나, 당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협력을 요청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방문 중인 엘살바도르 정부 관계자를 만나면서 결국 증인 신청이 철회됐다. 산자위는 삼성전자의 드럼세탁기 '비스포크 그랑데 AI'의 강화 유리문이 파손되는 사고가 잇따르며 논란이 일자 이 전 사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 이 일과 관련해 이후 진행된 종합 국감에는 이기수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부사장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전 사장이 이 일로 이재용 회장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들이 있다"며 "이 전 사장의 돌연 사임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이유들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이와 관련된 이유였다면 대표이사 보좌역으로 위촉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가전 시장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전 사장이 상당한 부담을 느껴 사퇴했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하락 현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가전·전자 제품 시장 불황이 장기화돼 실적이 큰 타격을 받고 있어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영상디스플레이(VD)·가전 사업부 매출은 14조7천5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천500억원으로 67.1% 급감했다.
이에 따른 내부 구성원의 사기 저하 문제 역시 영향을 줬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실적을 고려해 월 기본급의 최대 100%까지 지급하는 '목표달성장려금(TAI)' 제도를 운영 중인데, 생활가전사업부는 올 상반기 지급률이 모든 사업부 중 가장 낮은 62.5%로 알려졌다. 이에 생활가전사업부 내부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재계에선 한 부회장이 일단 DX부문장과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하고 있지만, 이번 정기 인사에서 새로운 생활가전부문장을 선임하며 사업부 전반적으로 인적 쇄신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세탁기 불량 사태'가 이번 인사의 변수가 되고 있다는 내부의 시각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 부회장이 이 사장의 후임으로 당분간 생활가전사업부장을 겸직한다고 하지만, DX사업부도 총괄하고 있어 업무 부담이 높은 만큼 오랫동안 이 체제가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정기 인사에서 생활가전사업부를 중심으로 큰 폭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후임으로는 이기수 부사장(생활가전 개발팀장), 노형훈 부사장(생활가전 글로벌운영팀장), 이강협 부사장(생활가전 전략마케팅팀장), 이준현 부사장(생활가전 선행개발팀장), 이무형 부사장(생활가전 개발팀장), 최중열 부사장(생활가전 담당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 동안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은 오랫동안 생활 가전, VD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온 내부 인물을 발탁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이들의 영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이 전 사장의 커리어 만큼 부응하고 있지 못한 데다 성과도 뚜렷하지 않단 점에서다. 특히 올해 불거진 세탁기 품질 논란으로 실질적으로 더 관여한 이기수 부사장은 되레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 냉장고 개발실 출신으로 비스포크 냉장고, 그랑데AI 세탁기 등의 혁신 가전 기획을 주도한 인물이다. 다만 이번 세탁기 품질 논란으로 커리어에 흠집이 났다.
재계 관계자는 "이 전 사장의 사임 이후 내부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며 "최근 전사적으로 혁신 변화 등을 추구하면서 외부에서 임원급 인재 채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 인재가 생활가전사업부 수장으로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DS(반도체)나 MX(무선) 등 다른 사업부는 정기 인사 때 대체로 안정적일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생활가전사업부는 새로운 수장이 선임되면 내부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인력 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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