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수요 위축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매서운 불황이 닥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초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투자 규모와 임원 예산을 대폭 줄였고,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략 회의를 열고 위기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날 오전 경계현 DS 부문 사장 주재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상반기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수요 감소로 인해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내년 상반기까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실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실제로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7조9천970억원으로 추정된다. 3개월 직전 추정치보다 33% 감소한 수준이다. 유진투자증권과 DB금융투자는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이 6조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2020년 1분기(6조4천473억원) 이후 11개 분기 만에 최저점을 찍는 셈이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더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을 5조8천억원으로, 기존(7조8천억원) 대비 25.6% 하향 조정했다. 이는 작년 동기(13조9천억원)보다 58.3% 감소한 수치다. 특히 반도체 부문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2조6천억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42.3% 줄였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8조8천억원) 대비 83% 급감한 수준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1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건 지난 2009년 이후 없다.
이 탓에 삼성전자는 연말 성과급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전날 공지한 올해 하반기 사업부별 목표달성 장려금(TAI) 지급률에 따르면 매년 하반기 월 기본급의 100%를 성과급으로 받아온 DS(반도체)부문에 역대 최저 수준인 50%의 성과급이 책정됐다.
이 같은 상황에 놓인 만큼 경 사장은 이날 회의에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 방안, 파운드리(위탁생산) 강화 전략 등을 점검하는 한편, 생산량 조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중 70%가량이 메모리 반도체에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 향후 시스템 반도체 사업 비중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대만 TSMC와 달리 탄탄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설비투자와 기술 개발, 핵심 고객사 확보를 위한 전략 마련과 관련해서도 의견을 나눴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인위적인 감산은 없다"고 밝혔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전략이 이번에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낸드플래시는 내년 하반기까지, D램은 내년 상반기까지 재고 수준이 높게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마이크론, 키옥시아 등은 지난 3분기부터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한 상태다. SK하이닉스도 감산을 예고했지만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생산공정 기간을 고려하면 감산 효과가 짧게는 2~3개월에서 5~6개월 이후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업계에선 1위인 삼성전자도 내년 1분기 이후부터 공급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내년 2분기쯤 메모리 분야에서 1천9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산 결정이 없다면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 역시 내년 2분기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가 감산뿐만 아니라 설비투자(CAPEX)까지 대폭 줄일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투자를 50%가량 줄일 것이라고 밝혔고, 마이크론 역시 설비투자 축소를 예고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황 반등에 생산 자체보다 설비투자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재고가 정상 수준까지 내려가야 가격 반등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설비투자가 확 줄면 반등 시점이 빨라지는 만큼 사이클 반전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도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자 투자 축소뿐 아니라 예산까지 줄이고 나섰다. 전날 사내 인트라넷에선 임원 예산을 50%, 팀장 예산을 30% 각각 줄이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줄이기로 한 예산은 임원·팀장의 활동비와 업무 추진비, 복리후생 비용 등이다.
이번 결정은 반도체 업황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내에 구축한 '다운턴 태스크포스(TF)'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반도체 다운턴 도래에 따라 다운턴TF를 구축하고 단기 경영환경 대응과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활동을 검토·실행하고 있다.
또 SK하이닉스는 올 초 기본급의 1천%까지 지급됐던 '초과이익분배금(PS)'도 내년 초엔 700%가량으로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3분기까진 영업이익을 유지했으나, 올해 4분기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올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6천36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일부 증권사들은 1조원대 영업적자까지 예상했다. 유안타증권은 SK하이닉스의 4분기 예상 실적으로 매출 8조6천억원, 영업손실 1조1천억원을 추산했다. 다올투자증권은 매출액 8조원, 영업손실 1조1천억원을, 신영증권은 매출 7조5천억원, 영업손실 1조3천억원을 예상했다.
이 탓에 SK하이닉스의 주가도 낙폭을 키워왔다. 지난 2월 17일 기록한 연고점 13만3천원과 비교해 전날 종가(7만8천원) 기준 주가는 41.4% 하락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전날 사내 공지를 통해 주가 부양책의 일환으로 임직원들에게 내년 1월 말쯤 지급하는 PS의 일부(최대 50%)를 자사주로 선택해 보유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공지했다. 또 프로그램을 통해 자사주 1년 보유 시 매입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하겠다는 내용도 게시했다.
7년 만에 적자전환을 기록한 미국 마이크론도 메모리 한파로 힘겨워 하는 모습이다. 마이크론의 올해 9~11월 매출액은 전년 대비 47% 급감한 40억9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예상치 41억5천만 달러에도 못 미쳤다. 영업 손실은 1억 달러(약 1천276억원)로 적자 전환했다. 이에 마이크론은 자발적인 감원과 인력 감축을 통해 내년에 현 직원 4만8천 명에서 10% 정도를 줄이기로 했다. 자사주 매입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내년 실적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라며 "금리 인상으로 수요가 둔화되고 있고, 메모리 재고 조정으로 향후 추가로 실적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감산뿐 아니라 감원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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