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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선의 보안 이야기]보안은 생활혁명을 떠받치는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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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Trigger) III: 생활혁명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가정에 케이블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뉴스, 영화, 스포츠와 같은 전문 채널들이 나오면서 공중파 방송에만 의존했던 소비자들은 보다 다양한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기존의 방송과는 다른 형태로 등장해 많은 관심을 끈 것이 바로 홈쇼핑 채널이다. 쇼 호스트의 설명을 듣고 전화로 주문해서 소포로 상품을 받게 되는 방식이 한국에서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백화점에서 통신판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보조상품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당시에 홈쇼핑 사업에 선정되어 준비하는 업체나 일반 국민이나 “저 사업이 과연 잘 될까” 하는 호기심 반 우려 반의 불확실성이 있었다. 필자도 홈쇼핑이든 전자상거래든 물건이 우편으로 배달되는 형태가 한국에서 정착하기 어렵다는데 한 표 던졌다.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편지주문(Mail Order)이라는 방식이 오래 전부터 자리 잡았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여서 가까운 백화점에 가려고 해도 차로 20-30분 이상을 가야 하는 경우가 흔했다. 맘 먹고 가더라도 사이즈, 색깔, 스타일에 맞는 상품을 찾기 힘들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재고가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당연히 몇 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 소비자들의 인내를 필요로 했다. 그에 비해 집에서 카탈로그를 받아보고 상품을 골라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고 우편으로 받는 형태는 미국의 지리적 특성이나 국민성에 잘 맞는 쇼핑 방법이었다.

어떤 상품은 일부러 메일로만 주문을 받기도 했다. 소비자에게 브랜드만 각인되어 있다면, 직거래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고, 때로는 희소가치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우체국 이외에 페더럴 익스프레스(Federal Express), UPS와 같은 발달된 택배 시스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에서도 ‘통신판매’라는 형태로 카탈로그쇼핑, 텔레마케팅(Tele-Marketing) 개념이 일찍이 정착했다. 흥미로운 것은 케이블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는 공용TV에서 특정 상품을 짧은 시간에 집중 판매하는 단발성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통한 홈쇼핑 문화

그러나, 과연 이런 상거래 형태가 우리 나라에서도 통할까? 인근 백화점에서 수시로 셔틀버스로 실어 나르고, 집으로 친절하게 배달해주는 등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고, 백화점이 쇼핑만 하는 게 아니고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의 역할도 하는 게 한국 아닌가? 과연 옷을 만져 보지도 않고 살 수 있을까? 게다가 택배시스템은 아직 낙후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나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 홈쇼핑 채널은 공중파방송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다. 심지어는 일반채널도 지역광고 시간에 단발성 홈쇼핑을 내보낸다. 이렇게 홈쇼핑 문화는 빠르게 우리사회에 자리잡았다. 물론 판로개척을 위해 마진을 거의 포기하면서 홈쇼핑에 물건을 내놓는 업체들의 출혈영업도 한 몫 했고, ‘신용카드 대란’을 일으킨 신용카드의 과다 발급으로 인해 과소비 형태가 조장된 면도 없지 않다. 그래도 일상 상거래 행위를 통신과 물류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빠른 속도로 체화(體化)한 한국인의 역동성이 잘 드러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의 열풍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늦게 시작해 급하게 좇아감으로 인해 생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전자상거래’는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벌어진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사실 인터넷 버블은 전자상거래에 대해 과도한 기대로 연결된 적이 있었다. 금방 모든 물리적 공간이 사이버 쇼핑몰이라는 형태로 갈 거라고 IT 업체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IT 벤처기업 CEO는 대기업 경영진과의 대담에서 굴뚝산업은 벤처기업의 온라인 거래로 모두 바뀔 거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러한 꿈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야별로 준비가 된 것부터 하나씩 실현이 되어 갔다. 아마존(Amazon)이 인터넷 서점으로, 이베이(Ebay)가 C-to-C거래 중개 사이트로, 아이튠스(iTunes)가 음악파일 판매 사이트로 대표적 브랜드가 되었다. 이들을 세계적인 서비스 업체로 만든 것은 이들을 생활 속으로 받아들인 소비자들이었다.

아마존(Amazon)이 책을 첫 상품으로 정한 것은 참으로 현명한 결정이었다. 책은 다른 상품에 비해 배달 과정에 손상될 위험이 적었고, 표준화되어 있었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었다. 또한 지식의 추구라는 인터넷 검색의 목표와 책의 근본 목적은 서로 부합한다. 아마존은 책이라는 상품 거래를 통해 인터넷 상거래를 위한 인프라를 차근차근 구축해 갔다. 결제 시스템, 데이터베이스화, 서평(Book Review), 평가 등급 등.

그러나, 무엇보다 아마존이 돋보였던 것은 보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었다. 아마존에서 책을 검색하다가도 결제를 걱정하던 이들에게, “당신은 아마존을 믿어도 됩니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걱정과 망설임에 머뭇거리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실제로 아마존은 철저한 보안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 보안인력과 시스템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보안에 대한 불안이 걷히면서 신규 고객과 아마존 사이에는 끈끈한 신뢰가 구축되어 갔다. 상거래의 기본인 공급자와 구매자의 신뢰가 구축되니 지속적인 구매가 일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아마존은 취급 상품을 확대했다. 오늘날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제공하여 다른 인터넷 상인(Merchant)들을 돕는 Web 2.0의 선도 업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생활혁명의 현장

엄청난 생활의 변화가 온 것은 전자상거래만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터넷뱅킹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인터넷뱅킹을 본격적으로 구축하던 시기가 90년대 말이니, 10년이 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에 가서 직접 송금하고 돈을 찾으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고객의 은행 이용 패턴이 바뀌면서 은행의 구조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은행에 들어서면 사람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은행에 가면 처음 만나는 것은 현금출납기다. 인터넷뱅킹으로 하기 어려운 현금인출 같은 서비스가 대부분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비로소 은행 직원을 찾게 된다. 따라서, 은행은 예전처럼 많은 직원과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IMF 이후 금융권의 합병과 구조조정 노력도 있었지만, 사용자의 습관이 대부분의 서비스를 인터넷뱅킹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크게 바뀐 것이 주효했다.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변화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다. 인터넷으로 개인들이 직접 주식을 거래함에 따라 수수료에 의존하던 증권회사는 수익 모델과 내부 구조를 바꿔야 했다. 과거에 여행사는 해외여행 정보를 제공하고 티켓 판매로 돈을 벌었다. 이제는 각 개인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여행지를 정하고 원하는 호텔을 가장 저렴한 값에 직접 예약한다. 항공사는 경쟁적으로 각 소비자를 겨냥한 직접 프로모션을 전개한다. 여행사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그런가하면 과거에는 본적이 지방인 사람이 호적등본을 떼려면 본적지에 거주하는 친척이나 지인에게 부탁해서 편지로 며칠이 걸려 받아야 했다. 지금은 가까운 동사무소에서 가거나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다.

신뢰의 플랫폼을 이끄는 보안

‘혁명’이란 기득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질서가 무너질 때 피해를 보는 세력과 이득을 보는 계층이 교차한다. 기존 정치적 권위를 몰아내는 과거의 ‘피의 혁명’과 달리, 인터넷을 통한 ‘생활혁명’은 우리 각 개인의 삶의 현장과 문화 속에서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계속 진행 중이다.

기업은 탄탄했던 수익모델이 무너지니 새로운 사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인터넷은 기존 서비스와 유통 질서를 파괴했다. 천직으로 삼았던 직업을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기업은 새로운 환경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끝없는 변신을 해야 한다. 역사상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한 계층에 충격과 변화를 준 혁명이 또 있었을까? 이 혁명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직업의 선택, 자기계발의 방향도 계속 바꾸게 하고 있다.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혁신으로 인하여 지식의 변화 속도 또한 엄청나게 빨라질 것이다. 기본교육은 변함없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테지만, ‘고용 가능한’ 인재가 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보충교육을 받아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라며 급변하는 교육과 직업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혁명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권위와 시스템의 개념도 혼란스럽게 한다.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은 상대방을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 그것을 믿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사회 속에서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지켜주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생활혁명은 보안의 주체와 범위, 프로세스를 다시 정의하게 만들었다. 아니, 보안이 중심을 찾지 못하면 사회적 신뢰의 플랫폼이 무너진다. 여기에 보안의 중요성이 있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column_phil_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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