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불이 없던 어린 시절엔 밤 늦게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호롱불에 쓰는 기름값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자가 처음 전깃불 구경을 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래서 그 땐 웬만하면 낮에 학교 숙제를 끝내버려야 했다. 밤 늦게 책을 읽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뒤 전기가 일상생활 필수품이 되면서 생활은 또 달라졌다. 이젠 밤늦게 불을 켜놔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됐다. 대부분의 경우 그 정도 전기세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또 다른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이 가정의 중심 오락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저녁 독서 시간을 빼앗아 간 것이다.
그럼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들이 대세로 떠오른 요즘은 어떨까? 독서 습관이 달라진 것일까?
◆저장은 하루 종일 비슷한 수준, 읽기는 저녁 때 몰려
때 마침 '리드잇레이터(ReaditLater)'란 사이트가 자신들의 사이트에 저장된 콘텐츠 1억 건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으로 모바일 시대의 독서 관행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리드잇레이터는 콘텐츠를 저장할 수 있는 DB 창고 역할을 하는 사이트다. 읽을만한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 나중에 읽기 위해(read it later) 저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선 사람들이 콘텐츠를 저장하는 시간. <그림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활동하는 시간엔 비슷한 수준을 나타낸다.
이 그래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읽을만한 콘텐츠는 도처에 널려 있고,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읽기 위해 수시로 저장해 놓는다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이든, 퇴근 이후든, 읽을만한 콘텐츠를 만나게 되면 일단 저장부터 해놓는단 얘기다.
일단 저장해 놓은 콘텐츠를 읽는 것은 어떨까? PC 이용자와 모바일 기기 이용자들 간에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날까?
<그림2>를 살펴보자. 크게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심 시간 전후에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린 후 가파르게 줄어들었다가 오후 6시 이후에 다시 증가한다. 왜 그런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림1>과 <그림2>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볼 만한 콘텐츠를 저장하는 것은 하루 종일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지만, 그것을 읽는 것은 퇴근 이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는 얘기다.
◆아이패드, 저녁 시간 집중 두드러져
<그림3>은 아이폰 이용자들의 읽기 경향을 나타낸 그래프다. 오전 6시 전후와 9시 전후. 그리고 오후 5~6시 사이, 오후 8~10시 사이 등 하루 네 차례 큰 봉우리를 그린다. 오전 6시는 아침 식사시간, 오전 9시 전후는 출근 시간 대, 오후 5에서 6시 사이는 퇴근 시간대(우리 나라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고 오전 8시 이후는 집에서 쉬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높은 봉우리를 나타낸 시간대는 업무 사이의 빈 공간, 즉 화이트스페이스(whitespace)인 셈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아이패드 이용자들을 한번 살펴보자. <그림4>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저녁 시간 대에 집중적으로 독서 시간이 몰려 있다. 주로 퇴근 이후 시간 대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읽는다는 얘기다. 이는 텔레비전 시청 시간대와 집중적으로 겹친다.
CNN은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보도하면서 아이패드 등 태블릿PC가 활성화되면 저녁 식사후 텔레비전을 보는 미국의 전형적인 풍속도가 텔레비전 이전시대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몇몇 언론사들도 CNN을 인용 보도하면서 아이패드가 독서 르네상스를 몰고 올 것이라고 전했다. 한 발 더 나가 "텔레비전 광고 시장 위축이 우려된다"고 보도한 매체도 있었다.
◆아이패드가 온라인 독서 습관 바꾸나?
물론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독서 부흥이나 텔레비전 광고 시장 위협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갔다는 느낌도 든다.
CNN 역시 이 자료만 가지고는 성급하게 결론내릴 순 없다고 지적했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아이패드를 볼 수도 있으며, 아이패드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5>를 통해 다른 분석을 해보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패드 이용자들은 점심 시간 전후를 제외하곤 컴퓨터로 뭔가를 읽는 시간이 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이 컴퓨터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료를 통해서는 아이패드가 온라인 독서 습관을 바꾸고 있다는 정도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반면 저녁 시간 대에 집중적으로 아이패드로 뭔가를 읽는다고 해서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줄일 것이란 결론은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좀 더 정교한 후속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자료를 읽기 원하는 사람은 Is Mobile Affecting When We Read?를 직접 방문하면 된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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