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 우리 경제계에는 '상생'과 '동반성장', 그리고 '공정'이라는 화두가 마치 유행처럼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방안이 MB 정부가 내세운 '공정사회' 실현이라는 하반기 국정기조와 맞물리면서 더욱 또렷히 각인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대기업 총수와 사장들이 직접 나서 '협력사와 갑을관계를 없애자', '우리와 협력사는 한 몸'이라며 상생과 동반 성장을 강조하는 모습이 요즘 뉴스에서 눈에 자주 띕니다.
과거 '출세주의', '이기면 장땡'이라는 사고방식에서 공동체와 나눔이라는 상생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 해서 일면 희망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업상 '마른 수건에서 물 짠다'는 말처럼 하청 기업이나 협력사의 손목을 비틀어 자기 배 채우기에 급급한 대기업을 심심치 않게 봐 왔던 터라 과연 우리 경제의 구조가 상생의 구조로 바뀌어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떨쳐지지 않습니다.
협력사를 잘 후려치는 것도 능력으로 대접 받았던 시절이 바로 엇그제 같은데, 갑작스레 상생과 동반이라는 '화친모드(?)'가 왠지 어색한 느낌입니다.
단적인 예로 연말 연초 '대박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대기업들의 뉴스를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돈을 벌어 많은 이윤을 내는 게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의 목표이자 존재의 이유라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성공한 대기업을 무작정 시기하려는 어줍잖은 20세기 진보주의를 내세우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입으로만 외치기 보다는 마음을 터 놓고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현장 실천방안과 제도적인 장치를 궁리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최근 창업 21년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이 언급한 말은 상생과 동반을 강조하는 요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변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1970년대 이후 창업한 기업 중 매출 1조원을 넘긴 곳은 웅진, NHN, 이랜드, 휴맥스 등 4~5 곳에 불과하다"며 "국내에는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정착되어 있어 벤처기업이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기란 힘들다"고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를 지적했습니다.
변 사장이 언급한 기업들은 모두 소비자와 직접 만나 돈을 버는 B2C 기업이거나 한국이 아닌 해외 시장을 맨 손으로 공략해 자본을 축적한 기업들입니다.
평소 기업가 정신을 자주 언급하는 안철수 교수 역시 이런 대기업 독과점구조를 '약탈 경영'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60~70년대 재벌경제를 모토로 선진기술 습득과 규모의 경제를 키워 온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우리의 경제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휴맥스나 NHN 같은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는 국내에서 빌 게이츠나 주크버그가 나오기 힘든 이치와 다름 아닙니다.
어느 경제 학자는 "이고 있는 짐을 다 벗어던지고 나 혼자 달리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빨리 뛸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도움을 받고 싶을 때는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다"고 국내 대기업들의 경영방식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먹고 살기 바빠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앉은 설날 저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진정한 상생과 공존이 무언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 봅니다.
정진호기자 jhj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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