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기자] 10.26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 시장에 선출된 범야권 무소속 박원순(55) 당선자는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다.
평소 소탈하고 어눌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대단한 입담과 유머를 자랑한다. 그는 '수첩의 노예'라고 할 만큼 하루 일과를 빼곡히 적힌 수첩 속 일정에 따라 초 단위로 바쁘게 움직이며 시민 운동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책벌레다.
박 신임 시장의 인생사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박 시장은 1975년 서울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학생 시위를 하다 투옥돼 징역을 살았다.
후일 그는 "멀쩡히 학교 다니다 감옥에 갔다. 그날 저녁엔 이화여대 학생과 미팅을 잡아놨는데, 주동자는 다 도망가고 나만 잡혀갔다. 하지만 감옥에서 인생을 배웠다. 만약 착실히 공부해 판검사나 됐으면 세상의 주변부로 갔을 거다. 감옥에서 수인들을 만나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졌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에서 제적당한 후 단국대 사학과로 학적을 옮겨 79년 졸업했다. 1980년 사법고시 22회에 합격하고 대구지검에서 1년동안 검사로 재직하다 뜻에 맞지 않아 옷을 벗고 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미 문화원 방화사건 등의 변론을 맡으면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그는 이 때부터 수 많은 양심수와 시국 사건을 변론하며 인권 변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는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으며 소액주주 운동, 부패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을 했다. 이어 2002년부터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를 맡아 우리 사회의 나눔-기부 문화 확산에 앞장 선다.
아름다운 재단에 재직 당시 네이버와 '해피빈' 등 독특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인터넷을 통한 기부문화 정착에 기여했다. 당시 그는 "10년 후 인터넷을 통한 기부가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적 사건을 발아시켰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지금 보면 그의 선견적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맡을 당시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며 '쇼셜 디자인너'를 자처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 해 그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지난 달 출마 선언 당시 그가 신은 밑창이 다 닳아빠진 '낡은 구두' 사진 한장이 화제인 만큼 편안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좋아한다. 그는 평소 고무신을 자주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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