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제약업계가 내년도 사업계획 예산안을 두고 깊은 시름에 빠졌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부의 일괄 약가인하 정책의 여파로 각 제약사마다 적지 않은 매출 손실이 예상됨에 따라 판매 및 일반 관리비 등을 절감하는 긴축재정안을 마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미 몇 년에 걸쳐 진행돼온 신약 및 제네릭(복제약) 임상시험 등에 대한 비용의 경제성을 따져 전면 재검토, 개발 중단을 고려하는 등 연구개발(R&D)비 축소가 불가피하다.
약가인하가 시행될 경우 사업계획 단계에서 책정했던 예상 약가가 급격히 하락하기 때문에, 개발을 지속할 것이냐를 두고 회사마다 내부 고민이 거듭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자칫 수 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연구결과물들이 연구개발비 축소로 인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 제약사들은 냉가슴만 앓고 있는 것.
R&D 투자율이 높은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 지속 여부를 놓고 연일 회의를 거듭 중"이라며 "이미 진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사업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괄 약가인하로 각 제약사마다 영업이익이 20%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비를 예년처럼 투자하긴 사실상 어렵다"며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 제약사들의 연구개발 활동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간 글로벌 진출을 내걸고 R&D투자비율을 높여왔던 상위제약사들의 투자비용 감축이 진행될 전망이다.
제약업계와 회계법인 태영에 따르면 동아제약, 대웅제약, 일동제약, 유한양행, 한미약품, JW중외제약 등 대부분 국내 상위제약사들은 약가인하 시행 후 연구개발 투자 비용을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 내외까지 감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 가운데 매출액의 13% 이상을 R&D분야에 투자하며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한미약품의 감축액이 가장 크다. 한미약품의 판관비 가운데 R&D비용은 총 478억원이며, 약가인하 후에는 362억원으로 100억원 이상 감소할 것이란 예측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약가인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판매관리비를 줄이겠지만 R&D투자 비용도 줄일 수 밖에 없다"며 "이는 결국 제약사들의 미래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제약산업 선진화를 내세우며 추진한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오히려 제약사들의 연구개발비용 투자를 어렵게 해 선진화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한 상위제약사 관계자는 "대부분 제약사들이 현재 연구개발 중인 사업 중에서도 단기간 성과 도출이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만 투자하고, 이외 신규 연구개발 사업안에 대한 지출을 중단하는 등으로 연구개발 예산안을 마련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연구개발비 축소는 곧 제약사들의 장기적인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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