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권기자] 이제 터치 컴퓨팅 시대를 넘어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똑똑한 개인비서 시리(Siri)를 탑재한 애플 아이폰4S와 함께 시작됐다.
UI의 역사는 여러 차례 변화 발전해 왔다. 키보드 입력 방식이 주류를 이루던 컴퓨터 UI는 매킨토시의 등장과 함께 마우스를 활용한 UI가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됐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윈도95는 마우스 대중화의 첨병이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아이폰이 터치기반 UI시대를 열었다. 이러던 것이 최근 들어 인공지능과 만나면서 음성만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휴먼인터페이스시대로 거듭나고 있다.
음성기반 휴먼인터페이스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넘어 TV 등 가전기기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TV 업체들이 음성으로 조작할 수 있는 TV를 선보이는 것도 시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차세대 애플TV를 성공시키기 위해 만든 무기가 시리라고 말한다. 시리를 TV에 장착할 경우 TV 시청자들은 사용하기 불편하던 리모콘에서 벗어나 손쉽게 TV 전원을 켜거나 채널을 바꿀 수 있다. 이 기능이 홈네트워킹시스템과 연계될 경우 삶의 질을 확 바꾸어 놓을 정도로 새로운 디지털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
이처럼 사용자 환경 변화는 컴퓨팅 기기 제조사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사, 사용자에게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터치기반 모바일시대를 연 후 GPS 기술과 자이로스코프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했다. 사업자, 제조사, 개발사는 기존과 다른 부가가치서비스를 창출해 더 많은 부를 얻고 있다.
◆애플 시리, 휴먼인터페이스시대 연다
애플 시리가 문을 연 인공지능 기반 음성인식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리는 사용자가 질문만 하면 문맥을 곧바로 이해한다. 그러다보니 질문에 대해 한층 더 자연스러운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게다가 이용자가 접근을 허용한 개인정보까지 능숙하게 활용한다.
"이번 주에 빙판길 조심해야 할까?"라고 질문을 하면 시리는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활용해 언제 빙판길이 만들어질 정도로 추워질 지를 곧바로 알려준다.
시리 등장 후 유사한 서비스가 대거 등장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서로 애플 시리 대항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시리 대항마'로 거론된 서비스는 대부분 음성인식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시리를 견제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시리를 단순한 음성인식서비스로 봐선 안된다는 점이다. 시리는 인공지능과 음성인식, 검색 기술을 두루 사용해 사용자 음성명령을 수행하는 최첨단 사용자 인터페이스이다.
경쟁사들은 이 중에서 음성인식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고 있다. 시리의 골자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과 검색기술 부분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시리가 새로운 UI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음성인식이 아니라 인간의 질문을 알아듣고 적절한 대답을 해주는 인공지능에서 찾을 수 있다.
시리는 똑똑한 인공지능이 뒷받쳐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시리 대항마로 시장에서 한판승부를 하고자 한다면 이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시리, 인공지능+음성인식+검색
시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 기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시리는 2010년 4월 애플에 인수된 신생 벤처 시리가 개발한 제품이다. 하지만 그 모태는 미국 군사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미국군사기술연구개발기관인 DARPA의 CALO 프로젝트를 시작점으로 한다. CALO는 라틴어 calonis(전사 보조)에서 비롯된 말인데, 한마디로 전장에서 병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연구했던 기술이다.
CALO 프로젝트는 2003년에 시작되어 2008년까지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에는 내노라 하는 유명대학과 연구기관이 참여했으며, 연구원만 300명 이상 관여했다. 연구비용도 엄청난 자금이 소요됐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연구기관 중 SRI 인터내셔널이 연구개발에 가장 많은 공헌을 했다. 이 기관은 인터넷 기원이 된 ARPANET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리는 SRI 인터내셔널 사내 벤처그룹이 2007년 12월 분사해 만든 회사다. 음성인식기술업체로 유명한 뉘앙스도 시리처럼 SRI 인터내셔널에서 분사한 업체다.
CALO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 인공지능 연구프로젝트였고, 시리가 그 피를 이어받았다. 따라서 이런 시리와 경쟁하려면 엄청난 인공지능 기술을 축적했어야 한다.
인공지능 부문에서 CALO 프로젝트에 견줄 기술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외 곳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앨리스(A.L.I.C.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앨리스, 시리 대망마로 급부상
앨리스는 인공지능 기반 자연어처리 기술 연구 프로젝트로, 그 역사는 시리보다 오래됐다. 앨리스 프로젝트는 1995년 리처드 월리스가 오픈소스 형태로 개발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CALO 프로젝트가 연구기관 주도로 진행된 데 반해 앨리스 프로젝트는 개발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어 왔다.
최근 안드로이드마켓에서 시리 복제품으로 평가를 받은 텍시트라 아이리스(Iris)도 앨리스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리스는 시리에서 구현하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앨리스는 시리 대항마로 충분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앨리스는 영국 인공지능대회에서 최고상인 로프너상을 유일하게 세번이나 수상한 시스템이다.
시리 대항마를 만들고자 하는 업체라면 앨리스를 활용해 개인비서 프로그램을 개발해볼만 하다. 여기에 울프람알파와 같은 지식검색엔진을 탑재하면 시리에 견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울프람알파는 검색엔진을 애플이나 MS 등에 라이선스로 공급하고 있다. 애플 이외에 업체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어 이 엔진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구글은 시리 등장 이후 UI 변화를 예측하고 음성인식기반 UI 개발 사업인 구글 마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UI 시장을 장악해야 시장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에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시리와 대등한 경쟁을 벌이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과 음성인식기술, 지식검색엔진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이 UI를 개발해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탑재할 것이다. 그럴 경우 제조사들이 힘을 들이지 않고 시리 UI를 견제할 수 있다.
TV 제조사나 단말기 업체는 구글이 마젤 프로젝트를 끝낼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앨리스를 활용할 경우 시장에서 필요한 마케팅 수준의 UI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링고 등 음성인식기술과 울프람알파 검색엔진에 앨리스 장점을 접목할 경우 시리와 경쟁할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을 선보일 수 있다.
안희권기자 arg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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