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성기자]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맸을 뿐?'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청렴함을 공직생활 40년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이계철 위원장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자리하자마자 방통위가 구설수에 오를 일이 벌어져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방통위는 KT의 유선망 필수설비(관로, 전주 등)를 다른 통신사, 케이블 방송사가 빌려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관로설치를 위해 땅을 파거나 전봇대를 설치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니 후발주자들이 무분별하게 땅을 파고 전봇대를 세우는 것보다 먼저 관로와 전주를 설치한 KT로부터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 쓰게 해 국가적으로도 낭비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KT 입장에서보면 민영화한 기업의 망을 강제로 임대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따라서 필수설비 지정의 문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가산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필수설비 문제는 공공의 효용 뿐만 아니라 사업자별로 이해득실이 엇갈리는 사안이다 보니 '아전인수식' 주장들도 쏟아진다. 그래서 방통위는 검증전담반을 꾸려 현장검증까지 마쳤다. 그리고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네 차례나 열었다.
제도개선의 결과에 따라 일감이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와 기대감에 일부 공사설비 업체들은 공청회를 장악하거나 방통위에 진입해 실력행사까지 벌이는 돌출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방통위 실무진의 추진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 사안은 KT와 KTF의 합병조건이기도 했다. 공청회를 끝으로 제도개선의 프로세서는 8부 능선을 넘은 셈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 방통위는 기술검증을 다시 실시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업자들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 검증절차를 다시 밟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기술검증이 부족했다면 반드시 다시 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서도 새로 하는 기술검증 결과가 달리 나올지 확신이 없어 보인다. 기술검증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의 증언에서는 기술검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사업자간 득실의 '셈법'으로 생긴 문제라는 얘기가 더 많이 들린다.
그러다보니 4·11 총선을 시작으로 대선정국이 이어지면서 필수설비 제도개선 역시 수면 아래로 묻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추진력이 강하던 방통위에 재검증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 공교롭게도 이계철 위원장의 등장 이후부터라는 점을 눈여겨 보고 있다. 이 위원장은 옛 정보통신부 차관을 거쳐 KT 사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이 위원장만큼 공과 사를 구분하는 강직한 인물이 많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방통위 사무국의 움직임은 웬지 거리감이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사안을 '이계철식 리더십'의 중요한 가늠자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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