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최근 정치권이 금융소득에 세금을 물리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파생상품에는 거래세를 도입하고, 주식투자로 번 돈에 세금을 걷고, 금융상품에서 얻은 이자나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언급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이 같은 방향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현재 국내 세금 체계에서는 부동산거래에는 세금을 많이 물리는 반면, 금융소득에는 비과세 혜택이 많다. 소액주주의 주식거래 차익에 세금이 없다든지, 이자수익에 세금은 안 떼는 비과세 예적금 상품 등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그동안 혜택을 받았던 금융 부분에서 세금을 걷겠다는 뜻이다. 늘어나는 복지 정책에 따라 돈이 더 필요한 데다, 요즘 가장 핫한 이슈인 '경제민주화'하고도 연결된 사안이라는 점도 주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금융소득 과세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한 이슈를 안고 있다. 금융소득 과세와 관련된 핵심 쟁점들을 정리해봤다.(도움말:금융투자업계, 법무법인 율촌 이경근 조세자문 부문장)
◆현재 우리나라 금융소득 세제 체계는?
우리나라에서 금융소득이라 함은 '이자소득+배당소득'을 말한다. 해외는 이보다 범위가 넓다. 이자소득, 배당소득에다 자본양도차익, 기타금융상품거래 소득까지 더한 개념이다. 용어도 금융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란 단어를 쓴다.
우리나라는 현재 금융소득 관련 세금을 1년에 한번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걷는다. 이자소득과 배당소득합계가 연 4천만원 이상이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과세를 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은 이를 연 2천만원~3천만원 이상이면 물리는 것으로 과세 기준 인하를 논의중이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세금을 걷을 수 있어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주식을 매도해 얻는 주식양도차익의 경우, 소액주주한테는 세금을 안 받고, 지분율 3% 또는 지분총액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대주주인 경우에만 세금을 물린다. (정치권은 앞으로 이 부분에서 소액주주한테도 세금을 걷겠다는 것이다.)
또한 주식을 거래할 때 모든 투자자는 거래세를 낸다(주식 매매 수수료에 포함). (정치권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와 동떨어진 금융소득 세금 체계
문제는 바로 이 같은 체계다. 금융거래 관련 세금 부분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보면, ▲거래세는 없애고, ▲이자와 배당에 주식양도차익 등까지 합산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물려 세금 체계를 단순화하는 쪽이다.
이는 지난 1999년부터 IMF(국제통화기금)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한국정부에 꾸준히 제시하는 금융세제 개혁 권고사항이기도 하다.
IMF는 99년과 2005년에 낸 IMF 재정국 보고서에서 한국정부에 모든 이자소득에 적용되는 비과세와 감면을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단일한 세율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간에 세율이 다르고, 비과세되는 금융상품이 지나치게 많은 등 너무 복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IMF의 2005년 재정국 보고서는 우리나라에 개인 자본소득 비과세 규모가 너무 커 과세기반이 상당히 침식됐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2003년에 개인들이 받은 이자소득과 배당소득 40조원 중 약 절반이 비과세였는데, 이 중 원천징수로 15조7천억원에 과세한 후 종합과세로 이어진 것은 4조7천억원에 불과했다.
IMF는 또 배당소득에는 세금을 물리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봤다. 배당은 기업이 사업을 해서 얻은 사업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내고 남은 순이익 중 일부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배당소득세는 이중과세라고 볼 수 있다.
OECD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OECD는 지난 2000년에 낸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배당소득세를 없애는 대신, 상장주식 양도 차익에는 세금을 물리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OECD는 우리 정부의 목적 중 하나인 소득재분배도 실패한 것으로 진단했다. 현재 국내에서 중소기업주식은 양도차익에 대한 세율이 낮고, 소액주주의 상장주식 양도차익은 비과세다. 이 경우, 고소득자가 소액주주인 경우에도 양도차익은 비과세다.
◆손해 봐도 세금내야 하는 거래세 '비합리적'
전문가들은 거래세에 대한 논의는 빠진 상태에서 금융소득 과세 확대로 방향이 잡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원래 세금은 소득이 있는 곳에 부과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주식거래시 거래세를 낸다. 주식투자로 손해를 봐도 세금을 내는 구조인 것이다. 원칙이 어긋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제가 합리적으로 가려면 거래세가 아니라, 매매로 차익을 얻은 경우에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세금을 물리는 것이 낫다.
하지만 세금을 걷어가는 정부 입장에서는 거래세가 속 편하다. 요즘처럼 자본시장 상황이 나쁜 시기에는 주식투자로 돈을 번 사람이 적다. 즉 금융소득 관련 세수가 자본시장 업황에 따라 움직이는 천수답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와 달리, 지금처럼 거래할 때 세금을 물리면 꾸준한 세수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테면 행정편의주의적인 행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래세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확대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현재 내년부터 파생상품거래에 거래세를 물리는 방안을 정치권과 논의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파생상품거래세 도입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거래세가 부과되면 외국인 등 투자자들의 거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금융세제 단순화하고, 이중과세 피해야
법무법인 율촌의 이경근 조세자문 부문장(경제학박사)은 "IMF와 OECD는 우리나라의 자본소득 세제가 복잡하고, 중립적이지 않은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며 "개인 자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정립해 가급적이면 조세 당사자 간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과세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자본소득에 대한 비과세와 감면도 철폐해 나가야 하며, 종합과세를 할 경우 법인 단계에서 과세된 소득이 개인에게 이중과세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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