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벌써 안쓰럽다. 박근혜 대통령 말이다. 임기 말에나 있을 법한 일이 취임 한 달 만에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 새 대통령과 함께 큰 희망을 품고자 했다. 남북 관계, 경제 등 주변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함을 알기에 우리 국민은 그에게 대선 사상 가장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100% 대한민국’은 단지 그의 구호인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립된 듯하다. 여당마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에게도 불만은 있겠다. 야당의 발목잡기나 비판적인 여론을 대할 때 특히 그럴 것이다. ‘참, 내 속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답답해 할 수도 있겠다. 믿거니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의 마음은 오랜 진심이리라.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원칙과 신뢰라는 트레이드 마크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변하지 않았지만 국민이 변했다는 이상한 역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를 법도 한 상황이다.
맞다. 그 역설이 이제는 분명한 진실로 보인다. 엉킨 실타래를 풀 실마리는 그 역설 속에 있다. 문제는 그가 변해서가 아니라 변하지 않아서 생겼다. 그가 변하지 않으니 국민이 변한 거다. 그가 반드시 변해야만 할 이유는 두 가지다. 그는 훌륭한 대통령감이었지만 처음부터 분명한 한계도 갖고 있었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다.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는 당선된 순간부터 자신의 한계를 보완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자세를 새롭게 정립했어야 했다. 그의 한계는 부친의 과거 제왕적 DNA를 대부분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흔히 ‘불통’으로 표현되는 그것이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할 말을 못하고 그 또한 자존심을 굽혀가며 먼저 손을 내미는 경우가 없다. 이런 모습이 후보 때는 강력한 리더십의 상질일 수 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는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그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증명할 필요도 없다. ‘참사(慘事)’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한심한 인사 실패만 놓고 봐도 그렇다.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하고 그것이 패착이었음이 드러나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 자신이 세운 원칙만 중요할 뿐 협상해야 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도 뭉개버린다. 넓게 포용해 아울러야 할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원칙 때문에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만다.
장기(將棋)는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이다. 하지만 실제 전쟁과는 완전히 다르다. 장기에서는 말을 제한 없이 자신의 뜻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전쟁에선 결코 그럴 수 없다. 제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배신하는 장수나 도망가는 병사가 숱하다. 그러니 상대 전략을 알기 전에 군속 마음을 얻는 게 제왕이 먼저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실전이 아닌 장기판 앞에 앉은 게이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갖게 한다.
장기판에서처럼 소통 없이 말을 자기 뜻대로만 사용하니 그와 맞서는 상대가 자꾸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게 재계와의 대치다. 취임 초기부터 물밑으로 진행되는 재계와의 샅바싸움이 심상치 않다. 부친 DNA를 이어받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재계의 군기를 잡겠다는 심사가 여러 군데서 읽힌다. 재계도 일단은 꼬리를 내리고 그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다. 이런저런 코드 맞춤형 발표를 한다.
그는 법과 정책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계한테는 갑(甲)이다. 문제는 법과 정책만 가지고 모든 일을 술술 풀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 법과 정책이라는 것을 상대가 인정하지 못한다면 칼자루는 그야말로 깡패나 쓰는 폭력일 뿐이다. 모르긴 하되 지금 재계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새 깡패를 대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는 당장 고개는 숙이겠지만 원하는 건 절대 안 나온다.
그가 재계에서 끌어내야 하는 건 투자다. 성장도 일자리도 복지도 결국엔 투자가 낳는 자식들이다. 과거 대통령들이 왜 해외 자본에 따뜻한 예의를 갖추고 세일즈 외교를 했겠는가. 대통령이 낮춤으로써 국민한테 일자리와 복지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에 투자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대통령은 지금 그들이 왜 그렇게 하는지를 귀 열고 착실히 들어야 한다.
놀랍게도 국내에서 가장 돈 잘 버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총수 이건희 회장은 밥 먹듯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 그걸 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실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만약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만나서 들어봐야 한다. 삼성이 왜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이 회장의 외유가 왜 길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원할 것과 당부할 것을 까놓고 말해야 한다.
아직은 누구도 확실하게 설명해주지 못하고 그래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창조경제’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 건지, 이 회장을 비롯해 투자의 주체일 수밖에 없는 대기업들에게도 설명하고 설득해 동참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다는 아니겠지만 지금 투자 주체의 대부분은 ‘창조경제’라는 정부의 외침을 의심쩍어 하는 분위기다. 그럴싸한 구호이기는 하나 실체적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애석하게도 한국 경제는 아직까지 대기업의 집중적인 투자를 배제하고 그 애매한 ‘창조경제’를 구현할 방법이 마땅찮아 보인다. 신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창조경제의 요체 가운데 하나일 터인데 그 최대 동력은 대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의 동의와 동참 없이는 창조경제 또한 허망한 구호로 끝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이건희 회장을 만나야 할 이유다.
법과 제도를 통한 칼자루는 그러고 나서 휘둘러도 늦지 않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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