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국회가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재계는 물론 정치권 일각에서도 일부 규제 조치가 과도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다.
최근 여야는 재벌 대기업을 겨냥한 경제민주화 입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기업 총수와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개정안은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고,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금지법(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정무위에서 논의 중이다.
여야 6인 협의체가 정한 '대선 공통공약 입법의제'에도 재벌 총수의 횡령 등 불법적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해 최고 1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고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비롯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사항이 대거 포함됐다.
정부도 이 같은 정치권의 움직임에 가세, 감사원의 경우 재벌들이 총수 자녀 등에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편법 증여를 하고 있다면서 2004년부터 2011년까지의 거래에 증여세를 소급해야 한다고 국세청에 통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여권 일각에서도 '과도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이 아닌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 같다. 여야 간 주고 받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언급한 것이 경제민주화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되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가이드라인', '입법권 침해'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초당적 협력이 시작된 시점에 청와대가 또 다시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될 발언을 쏟아 붓고 있다"며 "이것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정면 비판했다.
변재일 정책위의장도 "대통령이 공약한 사항만 국회가 입법화해야 하느냐. 민주당은 국회에 존재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새누리당 내에선 박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하는 기류가 강하다. 불공정 거래 등 잘못된 기업활동에 대해선 규제가 필요하지만, 과할 경우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인기영합적 정책 관련 법률만 먼저 통과되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제대로 가려내 엄정하게 징벌을 가하더라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은 신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화된 모습을 정치권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원진 전략기획본부장은 "일감 몰아주기와 골목상권 지키기가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지만, 일감 몰아주기에도 세금을 물린다는 부분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감사원이 일방적으로 그런 부분에 대해 발표하는 건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예결위 간사인 김학용 의원 역시 "경제민주화는 불공정한 갑과 을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청산하자는 데 있는 것"이라며 "마치 우리 집 닭이 알을 낳는데 달걀에 문제가 있다고 닭의 목을 비틀어 죽이는, 그렇잖아도 어려운 경제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입법은 지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류가 자칫 경제민주화 후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경제민주화실천모임' 간사인 김세연 의원은 "법적 규제를 강화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에 대해 부인하는 듯한 논의가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미숙기자 come2m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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