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최태원 SK(주) 회장의 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SK 펀드출자 자금을 선지급한 이유에 대해 "최 회장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해 계열사에 거짓말했다"고 진술했다.
10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의 심리로 열린 항소심 7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김 전 대표는 "(SK 계열사의 펀드 조성 전 미리 지급한 펀드 자금은) 최태원 회장의 선물 투자를 위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 계좌로 송금하도록 돼 있었다"며 "선물투자금으로 선지급금이 사용돼야 하는 상황이 최 회장에게 해가 될까봐, 펀드 자금을 마련한 계열사에는 선지급하게 된 경위를 거짓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어 "1차 출자 때와 달리 실무진들의 반발로 2차 펀드 출자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반발을 무마해야 해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선지급이 늦어져 캔슬될까봐 걱정됐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표는 구체적으로 "SK가스의 펀드 선지급금 출자가 실무진 반대로 미뤄지자 이를 무마할 명분이 필요했고, 이에 대해 최 회장에게는 설명하진 않았지만 최재원 수석부회장과는 상의했다"며 "김 전 고문은 단순한 투자 에이전트가 아니라 최 회장 형제와 깊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였고, 최 부회장은 그에게 거의 복종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부가 SK텔레콤 등 계열사들이 최 회장의 지시를 받고 펀드를 조성하기 전 먼저 자금을 선지급한 경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묻자, 김 전 대표는 눈물을 보이며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미 벌어진 일은 과거고 지금과 앞으로가 중요하다"며 "증인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진실을 말하면 된다"고 추궁했다.
김 전 대표는 1심에서 "최 회장이 펀드 출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최 회장이 횡령 범행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한 바 있다.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인 김 전 대표 등을 비롯해 최 회장 형제도 항소심에서 사건의 주요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자, 재판부는 앞서 진행된 공판에서도 "증인들이 위증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진술의 신빙성 여부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이번 재판이 여전히 진실을 가리기 쉽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재판부는 이날 증인신문에 앞서 "김 전 대표 측 변호인과 최 회장 측 변호인의 주장을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라며 "펀드 출자금의 성격과 내용은 김준홍 전 대표가 가장 정확히 알 것이고, 다음이 김 전 고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최 회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며 "최 부회장은 김 전 대표나 김 전 고문과 동일한 정도로 자금 흐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전 고문은 2008년 10~12월 SK텔레콤과 SK C&C 등 계열사들이 베넥스가 만든 펀드에 투자한 자금 중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450억원을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로부터 송금받은 인물이다.
김 전 고문은 1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으나 항소심에서 최 회장 등의 변론 방향이 바뀌면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급부상했다.
재판부는 김 전 대표와 해외 도피 중인 김 전 고문을 이 사건의 핵심증인으로 판단, 다음 공판에서 다시 증언대에 세울 계획이다. 다만 김 전 고문의 경우 실제로 소환에 응할 가능성이 많지 않아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 공판은 오는 14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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