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전 세계에 있는 책을 디지털화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는 구글이 한숨 돌렸다. 8년 여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공정 이용’이란 보호막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순회법원의 데니 친 판사는 14일(현지 시간) 작가조합(Author’s Guild)이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구글의 손을 들어줬다.
친 판사는 이날 구글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스캔한 뒤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것은 저작권 법상의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수 백 만권의 책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목록 작업을 해 놓을 경우 공공의 이익 증대에 기여할 것이란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작가조합이 2005년 구글 제소하면서 시작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 2002년 무렵이다. 당시 구글은 일부 직원들이 소규모로 책을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당시 프로젝트 명은 ‘구글 프린트’였다.
스캔 기술이 발달하면서 2003년 부터는 구글 프린트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글은 2004년에 구글 프린트를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로 확대했다. 그 해 12월 12개 출판사와 협약을 맺고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를 발족한 것.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한 동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하지만 2005년 작가조합이 무단 복제 등을 이유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후 8년 여 동안 양측은 지리한 법정 공방을 계속해 왔다.
구글과 작가 조합 간 소송은 디지털 시대 저작권 법의 기준을 만들어 줄 중요한 판례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특히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종이책을 스캔한 뒤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저작권법 상의 ‘공정 이용’에 해당되는 지 여부를 놓고 많은 공방을 벌였다.
작가조합 측은 구글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스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 이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구글이 스캔한 책 콘텐츠 옆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작가 조합은 이런 논리를 토대로 구글이 책을 스캔하려면 작가들에게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 이용 성격-범위 놓고 열띤 공방
이번 소송에서 구글과 작가 조합은 공정 이용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전자프론티어재단(EEF)에 따르면 '공정 이용' 공방에서 이슈가 된 것은 크게 네 가지였다. 즉 ▲이용 목적 ▲원 작품의 성격 ▲이용 분량 ▲시장 피해 존재 여부 등이 핵심 이슈였다.
작가조합은 구글의 책 스캔 행위가 중간복제(intermediate)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작품을 복제한 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포함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원작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저작권법에서는 중간복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구글은 책의 성격을 디지털 파일로 변형함으로써 독자와 학자, 연구자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공방에서 판사는 구글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친 판사는 판결문에서 “구글 북스는 책을 파기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니라,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고 판단했다. 구글 북스가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목록을 통해 책을 찾기 쉽게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원 작품에 부가적인 정보를 덧붙여준다는 것이 판사의 판단이었다.
구글이 영리 기업이기 때문에 디지털 도서관 작업의 순수성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프로젝트 자체가 교육적인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행 기관의 영리 추구 여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스캔한 작품의 성격 역시 이슈 중 하나였다. 소셜 같은 픽션류들은 창의성이 좀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저작권을 좀 더 강하게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은 구글이 스캔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논픽션일 뿐 아니라 이미 출판된 것들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기 않는다고 판단했다.
◆'시장 피해' 주장에 법원은 "오히려 책 판매에 도움"
공정 이용에선 인용 범위 등도 문제가 된다. 학술 논문이라고 할 지라도 지나치게 많은 부분을 인용할 경우 저작권 침해 공방이 생길 우려도 있다. 구글 프로젝트 같은 경우 책 전체를 스캔했기 때문에 특히 공정 이용 조항 적용을 놓고 많은 공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법원은 구글의 변형 작업에서 책 전체 복사가 꼭 필요했기 때문에 공정 이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작가 조합이 이번 소송에서 강조한 부분 중 하나는 ‘시장 피해’ 였다. 구글의 책 스캔 작업으로 인해 작가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작가 조합의 주장이었다.
EEF에 따르면 작가조합은 “독자들이 반복해서 검색을 하는 방식을 통해 책 전권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책을 사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법원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구글이 스캔한 책이 물리적인 책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것. 독자들이 도서관에 가면 쉽게 빌릴 수 있는 책을 굳이 여러 번 검색해서 전 권을 읽는 수고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법원의 논리였다.
데니 친 판사는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오히려 책 판매를 촉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글에서 책 목록과 일부 내용을 접한 독자들이 흥미를 느껴서 책을 구매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은 책 목록 옆에 구매 버튼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오히려 저작권 보유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데니 친 판사는 설명했다.
◆작가조합 "판결 동의할 수 없다. 항소하겠다"
이번 소송은 시작부터 작가조합이 무리수를 둔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가 도서관에 있는 방대한 책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작업에 대해 저작권 침해 족쇄를 씌울 경우 자칫 혁신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작가조합의 소송에 반대하는 측의 논리였다.
구글 전자책 작업의 당위성을 옹호했던 EEF는 데니 친 판사의 판결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EEF는 이날 사이트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오늘은 공정 이용과 저작권법에는 기념비적인 날”이라면서 “독자와 작가, 도서관, 그리고 미래의 공정 이용자들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IT 전문 매체인 기가옴 역시 데니 친 판사가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기사를 쓴 매튜 잉그램 기자는 “설사 구글을 디지털 시대의 거대한 독점 기업이라고 판단하더라도 데니 친 판사의 이번 판결은 옳은 결정이다”고 주장했다.
반면 작가조합은 “구글은 저작권이 있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학 작품을 허가도 받지 않은 채 디지털 판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는 저작권법의 근본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작가조합은 또 “법원의 판결에 동의할 수가 없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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