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미국 방송가를 뒤흔들었던 '클라우드 지상파 방송 전송 대행 서비스’를 둘러싼 공방이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 10일(이하 현지 시간) ABC를 비롯한 미국 방송사들이 인터넷TV 방송사 에어리오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다루기로 했다고 아스테크니카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양측은 오는 4월 구두 변론을 할 예정이며, 최종 판결은 7월 경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이번 소송 1심과 2심에선 모두 에어리오가 승리했다. 에어리오가 기세를 몰아서 대법원에서도 승리할 경우 60년 이상 계속된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뒤흔들릴 수도 있어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전송이냐 방송수신 대행이냐
에어리오는 미국 미디어업계 거물인 배리 딜러 전 폭스TV 사장이 지난 2012년 시작한 서비스다. 딜러는 그 해 3월 뉴욕시에서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지상파 방송 전송 대행'이란 신개념 서비스를 선보였다.
에어리오는 ABC, CBS, NBC, 폭스 등 미국 4대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다양한 채널을 유료 서비스한다. 가입자들은 ▲하루 이용제 ▲두 가지 형태의 월 요금제 ▲연간 요금제 중 선택해서 가입할 수 있다.
에어리오의 첫 번째 경쟁 포인트는 요금이다. 연간 회원으로 가입하더라도 요금이 80달러 수준밖에 안 된다. 유료TV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게다가 요금제에 따라 DVR 저장 공간을 최대 40시간까지 부여해주는 점 역시 매력 포인트다. 원하는 방송을 녹화한 뒤 나중에 시청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어리오는 이런 장점을 앞세워 순식간에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자 ABC, NBC, CBS를 비롯한 미국 지상파 방송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섰다. 재전송료를 내지도 않고 서비스를 했다면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 게다가 케이블 사업자도 아닌 에어리오가 재전송 서비스를 한 것 자체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현재 미국 방송법에서는 케이블사업자에 한 해 재전송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2012년 7월 1심 재판부가 에어리오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제2 순회항소법원도 지난 해 4월 같은 판결을 내렸다. 에어리오의 서비스는 지상파 재전송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공적 실연이냐 사적 사용이냐
언뜻 보기엔 에어리오의 서비스가 명백한 저작권 침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어리오의 서비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에어리오 서비스의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데이터센터에 지상파 수신용 안테나를 대거 구비한 뒤 서비스에 가입한 개인들에게 하나씩 할당해준다. 그런 다음 수신한 방송 콘텐츠를 IP 신호로 변환한 뒤 개별 이용자들에게 인터넷으로 쏴 주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어리오는 자신들의 서비스가 지상파 재전송이 아니라 '방송수신 대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정에선 이 부분을 놓고 에어리오의 서비스가 '공적 실연(public performance)'이냐 '사적 사용(private use)'이냐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공적 실연은 통상적인 재전송 서비스 사업자들에게 볼 수 있는 모델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방송사들의 콘텐츠를 수신한 뒤 그것들을 한 데 모아서 불특정 다수에게 한꺼번에 쏴주는 방식이다. 이런 서비스를 할 경우엔 당연히 원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재전송료를 내야 한다.
에어리오의 경쟁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에어리오는 방송 패키지를 한꺼번에 쏴주는 대신 개인별로 별도로 안테나를 할당해주는 방식이다. 위 그림의 '개인 스트리밍' 방식으로 운영된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사적 이용'이라는 에어리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안테나를 설치해서 지상파 방송을 공짜로 수신할 수 있기 때문에 에어리오의 서비스 역시 큰 문제가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에어리오가 승소하는 덴 케이블비전이 방송사들과 벌인 이전 법정 공방이 중요한 판례로 작용했다. 당시 케이블비전은 "개인적 용도로만 이용자 스스로 콘텐츠를 복제 및 전송할 경우엔 공공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독자적 사본' 에어리오 주장 타당성은?
이번 공방의 또 다른 쟁점은 '독자적 사본(unique copy)'이란 개념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에어리오가 송신한 것은 '독자적 사본'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방송사들의 작품을 공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 부분은 대법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전망이다. 방송사들이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아내려면 에어리오가 자신들의 콘텐츠를 '공연'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공연에 해당되는 지 판단하기 위해선 전송되는 것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공연이 성립되려면 동일한 콘텐츠를 다수에게 한꺼번에 쏴준다는 점이 인정돼야만 한다.
하지만 1심과 항소법원은 에어리오가 '공연'을 한 게 아니라 개별 이용자들에게 '독자적인 사본'을 전송한 것으로 봤다.
에어리오 가입자들은 브루클린에 있는 에어리오 데이터센터에 개별 안테나를 하나씩 확보하고 있으며, 이 안테나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송신받아 왔기 때문에 공연이 아니란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의 에어리오의 손을 들어준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폭스와 CBS는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지상파로 전송하지 않고 유료 모델로 전환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케이블사업자인 타임워너 케이블은 아예 에어리오와 유사한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케이블업계에 저가 패키지 도입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작물 재전송은 공적 전송" 소수의견도 주목
현재까지는 에어리오가 유리한 분위기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승부가 뒤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에선 "저작권 있는 콘텐츠를 전송하는 행위 자체가 공적 전송"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항소법원에서 소수 의견을 제기한 데니 친 판사다. 그는 독자적 사본을 개인 용도로 전송했을 뿐이라는 에어리오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같은 이유로 이번 재판의 근거가 된 케이블비전 판례 역시 잘못됐다는 게 친 판사의 입장이다. 그는 또 한 발 더 나가 설사 케이블비전 판례가 올바른 것이라 할 지라도 에어리오 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친 판사는 또 지상파 방송사들이 '재전송료 수입'을 올리는 것도 당연히 인정해줘야 한다는 쪽이다.
결국 대법원에선 '독자적 사본'이란 에어리오의 주장과 '공적 전송'이란 방송사들의 반박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대법원이 에어리오의 손을 들어줄 경우 미국 방송사들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판을 뒤집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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